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에로니무스 보쉬 작품 '최후의 심판'.
'킬러들의 도시'란 영화를 보았다. 원래의 제목은 '브뤼헤에서 In Bruges'이다. 시작은 이렇다. 킬러인 레이와 켄은 자신들의 보스에게서 벨기에의 브뤼헤에 2주 동안 가 있으라는 연락을 받는다. 레이가 런던에서 대주교를 암살하면서 실수로 어린아이를 죽인 것이 이유였다. 킬러로서 치명적 실수를 한 젊은 레이에게 베테랑 중년의 킬러 켄을 함께 붙여 보낸 것이다. 브뤼헤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관광마차를 타고, 운하보트를 타고, 그리고 그뢰닝 미술관을 찾는다. 브뤼헤를 찾아온 대부분의 관광객이 그러하듯.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레이는 미술관에서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받은 광경이 그려진 헤라드 다비드의 그림을 보게 된다. 게다가 그곳에는 지옥에서 지독한 벌을 받는 풍경을 그린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최후의 심판'도 있다.

이제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브뤼헤로 가는 길이다. 안트베르펜에서 기차를 갈아타며 시간을 놓쳤다. 차라리 시내 구경을 좀 할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또 다시 어중간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안트베르펜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고향이다. 영국 작가 위더의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화가지망생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도 바로 이곳의 한 성당에 걸려 있다. 프랑스식으로는 앙베르라 불리는 도시. 안트베르펜 기차역. 플랫폼 장의자에 늘씬하게 앉아만 있다가 브뤼셀에서 올라온 지선 브뤼헤 행 기차를 탔다. 벨기에 땅인데 사람들은 여전히 아침에 떠나온 암스테르담에서처럼 네덜란드 말을 쓰고 있다.

플랑드르. 안트베르펜이나 브뤼헤를 함께 뭉쳐서 부르는 지명이 플랑드르다. 네덜란드의 남부와 프랑스의 북부, 그리고 벨기에의 서부를 아우르며 모직물 산업과 더불어 한때 북유럽 최고의 경제 중심지였던 곳. 플랑드르는 지명이면서 또한 플랑드르 미술이란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플랜더스는 플랑드르의 영어식 표현이다.
 

▲ 마가레타 반 에이크의 초상.
'북유럽의 베네치아', '벨기에의 보석', '지붕 없는 박물관의 도시' 등등의 수식어로 치장된 도시 브뤼헤. 브뤼헤가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은 11세기부터다. 그리고 브뤼헤의 영광은 15세기에 절정에 달한다. 영국 모직물의 독점적 수출입 항구로, 또 한자동맹의 일원으로 북유럽 최고의 경제 중심지가 된 것이다.

어쨌거나 역사에서 문화의 발달은 늘 경제적 번영과 2인3각 함께 한다. 플랑드르 미술 또한 플랑드르의 발전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브뤼헤 출신의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1395~1441)가 유화를 처음 사용한 화가라는 전기 작가 바사리의 기록이 비록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는 동시대 최고의 기량과 기술을 함께 가진 화가였다.

당시 플랑드르 미술은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인정하는 15세기 유럽의 최고의 경제적 부와 문화적 수준을 가진 이탈리아보다도 월등하게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플랑드르의 경제력도 이탈리아에 뒤지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프레스코나 템페라가 전부였다. 프레스코 기법은 젖은 회벽에 안료를 넣어 말리는 식으로 색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벽화도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템페라 기법은 안료에 결합력이 있는 점착제를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흔하게는 계란 노른자를 사용한다.

동양에서는 먹이나 안료에 아교를 섞었다. 얀 반 에이크보다도 뒷 세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조차도 물 대신 기름을 사용하는 유화 기법에 서툴렀다. 다빈치가 유화 사용법을 정확하게 알았더라면 저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 지금처럼 박락이 일어나는 등 심한 손상을 입진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플랑드르 미술의 선진성을 쉽게 알 수 있다.
 
 15C 북유럽 경제 중심지 도약 브뤼헤
경제적 번영 발판 문화예술 발전
동시대 이탈리아보다 기량 월등
반 에이크·헤라드 다비드·보쉬 등
세밀하고 정교한 화법 유화 작품 중심
300년 가까운 미술 역사 컬렉션 전시

1930년 문을 연 그뢰닝 미술관은 엑크후트 수도원에 딸린 부지 위에 건립 되었다. 미술관은 브뤼헤 시가 소장하고 있던 컬렉션들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술관 컬렉션 역사는 짧지 않다. 이미 1717년 회화와 드로잉을 위한 독립적인 아카데미가 설립되었고 그 컬렉션은 19세기 말까지 계속 되었다.

