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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의 국경 경계를 지키던 가락국 산성(47) 생림 마현산성(馬峴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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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07.16 11:30
  • 호수 132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김해 쪽 봉우리에서 바라본 생림 나전공단 전경. 큰바위 절벽 아래로 시야가 확 트이며 무척산 동쪽 능선과 석룡산이 연이어 보이고, 작약산 줄기도 흐르고 있다.

기독공원묘원서 산성 북문 길 들머리
초입부터 허물어진 성곽 돌무더기 지천
큰바위절벽 소나무들 낙락장송 기개
김해 쪽 봉우리 서면 생림 풍광 한눈에
절벽 아래 틈 메워 성 이은 암벽 흔적
남문 방향 길 내리면 옛 가야의 숨결이


생림 마현고개를 넘는다. 가락국 병사들이 말을 타고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말을 타듯 끄덕끄덕 편안한 마음으로 넘는다. 마현고개에서 보니, 무척산이 몇몇 마을과 공단을 푸근하게 품고 있고, 생림과 한림으로 가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이 고개를 내리면 얼마지 않아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만나게 될 터이다.
 
가락국 시절, 생림은 밀양과 삼랑진에서 낙동강 건너 김해로 향하는 육로의 주요 관문이었다. 하여 생림과 한림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곳에, 국경을 지키기 위한 축성(築城)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마침 무척산 앞에 경사가 깊고 산세가 험한 산봉우리가 있어 이곳에 성을 쌓게 되는데, 마침 마현고개 인근이라 성으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터였다. 이곳에 산성을 쌓고 가락국의 안녕을 지켰는데,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마현산성이 그것이다.
 

   
▲ 퇴뫼식으로 쌓은 마현산성. 분성산성·양동산성·천곡산성과 그 형태를 같이한다.
일설에 가락국 수로왕이 축성했다고 하는 마현산성은, 산등성이 암벽과 암벽 사이를 자연석으로 띠를 두르듯 쌓아올린 테뫼식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은 김해 여러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분성산성, 양동산성, 천곡산성 등이 그 형태를 같이한다.
 
이번 산행은 '국가와 국가의 경계'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아우르고 있는 생림 마현산성을 오른다. 오래전엔 가락국 산성으로 신라와의 국경을 지키던 경계이었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산성 아래 기독교공원묘원 조성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에 그러하다.
 
   
▲ 멀리 기독교공원묘원이 산 아래에 잠들어 있다.
마현산성 입구에 들어서면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기독교인들의 묘지가 둥글게 봉안되어 있다. 봉우리 주위로 수많은 유택들이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누워있는데, 앞서 간 이들의 뜨거운 삶을 고스란히 읽는 것 같아 새삼스럽다. 그나마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 봉분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주고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다.
 
기독교공원묘원 관리동을 지나 도로를 끝까지 계속 따라 오르면, 막다른 길에 주차장이 하나 있고 그 옆으로 마현산성 안내팻말이 서있다. 소재지는 '경남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 102', '경상남도 기념물 제150호'라고 설명하고 있다.
 
안내팻말 옆 묘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른다. 아마도 산성 북문 지역으로 오르는 길일 듯하다. 묘지 곳곳에 패랭이꽃과 개망초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봉분 앞에 놓여있는 조화(造花)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묘지가 끝닿은 곳, 산 초입에서 희미한 산길이 나있다. 억센 잡초들을 걷어내며 조금씩 오르자, 허물어진 돌무더기가 산길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모두가 주먹만 한 돌들로, 성곽 어느 부위에서 흩어져 흘러내린 듯하다.
 
돌 더미 위로 잠자리 떼가 어지러이 날고, 졸참나무 숲 그늘 아래로 길은 이어진다. 허리 굽혀 길을 따른다. 숲은 깊은 터널을 이루고, 허물어진 돌 틈사이로 작은 너덜은 계속 길을 만들며 나그네를 안내한다.
 
급격하게 비탈을 오른다. 날벌레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괴롭힌다. 햇살 한 줄기 수풀로 들어올 뿐, 인적 하나 없이 적요하기만 하다. 잠시 후 허물어진 돌들이 흐트러져 너덜을 이루고 있는 곳에 이른다.
 
양옆으로 큰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자연석으로 막아 성을 쌓은 듯하다. 그 중앙에 성문 흔적이 뚜렷하다. 사람 한 사람 드나들 정도의 공간만 두고 상하좌우 튼튼하게 돌을 두르듯 쌓아올렸다. 북문이 있던 자리인 것 같다.
 
   
▲ 북문 성곽 흔적. 성곽에서 항아리 안으로 들듯 통로를 거쳐 문을 만날 수 있도록 옹성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북문의 흔적을 보니 성곽에 문을 바로 설치한 일반적 축성법이 아니고, 성곽에서 항아리 안으로 들듯 통로를 거쳐 문을 만날 수 있도록 한 옹성(甕城)형태이다. 그만큼 드나드는 자들의 왕래는 용이치 못하고, 지키는 자들은 수성하기 좋은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양쪽 바위절벽에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소나무들이, 비바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서있다. 하늘을 향해 고고하게 고개를 치켜든 품이 낙락장송의 기개와 다름 아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한여름의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비친다.
 
자그락자그락 성곽 돌을 밟으며 오른다. 뒤로는 무척산 능선이 산성을 품듯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구름 두어 점, 산등성이를 허리 감듯 흐르고 있다. 길을 조금 더 오르니 곧이어 능선이 나오고 발아래로 진달래나무와 고사리 군락이 지천이다.
 
