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계 변리사가 '친정집' 밥상을 앞에 두고 "집밥 먹는 것처럼 항상 편안하고 맛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해성당 인근 세월의 흔적 간직한 건물
살던 집 조금만 고쳐 류미진 대표가 운영
들깨·매운찜 속 논고동 찾아 먹는 재미
오리양념·철판구이와 갓 지은 돌솥밥
친정엄마의 정성 느껴지는 따스한 한상

요란하게 꾸민 음식이 지천으로 널린 요즘은 '집밥'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은근히 인기다. 조금 투박하더라도 정성이 담긴 밥을 먹으며 소박한 여유를 부리는 맛이 쏠쏠하달까? 바쁜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한 끼라도 집에서 밥을 먹으려 하는데, 그때 집밥 같은 밥을 파는 식당은 큰 힘이 된다. 심지어는 집밥 식당을 찾아다니는 '소셜 다이닝'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 적당한 밥집을 발견하면 모바일 기기를 통해 공유하고 함께 찾아가곤 한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집밥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을 때보다 10배나 많은 어휘를 배운다.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은 집밥을 먹게 하는 것만으로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난 사례도 많다. 집밥을 먹고 크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두개골이 더 두꺼워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출향인사로서 오랜 기간 중앙부처에서 일했던 김석계 변리사에게 '친정집'은 저절로 발길이 가는 그런 밥집이다. 동상동 김해성당 옆에 있는 친정집 건물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김 변리사의 어릴 적 추억 속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동상동 출신인 그는 친정집이 식당으로 바뀌기 전 가정집이었을 때 늘 그 주변에서 놀곤 했다. 건물에는 오랜 세월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살아 있고, 집주인이 신경 써서 가꾼 마당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안에서는 연륜이 묻어나는 식탁과 식기가 손님을 반긴다.
 
밥을 판 지 채 한 해가 되지 않은 친정집은 류미진 대표의 진짜 '친정'이다. 가족이 오래 살았던 집을 아주 조금만 고쳐 음식을 만든다. 감히 손님의 추억에 맞서지 않고, 집밥은 아니지만 집밥 같은 밥을 파는 데 만족하는, 겸손함이 있는 맛집이다.
 
김 변리사는 친정집 맞은편에 아직도 살고 있는 어머니 곁에서 살고자 귀향을 결심했다. 밥 때가 되면 사무실을 나와 고향집에 잠시 들렀다 친정집으로 방향을 돌려 밥을 먹고 가곤 한다. 그는 기술고시에 합격해 특허심판원 심판관과 특허법원 기술심리관, 대법원 특허조사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 김해에 '김석계 특허법률사무소'를 열고 지역기업들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비수도권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특허법률사무소다.
 
김 변리사가 고향에 정착하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은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특허사무실은 업무 특성상 계약발주나 사건의뢰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벌려면 서울에서 사무실을 여는 게 훨씬 유리하지만, 우리가 꼭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친정집의 류 대표는 그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두 살 터울의 후배다. 김 변리사가 김해에서 학교에 다녔던 그 시절의 김해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어딘가 연이 하나쯤은 닿아있을 정도로 바닥이 좁았다. 그렇게 우리의 형제, 자매, 남매들은 또 다른 형제, 자매, 남매들과 얽히고 설켜 대견하게도 잘 살아갔다.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든 두 사람도 각각 다른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대학 동문으로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온 경우다.
 

▲ 논고동찜.
친정집의 주 요리는 논고동찜이다. 취향에 따라 들깨찜과 매운찜을 고를 수 있다. 들깨찜을 먹어보니 고소한 들깨 속에 들어 있는 논고동을 찾아 먹는 재미가 있다. 논고동은 논우렁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논에 약을 치지 않았던 옛날에는 모내기가 끝난 6~7월경에 논고동이 많이 났다. 배 채울 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 논고동은 좋은 간식이었다. 논고동찜은 농사일을 잠시 쉬면서 먹는 새참으로 인기였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식탁에 오르는 팔방미인이었다고 한다.
 
친정집에서는 오리고기도 먹을 수 있다. 고기 종류를 팔긴 팔아야겠고, 다른 고기보다는 건강에 덜 해롭다는 오리를 선택했다고 한다. 오리고기는 기름기가 많지만 동물성 지방 치고는 불포화지방의 비율이 높아 소비량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오리고기의 불포화지방산 함량은 돼지고기의 배, 닭고기의 다섯 배, 소고기의 열 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불포화 지방이 몸에 좋다는 것은 아니고, 핏줄 안에 덜 쌓이는 정도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잘 만든 오리고기는 맛이 일품이다.
 
친정집에서 내놓는 오리요리는 양념불고기와 흔히 '오리로스'라고 하는 철판구이로 나뉜다. 오리불고기는 매운 양념에 재워 불판에 구워 먹는 요리로, 가장 대중적인 요리지만 조리하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 오리로스는 얼마나 좋은 고기를 쓰는가가 맛을 좌우하는데 친정집에서 파는 오리고기는 최상품만 쓰므로 맛이 괜찮다.
 
▲ 오리양념불고기.
"좋아요." 김 변리사는 음식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류 대표가 방금 지은 밥과 국을 손수 퍼준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주문받은 다음에야 돌솥에 밥을 하니 마음이 바쁜 사람은 올 곳이 못 된다(!).
 
친정집에서 밥상의 진정한 주인은 밥이다. 김 변리사의 소개로 알게 됐다는, 도예원에서 만든 고풍스러운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평정심을 잃고 만다. 이 밥만 있다면 반찬 한두 가지만 가지고도 두세 그릇은 깨끗이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친정집의 반찬은 유별나진 않아도 끝 맛이 혀에 받치지 않아 밥맛을 제대로 살려준다.
 
백문이 불여일식. 친정집의 진가는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한 번 먹어보면 당신은 어느새 단골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곳의 음식은 느리지만 풍요롭다. 자연에 정성만을 담았다는 광고 문구는 대체로 허상에 불과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친정집은 진짜다.


친정집은 동상동 725-2에 있다. 밥값은 논고동찜 3인분~5인분 3만 5천 원~6만 원. 양념·훈제오리 3만 5천 원. 찹쌀수제비 7천 원. 논고동 회무침 등 각종 안주가 1만 원~1만 5천 원이다. 술을 팔지만 오래 앉아서 마실 분위기는 아니다. 주차는 식당 앞 공영주차장에 하면 되고 일요일은 쉰다. 055-33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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