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 선생님이 있다. 옆집에 사는 제자 미경이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듣는 소리가 종종 담 넘어 들려올 만큼 가까이에서 아이들과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하루는 풀이 죽어 심부름을 가는 미경이에게 왜 야단맞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동생들이 방을 안 치웠는데 언니라는 이유로 야단맞았다고 투덜거린다. 선생님은 미경이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나도 언니라서 엄마한테 맨날 혼났어. 언니가 무슨 죄니?"
"선생님은 동생이 몇 명인데요?"
"네 명."
"힘드셨겠다."
 
풀죽어 힘이 없어 보이는 아이에게 타이르고 가르치기보다도 먼저 편들어주면서 자라면서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의 마음에 미경이의 마음은 풀어졌을 것이다. 미경이뿐만 아니라 맏이로 태어나 자란 모든 사람이 '아이고, 나도 우리집 대표선수로 야단 참 많이 들으면서 자랐지.' 고개 끄덕거릴 추억이기도 할 것이다. 충남 청양중학교 국어교사이며 시인인 최은숙 선생님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이다.

최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 책 '그래, 지금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에는 모두 16명 선생님들이 첫수업 시간에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우리의 교육현장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한숨이 나올 지경이지만,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을 위해 공부하고 마음을 쏟는 선생님들이 많다. 그렇게 학교와 제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 중에서 16명의 교사들이 모였다. 시험과 입시에 내몰리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현실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래서 정작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살아온 길도 가르치는 학교도 제각기 다르지만, 이 책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교단에 처음 서던 설레임과 희망과 열정을 담아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시구절을 들려주며 최은숙 선생님은 나도 너희들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그렇게 흔들리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거라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준다. 밀양 밀성고등학교 이계삼 선생님은 전상국의 소설 '우상의 눈물'로 첫수업을 연다. 문제아로 낙인찍힌 기표, 똑똑하지만 권력지향적인 형우, 형우를 통해 모범반의 허울을 만들어가는 담임이 나오는 소설내용을 함께 토론하며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먼저 열어준다.
 
국어교사는 국어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책읽기이며 글쓰기라고, 그것이 살아가면서 큰 자산이 되어줄 거라고 말한다. 수학과 과학을 어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주기 위해 고민하는 속마음을 고백하는 선생님.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선생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빠져보라고 용기를 주는 선생님, 자신의 실수까지 털어놓으며 희망을 주는 선생님 등 책 속에는 '진실'과 '상식'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첫수업 시간. 오늘부터 너희들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친구도 너의 자아 따위도 모두 버리고 그저 공부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16명 선생님들은 공부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첫수업 시간에 들려주고 싶어 한다. 다시 학교를 다닌다면,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 역시 더 많은 책을 읽고, 싫은 과목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마음의 키가 더 자랄 것을 생각하니 부럽기까지 하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들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아이들이 흔들려 보이는가. 그 밑바닥을 보라. 중심이 없는 것이 어찌 흔들릴까, 날려가 버릴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말한다. 지금은 조금 흔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중심을 잡아가며 비로소 깊게 뿌리내리는 것이라고.
신현수 외 지음/작은숲/340p/14,000원






박현주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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