이제 그뢰닝 미술관에 들어가 얀 반 에이크가 자신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와 성모자를 그린 대형의 그림을 지나고 나면 젊은 킬러 레이가 곤혹스럽게 그 앞에 서 있는 헤라드 다비드(Gerard David·1460~1523)의 그림이 보인다. 제목은 '캄세스의 재판'. 같은 크기의 2장으로 된 그림은 고대 페르시아의 캄세스왕에 관한 내용을 그린 것이다. 왼쪽 판넬은 체포되는 장면을 오른쪽 판넬은 형벌을 받는 장면이다. 오른쪽 판넬에서 판사였던 시삼네스는 캄세스 왕에 의해 돈을 받고 부당한 재판을 한 죄 값을 치르는 중이다. 살아있는 시삼네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사람들의 손길이 미안한 말이지만 참 진지하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어물전의 생선 토막과 정육점에 걸린 고기 살점 등 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상들을 아주 세밀하게 그린 그림들이 많다. 당시 사람들은 왜 이런 그림들을 좋아했는지 궁금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그런 정물화들이다. '캄세스의 재판'을 보노라면 자꾸만 암스테르담 그 그림들이 생각난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렇듯 사실적인 묘사에 집착한단 말인가. 입에 칼을 물고 발뒤꿈치의 살가죽을 벗기는 사람의 얼굴은 숙련된 장인의 풍모마저 느껴진다. 그렇다. 이 그림은 브뤼헤 시청사의 의회 회의실에 걸어둘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그림의 목적이 형벌의 사실성에 있었다면 시의원이면서 동시에 판사이기도 했던 브뤼헤의 권력자들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했으리라. 아무튼.
 
이번엔 킬러 레이가 켄에게 묻는다. "이건 무엇에 대해 그린 것이죠?"하고 "이건 최후의 심판에 대해 그린 거야"하고 켄이 대답한다. 레이가 다시 묻는다. "이것을 믿어요?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 지옥을?" 그러자 켄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대답한다. "글쎄"라고.

글쎄 히에로니무스 보쉬(1450~1516)의 그림은 특이하다. 때로는 초현실주의 그림 같기도 하다. 아무튼 보쉬의 그림은 마지막 날의 공포를 계속적으로 일깨움으로써 종교적으로 민중의 신앙심을 다잡으려 당시 지배층이었던 가톨릭 교회가 즐겨 주문한 그림이었다고 한다.

보쉬의 그림을 보면 그가 16세기에 활약한 화가라기보다는 20세기쯤 초현실주의 계열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뒷날 그뢰닝 미술관의 '최후의 심판'은 보쉬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고 일종의 모작일 것이라 주장하는 글을 다른 책에서 읽었지만. 아무튼 그의 그림은 플랑드르화의 대가인 피테르 브뤼헬(1525-1569)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서양미술사에 새로운 풍속화를 정착 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벨기에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브뤼셀을 제치고 브뤼헤라고 한다. 그리고 누가 꼽았는지는 모르지만 파리 로마와 더불어 세계 10대 관광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영화에서 킬러들이 여행한 을씨년스러운 겨울과 달리 여름의 브뤼헤는 관광객들로 도시 곳곳이 넘쳐난다.

하지만 브뤼헤가 처음부터 관광지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바다와 면한 항구였던 도시는 15세기 말 무렵부터 침전으로 인해 급속도로 내륙으로 변해갔다. 항구의 기능과 상업 중심지의 기능도 인근 도시 안트베르펜에게 빼앗겼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쇠퇴의 길을 걷던 브뤼헤를 되살린 것은 19세기 말에 시작한 운하 사업이었다. 16km의 운하로 바다와 연결되었고 새 항만은 새로운 산업으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400년 이상 침체기에 빠져있던 브뤼헤를 되살린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지킨 덕분이었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한 브뤼헤는 차츰 중세 도시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로 이름을 얻으면서 연간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된 것이다. 그리고 2000년 도시 전체가 '역사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그뢰닝 미술관(Groeninge museum) ──────
15세기부터 16세기 초의 플랑드르 르네상스 직전 작품들이 소장품의 핵심을 이룬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 얀 반 에이크, 로지에 반 데어 바이덴, 한스 메믈링, 헤라드 다비드, 히에로니무스 보쉬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요 전시 작품으로는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거장 얀 반 에이크의 작품 '마가레타 반 에이크의 초상'이 있는데 화가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대주교 요리스 반 데 파엘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는 세밀한 묘사와 함께 뛰어난 색채로 유명한 작품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세폭 짜리 제단화 '최후의 심판'은 종교적 심판화나 지옥도를 많이 그렸던 보쉬의 매력적인 작품의 하나라는 평이다.

·주소 Dijver 12 Brugge
·전화 050 448711
·개관시간 4월-9월 09:30~17:00
·겨울기간 화요일 폐관
·입장료 6.2유로


■ 여행팁 - '지붕없는 박물관의 도시' 브뤼헤 ──────

도심과 교외를 합쳐 인구 12만 명의 작은 도시 브뤼헤는 유럽에서도 옛 중세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다. 거기에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운하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레이스를 파는 기념품 가게와 초코렛 상점이 시내에 줄을 이었고, 47개의 종을 거느린 종탑과 시청건물 그리고 마르크트 광장을 둘러싼 플랑드르 특유의 중세풍 건물들이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특히 맥주가 유명한데 시판되는 맥주의 종류만 350종이 넘는다고 한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여름 여행을 계획한다면 미리 숙소를 예약하는 편이 좋다.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붕 없는 박물관의 도시답게 브뤼헤 시내에만 미술관과 박물관이 10여개나 있다.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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