6·25때 허벅지 총탄부상 휠체어 신세
어릴 때 배운 풀피리로 요양원 '인기스타'

진영읍 방동리 김해보훈요양원에는 인기스타가 있다. 주인공은 이봉우(82) 할아버지다. 그는 7년 전부터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6·25전쟁 낙동강 전투 때 경북 의성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총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는데, 이후 수술을 11차례나 받았지만 결국 걷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요양원에서 '풀피리 할아버지'로 불린다. 6·25전쟁 때 목숨을 잃은 전우들과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국가유공자 환자들을 위해 풀피리를 불어주기 때문이다.
 
"15살 때 소를 끌고 산에 올라갔다 남의 집 머슴을 살고 있던 청년을 만났어. 그 사람이 풀피리를 기가 막히게 불었지. 그를 따라서 풀피리를 불다보니 나도 재주를 얻었어. 20살 때 전쟁에 참전한 뒤론 풀피리를 불지 않다가 휠체어에 앉은 이후 다시 풀피리를 불기 시작했지."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은 심심해지면 이봉우 할아버지 방을 찾는다. 그러면 그는 마다않고 풀피리를 불러준다. 이렇게 한 게 벌써 3년째다. 이제는 복지사와 간호사들은 물론 외부 손님들도 풀피리 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찾아올 정도다. 주말에 어린이들이 찾아오면 동요를 불러주기도 한다.
 
요양원의 박선애 간호과장은 "요양원엔 국가유공자 160여 명이 모여 있다. 할아버지의 풀피리 소리가 들리면 주변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아픔을 잊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에게 풀피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더니 주머니에서 손바닥 만한 비닐봉투를 꺼낸다. 산책을 하면서 수시로 따다둔 풀잎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풀잎을 한 장 입에 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구성진 가락이 요양원 휴게실에 울려 퍼지자 어르신들과 사회복지사들이 하나둘 주변에 모여들었다.
 
풀잎으로 '목포의 눈물'과 '고향무정'을 이어 부르던 이 씨는 전쟁 때 생각이 났는지,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더니 입을 열었다. "경북 경산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 일주일 동안 총 쏘는 연습을 했지. 그때 같이 훈련 받던 친구들이 55명이었는데, 훈련이 끝나면 동료들에게 풀피리를 불러주곤 했어. 낙동강 전투에 참전하고 3일 정도 지났는데, 동료의 절반 정도가 죽고 없어군. 그때의 심정은 말로 다 못해. 풀피리를 부르다보면 먼저 간 전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오. 저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내 풀피리 소리를 듣고 응답이라도 해줬으면…."
 
할아버지가 다시 풀피리를 입에 댄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간절하게 들려온다. 할아버지의 풀피리 연주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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