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나무를 파고, 업무를 보다가 틈이 나면 또 요령껏 파고,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혼자서 파고, 주말에는 혼자 출근해 마음 놓고 파고…. 이때까진 취미였지요. 하지만, 서각을 마음껏 즐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서각 공모전이니 작품 전시회니 하는 것을 몰랐을 때라 부담도 없었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어요. 그런 만큼 해보고 싶은 작품을 거리낌 없이 열심히 만들어 봤고, 만들고 난 뒤 누가 마음에 들어 하면서 달라고 하면 주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서각에 푹 빠졌죠."서각이 좋아 회사 옆에 작업실을 짓고 틈틈이 나무를 파던 최홍주(66) 씨는 이제 '서각인'으로 살고 있다.  '영운마을'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삼방동 1197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봤다.

보름 간격으로 계속 열리는 전시회
김해뿐 아니라 여러 지역 예술가들 대관
다양한 분야 작가 모임 정기전도 개최
첫 전시회 여는 이들 볼 때 가장 흐뭇

글자를 그림으로 풀어 서각에 접목
현대적 조형미 갖춘 새로운 작업에 몰두


최홍주의 부모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다. 1945년 광복 때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에서 살았다. 최홍주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 1·4후퇴 때 다시 전북 전주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최홍주는 손재주 많은 아이로 소문이 났었다. "남자애들에게 가장 신나는 겨울놀이가 썰매타기, 연날리기 아닙니까. 전 썰매도 연도 직접 만들었어요."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썰매를 만들었다. 솜씨 좋은 아버지나 형이 멋들어진 썰매를 만들어주면 의기양양하게 매고 나가는 게 아니라, 그는 그걸 직접 만들었다. 만들어 줄 사람이 없어서 얼기설기 대충 만든 게 아니라, 제대로 만든 근사한 썰매였다.
 

▲ 글자를 그림 형태로 풀어 접목한 서각 작품.
썰매 제작용 나무판자와 각목을 구하기 위해 동네 곳곳, 그리고 제재소까지 찾아다녔다. 그때 그는 이미 톱질이나 못질에 익숙했다. 형이 탈 썰매도 직접 만들어줬고, 친구들이 너도나도 썰매를 만들어달라고 청탁을 해왔다. 그가 썰매를 만들 때면 친구들이 주변에 빙 둘러서서 감탄을 했단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친구들 썰매 만들어주면서 구슬이나 딱지 같은 걸 받았을지도 몰라요." 그는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열 두어 살 꼬마가 톱질을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니 아슬아슬 불안하다. "부모님들이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제가 워낙 잘 만들었으니까요. 균형 잡기가 어렵다는 방패연도 직접 만들어 날렸고, 기타는 아홉 살 때부터 쳤어요. 스물 한 살 때는 기타학원 강사도 잠깐 했어요.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서각을 하고 있나 봐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기기술 학원을 다녔다. 1970년 부산에서 전파상을 차리고, 1975년에는 삼성전자 대리점을 열었다. 이후 30년이 넘도록 사업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를 서각으로 이끄는 운명은 계속 이어졌다. 1975년 서예를 접했다. 그윽한 묵향을 맡으며 글을 좀 쓰려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대리점 사업이 바빠 틈을 낼 수 없어 애가 탔다.
 
1993년, 그는 드디어 서각과 만났다. 마산에 살고 있는 작은 형의 집에서 서각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형은 "넌, 나무도 좋아하고 손재주도 좋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슬쩍 권했다. 그는 별다른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서각의 길로 성큼 들어섰다. 스승을 찾아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서각을 시작한 것이었다.
 
