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볼까, 라는 말이 삶의 대안도 희망사항도 아니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의 책은 '정말 대단하다, 부럽다' 감탄과 주눅을 불러오고, 실패하여 역귀농 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나는 어림도 없겠구나" 겁먹게 만든다.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도 김해 생림 마사리에서 농사를 지었던 일을 책으로 냈는데 앞의 책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런 저런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지면으로 블로그로 본 내용도 있지만 책으로 읽고 있으니 마치 휴먼 다큐프로그램 <인간극장>이라도 보는 듯하다.
 
'우수, 첫삽' '오미자 구기자 심다' '감잎차 대작전' '억새밭을 머위 밭으로' 등의 소제목으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부산에서 마사리 까지 오고 가는 지난 4년 동안 두 사람이 겪은 일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책 제목 <영철이하고 농사짓기>(도요/2010)를 보는 순간, 최영철 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최영철 시인과 더불어 농사를 짓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안 해 본 일을 하려니 연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판 흙은 또 어떻게 긁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일이 서툴러 힘들어 하는 본인의 심정을 솔직하게 쓴 대목에선 웃음이 절로 터진다. 책으로 읽고 있어도 이런 심정인데, 전업농부들이 보면 이들이 일하는 게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김해에서 태어나 그래도 농사일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이유로 조명숙 소설가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텐데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까지 나왔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어갈 수록 어쩌면 '영철이하고 농사짓기'가 가능하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농사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아침에 일어나면 일기예보부터 챙기게 된다는 시인은 평생 하늘을 우러러 태양과 비의 조화를 기원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농사꾼들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조금씩 일에 익숙해져 가는 두 사람은 물길과 진입로는 물론이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얽힌 부분도 그들 방식으로 풀어가며 마사리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 책에는 우아한 전원생활 이라는 식의 거짓 낭만도, 잘 적응하고 있다는 섣부른 자랑도 없다. 날씨 살펴 당장 마사에 가고 싶다가도 몸이 힘들면 꾀가 나고, 나무 이름을 몰라 이름표를 달아주면서 얼굴을 익히고, 고라니가 무청을 모조리 뜯어먹고 가도 무를 남겨준 것을 감사하고, 그러면서 천천히 그들의 밭주인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천천히 기록하느라 명색이 시인이나 소설가이면서도 미사여구로 장식한 문장도 없다. 그러나 소나무를 구해 심으러가는 대목은 시인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어린 소나무를 차에 싣고 가며 나는 녀석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멀미는 하지 않는지, 우리가 싫다고 문 열고 도망가지나 않을 지 걱정이 되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녀석은 다소곳하게 우리를 따라왔다." 시만 쓰는 사람도, 농사만 짓는 사람도 쓸 수 없는 문장이다. 농사를 배우고 있는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삶에 바탕을 둔 문장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농사를 짓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리고 작은 행복과 기쁨은 어떻게 수확했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책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언젠가 두 사람에게서 소류지에서 농사를 지은 무와 배추를 곁들인 저녁을 대접받은 적이 있다. 당근보다 작은 무, 깻잎만한 배춧잎이었지만 얼마나 알차고 고소한 맛이었는지 모른다. 그 때 시인과 소설가 부부가 이런 아름다운 사고(책 내는 일)를 저지르지 않을까 조금은 짐작했었다. 김해 마사리에서 그들이 수확할 것은 무엇일까, 금광을 파는 마음으로 판 구덩이에는 또 무엇을 심을까 궁금하다.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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