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에 가 보면 '이판승'과 '사판승'이 있다. 이판승은 참선 등 수행에 매진하는 스님이고 사판승은 절의 살림을 맡으며 이판승의 수행을 돕는 스님을 가리킨다. '끝장'을 의미하는 '이판사판'이란 단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판승과 사판승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수행과 살림,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터. 사람은 이론과 실기, 이성과 감성, 순발력과 지구력 등 상반된 두 가지 특질을 동시에 가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론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비뇨기과 윤진한(64) 교수에 대입해 보면 꼭 들어맞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그는 비뇨기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와 수술 실적을 자랑하면서도 병원과 대학 경영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또 각종 사회단체의 주요 직책도 너끈히 수행해오고 있다.

윤 교수는 방광암 환자에 인공방광 시술을 국내에 선구적으로 소개했고 신장이식 수술에서 '시체신'('생체신'의 반대개념으로 뇌사상태이면서 장기는 살아 있는 사람) 이식 및 다장기 이식은 국내에서 처음 시술에 성공했다. 이와 함께 윤 교수는 동아대 의과대학장, 동아대의료원장, 동아대 대외협력부총장 등을 역임했며 학교법인 화봉학원 이사, 석파학원 이사장, 학교법인 중앙학원 이사 등 대외 업무도 활발하게 했다. 그를 보면 마치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일을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윤 교수의 타고난 부지런함과 열정적·낙천적 성정 덕분이다. 윤 교수의 입에선 '노(No)'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Yes(그래), 일단 해보지 뭐'가 입에 붙어 있다. 요새도 어려운 수술은 직접 집도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개금 백병원의 윤일한(안과) 교수가 친동생이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깜'이 되겠어요? 허허, 그래도 한번 해보지 뭐." 그의 외래 진료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오셨는데, 아직도 할 일이 있습니까?
 
▶지난해 2월말로 학교의 모든 보직은 내려놓고 의과대학 평교수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환자 진료, 학생 강의에 매진합니다. 유전공학적 기법을 이용한 신기술·신제품의 연구·개발 및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설립한 '신라젠' 회사의 감사로 재직하고도 있어요. 이곳에서 유전공학적 기법으로 암치료 바이러스를 이용해 신장암과 전립선암에 새로운 치료를 시도하여 놀라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은사이신 문효중 선생님께서 설립한 한국전립선재단의 이사장에 취임해 후학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계간지인 '전립샘 건강' 발행, 영세민 노인 무료진료 등의 일로 정신없이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로서도 많은 업적을 냈지만 보직교수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는데, 그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의사라는 직업이 물론 기본바탕이 되었지만, 김해라는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의대 학장이 되었을 때, 정산장학재단 박연차 회장께서 당시로선 거금인 5천만 원을 쾌척하셔서 총 2억 원으로 의과대학 발전재단을 만들 수 있었고 의료원장 때는 김해지역 환자들이 병원의 큰 고객이었습니다. 부총장 때는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 박정규 당시 민정비서관, 배병렬 당시 감사위원 등 수많은 김해 향우님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의 업무를 무난히 수행할 수 있었죠.
 
-'김해의 갑부' 집안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고향에 얽힌 추억을 더듬어 주시죠.
 
▶제 아버지가 가락면장을 하셔서 아마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제가 의사 개업을 하지 않고 평생 교수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제가 가락중학교 때 요즘 유명한 배우인 송강호 씨의 부친인 송인배 선생님이 미술을 가르쳤지요. 그 분의 미술수업은 정말 환상적으로 재미있었고 멋진 말씀들은 제 삶의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요즘 한창 활동 중인 연예인 탁재훈(본명 배성우)의 아버지 배조운 씨는 가락중학교 선배로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분의 권유로 가락중학교 동창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KTX개통 등으로 부산지역 환자들이 서울로 많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지방 의료의 생존 전략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지방에 사는 잘못인데 별 수 있겠어요(웃음). 20년 전 제가 하바드대학 부속병원에 교환교수로 있을 때 저보다 경험이 없는 미국인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한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왔어요. 요즘은 제 제자들이 있는 서울의 유명병원에 갔다가 권유를 받고 저한테 다시 오는 환자들이 있어요. 어쩔 수 없죠. 지방의 의사들이 실력을 쌓는 수밖에요.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삶의 목표는 철학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두고 있습니다. 그것의 수단으로 저는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지요. 한국말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공부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부산일보와 중앙지에 나오는 '외국어' 가이드는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국어, 영어, 일본, 중국어가 동시에 나오는 사전이 있어요. 다른 나라 언어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어학공부를 하다 보면 너무 재미있습니다. 요즘엔 색소폰도 취미로 불고 있지요.
 
윤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또다른 미팅이 있다며 얼른 자리를 떴다. 그의 걸음걸이에 젊은이 못지 않은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윤진한 교수는 ──────
1947년 옛 김해군(현 강서구) 가락면 죽동리에서 태어났다. 가락초등학교와 가락중, 동아고를 거쳐 부산대 의과대학 비뇨기과 전공의를 수료했다. 1989년 부산대에서 동아대 비뇨기과로 옮겨 교수생활을 해오고 있다. 동아대 부속병원 기획실장, 의과대학장, 의료원장, 대외협력부총장 등 보직을 역임했으며 학교법인 중앙학원 이사, 정산장학재단 이사, 한국전립선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인공방광술, 내시경적 결석수술 등 비뇨기 분야에서 선구적 수술법을 도입했으며, 특히 내시경을 이용한 신장이식술은 국내에 로봇수술을 들여오는 계기를 제공했다. 주요 저서로는 '비뇨기과학' '실험간이식'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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