능선 양끝으로 봉우리 두 개가 산을 이루고 있는데, 한 봉우리는 김해 쪽을 또 한 봉우리는 낙동강 쪽 삼랑진을 향해 서있다. 언뜻 보기에 산의 형태가 누에고치나 땅콩꼬투리처럼 생겨 좌우로 조망하기에 적합한 모양새이다.
 
능선 오른쪽으로 길을 낸다. 솔가리가 사박사박 부드럽게 밟힌다. 곧이어 암벽 봉우리 앞에 다다른다. 조심스레 가장 높은 암벽 앞에 선다. 발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을 이루고, 공원묘원의 유택들이 성냥갑처럼 일정하게 누워있다.
 
   
▲ 바위절벽 위로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들의 기개가 낙락장송의 그것과 다름 아니다.
그 뒤로 무척산이 떡하니 버티고 섰는데, 모든 산줄기가 한눈에 풍성하게 잡힌다. 멀리 암릉지대도 단단하게 서서 나그네를 바라보고, 무척산 정상 신선봉을 중심으로 마루금도 뚜렷하게 물결치며 출렁인다. 암벽에서 자라는 소나무 가지 끝, 파란 솔방울이 한창 영글고 있는 싱싱한 여름 산야다.
 
다시 반대편 봉우리로 향한다. 능선에서 잠시 벗어난 곳, 북문 쪽 바위절벽 위로 성곽이 보인다. 암벽과 연결하여 축성을 했다. 그 성곽은 여러 암벽을 연결하여 두 봉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자연을 적절히 이용한 가락국 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곧이어 김해 쪽 봉우리로 오르니 이곳에도 큰 바위절벽이 버티고 서있다. 절벽 위에 서자 일시에 시야가 확 트인다. 무척산 동쪽 능선과 석룡산이 연이어 보이고, 작약산 줄기도 튼튼하게 흐르고 있다. 발아래로는 나전공단이 보인다. 굴참나무들이 바람에 거세게 흔들리고 하늘에는 하염없이 잠자리 떼가 맴을 돌며 사람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다.
 
봉우리 절벽 아래를 살펴보니 또 다른 고만고만한 절벽들이 연이어 불쑥불쑥 솟아나 있다. 조심조심 암벽 사이로 길을 내며 내려간다. 또 다른 암벽. 암벽 너럭바위 위에는 돌을 덧대어 쌓아올린 흔적이 남아있다.
 
성곽을 더 높이 쌓아올리기 위해 기존 암반에 돌을 더 쌓아올린 듯하다. 암벽 사이 틈을 메워 성을 이은 흔적도 보인다. 몇몇 암벽마다 모두 그런 형태로 성곽을 쌓았는데, 그 암벽과 암벽 사이를 자연석으로 한땀 한땀 이어놓은 것이다.
 
암벽 사이사이를 조심스레 타며 길을 낸다. 바위둘레를 두르며 길이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하여 길을 찾느라 성곽의 형태를 더욱 세세히 파악하며 길을 내린다. 그렇게 길을 내리다 보니 성곽의 남문자리가 나온다.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의 성곽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남문 쪽 전체 길이는 대략 200여m 정도 되어 보이며, 높이는 4m, 너비는 3m 쯤 되겠다. 현재 성을 복원하고 하고 있는지 최근의 돌들로 축성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성벽은 밑이 넓고 위가 좁아지게 쌓아 튼튼하고 옹골지게 생겼다. 그리고 경사가 심한 곳에는 성곽 붕괴를 막기 위해, 주 성벽 아래에 보조성벽을 쌓아올린 2단 축성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 시절 사람들의 지혜로움을 또 한번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남문자리에 선다. 남문이 있던 자리에는 넓은 돌계단이 자리하고 있는데, 성문으로 들기 전 계단을 올라 성안으로 들게끔 만들어 놓았다. 견고하고도 묵직하다. 이 성벽은 남문자리에서 서쪽으로 산을 타고 오르다 다시 큰 암벽과 이어지게 축성되었다.
 
   
▲ 바위 틈을 작은 돌들로 채워 성을 이었다.
성곽에 올라 걸어본다. 지금은 나무에 둘러싸여 조망이 없지만, 그 시절에는 마현고개로의 왕래가 손에 잡힐 듯 환하게 조망되었을 터이다. 가락국 때 축조하여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전기까지, 김해로 드나드는 인마물자(人馬物資)의 동향을 조망했을 마현산성이다.
 
그 성곽을 탑돌이 하듯 이리저리 꼼꼼하게 챙겨보며 돌고 또 돈다. 돌 틈으로 온갖 잡초들이 쑥대밭을 이루고, 돌이끼가 그 스러진 가락국의 흔적을 헤아리고 있다. 참으로도 덧없는 세월이 머무르고 있음이다.
 
성곽을 빠져나와 다시 길을 재촉한다. 옻나무들이 사람 키보다 훌쩍 높아, 얼굴이며 목덜미를 사정없이 핥아댄다. 흘러내리는 흙더미의 급경사와 날벌레들의 공격 속에서도 이러구러 조심스레 산을 내린다.
 
다시 죽은 자들의 세계, 무덤자리로 접어든다. 그러고 보니 마현산성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간과 더불어 과거와 내세가 묘하게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땅으로 길을 내리며 이 절묘한 공존의 평화로움이, 언제까지나 깨지지 않고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죽은 자의 묘역을 이리저리 탑돌이 하듯 돌며 마현산성을 바라본다.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성이나 유택이나 모두 별일 없었던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나그네도 짐짓 모른 채, 사람 사는 세상으로 슬쩍 발을 내딛는 것이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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