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수 천마리 매몰 … 밤샘 예사
지반·주위 환경 고려 침출수 막기 사력

구제역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김해시 한림면 안곡리에 들어서자 가축이 썩어가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창 땅을 파고 있는 굴착기 옆에 흰색 방제복을 입은 김해시청 김치성(47) 계장이 매몰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김 계장 옆에는 오전에 이미 살처분한 어미 돼지 2마리와 새끼 20여 마리가 쓰러져 있있다.
 
매몰지 웅덩이에 깔 비닐을 옮기던 김 계장은 "주촌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한림면을 휩쓸고 생림면으로 번지고 있는 추세지만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 같다"면서 "돼지들에 대한 1차 구제역 접종을 마친 상태라 항체가 생기지 않은 돼지들에게서만 구제역이 발생해 이전과 같은 대규모 살처분과 매몰은 없다"고 전했다.
 
김 계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지난달 24일부터 구제역 매몰 처리반으로 차출된 이래 설날 연휴에도 쉬지 못한 채 일해 온 보람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 계장은 "애써 키운 가축을 잃은 농민들의 심정과는 비교되지 않겠지만 그동안 직원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면서 "나를 비롯해 방역에 동원된 많은 직원들이 대량 살상된 돼지들을 보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제역 매몰 처리반으로 차출된 이후 활동 상황을 들어 보니 김 계장의 말은 결코 엄살이 아니었다. 주촌면에서 돼지들을 하루에 수 천 마리씩 매몰 작업을 하면서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구제역 확정 판정이 나면 원칙적으로 24시간 내에 매몰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밤샘 작업도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또 미처 죽지 않은 돼지들을 구덩이로 몰아 넣을 때는 '쇼크'에 가까운 충격을 받기도 했다. 중장비에 돼지의 팔다리가 찢기기도 하고 내장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수시로 보았기 때문이다.
 
김 계장은 "나는 간이 큰 편인데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출 직원들의 육체적 피로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김 계장은 "구제역 초기에는 워낙 매몰해야 하는 가축 수가 많아 차에서 1~2시간 잠을 자고 밤새도록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엄격한 출입제한 조치로 작업 현장에 고립돼 식사를 거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면서 "이번 설날 연휴에는 집에 들어가지 못해 차례와 세배는 꿈도 꾸지 못했고 가족들에게 너무나 미안했었다"고 회고했다.
 
요즘 김 계장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부실 매몰에 대한 세간의 비난이다. 매몰 작업에 동원된 직원들이 말 못할 고생을 하고 있음에도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들로부터 가혹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계장은 "일부 매몰지가 하천 인근이나 비탈에 만들어져 유실에 따른 2차 오염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살처분 대상 농가가 하천변이나 비탈지 외에 마땅한 땅을 가지고 있는 않은 경우 남의 땅에 묻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계장은 또 "어쩔 수 없이 하천변에 매몰할 경우에는 콘크리트와 황토를 깔아 차수벽을 만들고 다시 비닐과 천막을 여러 겹 깔아 침출수 유출을 방지했다"면서 "매몰 작업 후 꼼꼼한 사후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림면에서 침출수가 하천으로 유입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최근 매몰 작업 지휘 외에도 작업 과정이나 사용된 비품 조달, 작업 현장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힘쓰고 있다. 작업 도중 틈틈이 한림면 사무소를 꼭 들른다. 작업 과정의 모든 사항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김 계장은 "김해시는 구제역 방역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작업 초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면서 "이번 사태를 처리하면서 여러가지 노하우를 깨닫게 됐는데 이를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혹시 구제역이 또 발생해도 같은 실수와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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