조각도를 사고, 나무도 샀다. "처음 나무를 살 때 100만 원어치를 덜컥 샀습니다.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던 게지요." 그는 첫 작품으로 달마도를 나무에 새겼다. 완성하는 데 약 3개월이 걸렸다. 그의 첫 작품인 달마도는 서울에 있는 친구가 탐을 내 가져갔는데, 지금까지도 잘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1995년, 안동 공단 내에서 식품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 그는 공장 옆에 작업실을 짓고 서각에 빠져들었다. "서각 작업은 힘들지만 재미있었어요. 나무의 결을 따라 파가면서 망치가 내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어요. 만들고 난 뒤 식물성 기름을 작품에 칠하면 나무의 결이 살아나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성취감과 희열이 가슴 가득 차올랐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던 때라 그는 직원들 눈치를 보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 선갤러리의 내부 전경.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김해의 서각인들을 만나게 된다. "나무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김해를 대표하는 서각인이자 목공예가인 양제 류제열 선생님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듣게 됐습니다. 목공예가 배우고 싶어 양제 선생님을 제가 먼저 찾아뵈었고, 제 이야기를 들은 김해의 서각인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그렇게 만나 모임도 결성하게 됐죠." 그는 (사)한국서각협회 김해지부의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그 무렵 큰 교통사고를 겪고 회사도 정리했다. 무엇보다 건강을 되찾는 게 우선이었는데, 이때 서각이 큰 도움이 됐다. "몸도 아팠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했는데 서각에 몰두하다 보니 머리도 맑아지고 건강도 좋아졌죠. 서각이 제가 가야 할 길이라는 걸 일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2007년, 신어산 자락의 영운마을로 들어왔다. 집과 작업실을 옮기고, 전시공간인 '선' 갤러리와 음식점 '선궁'을 열었다. "새로운 삶의 터전과 작업 공간을 찾느라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미 김해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던 때라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던 중, 영운마을 소개를 받았습니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영운마을 사람이 됐죠."
 
▲ "나무의 결을 따라 파가면서 망치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았다는 최홍주 씨는 서각인의 길을 운명처럼 걷고 있다. 박나래 skfoqkr@
음식점과 집을 지을 때, 그는 예술의 길에 접어든 초보자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갤러리를 지었다고 말했다. "초보자들도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인전을 여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전시장을 빌리는 것도 그렇고, 다른 경비도 많이 드니까요. 제가 전시회를 해보니 알겠더라구요. 그리고 큰 전시장에서 덜컥 전시를 하는 것도 적잖이 부담스럽죠. 그런 분들께 디딤돌 역할,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첫 전시장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선 갤러리는 그런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문을 열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전기료만 받고 무료로 갤러리를 빌려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첫 전시회를 열면서 자신감을 가지는 신인작가들을 만나는 게 너무 기쁩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음식점 운영을 위해 갤러리를 열었느냐는 말들도 한다. 그는 "음식점을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노래방이 낫지 않겠냐"며 웃었다. 그는 "밥 먹으러 왔다가 예술 작품을 보고 난 뒤 즐거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또한 예술가들에게는 힘이 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시작된 선 갤러리는 김해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지역의 예술가들이 선 갤러리를 찾아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회는 약 15일 간격으로 계속 열린다. 1년에 20여 회나 계속 전시회가 이어지는 곳이다. 또한 '김해 미술인 대동전'과, '선·색깔 있는 사람들' 정기전도 매년 열리고 있다. '선·색깔 있는 사람들'은 최홍주를 중심으로 서각·동양화·서양화·사진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함께 모이는 전방위적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2008년에 결성된 이 모임에서 최홍주는 회원들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고 있다.
 
최홍주는 지금 현대적 조형미를 가미한 현대서각 작업을 하고 있다. 글자를 그림으로 풀어 서각에 접목하는 것이다. 한글과 한자를 몇 번씩 써보면서 획을 풀어헤치고, 흔들어보고, 뒤집어보면서 글자의 의미를 담은 그림을 포착해 나무에 새겨 넣는다. 예를 들면 '웃음'이라는 글자를 새긴 작품은 남녀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으로 새기는 방식이다. 그의 현대서각 작품은 글과 그림, 그 안의 의미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서각인이자, 신인작가들을 위한 갤러리 운영자이고, 김해를 중심으로 한 예술인 모임의 좌장인 최홍주의 호는 '예산(藝山)'이다. 한 한학자가 "재주를 산처럼 쌓으라"며 지어주었다. 예산 최홍주는 영운마을에서 자신의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 최홍주
선 갤러리 관장, 선·각연구회 원장, 한국서각협회 회원, 한국 미술협회 회원, 김해금벌작가회 회원, 선·색깔 있는 사람들 회원. 한국서각협회경남지회부회장·김해지부 지부장 역임. 문자와 만남 전(세종문화회관), 중국 명가미술관 개관 100인 초대전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부스전·단체전·초대전 다수. 경북 상주 극락정사·김해시청·김해문화의전당·진주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 <대한민국 서각인 연감>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총람>에 작품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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