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임금 세조는 역사를 바꾼 인물 중 하나이다. 수양대군이었던 그는 한명회 등 훈구파를 등에 업고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살해하고 단종을 폐위시켜 왕위에 오른다. 성공한 혁명인지 쿠데타인지의 여부는 역사학자와 헌법학자의 몫일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집권 과정 때문인지 <조선왕조실록> 중 '세조실록'을 보면, 그의 건강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육조직계제와 진관제와 직전법(職田法)을 실시하여 왕권강화의 모범을 보였던 정치적인 치적 이면의 속앓이였을까? 그는 평생 질병에 시달려 수많은 의원들을 겪었고, 급기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의약론(醫藥論)>을 지어 의원들의 의도를 제시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팔의론(八醫論)'이다. 심의(心醫), 식의(食醫), 약의(藥醫), 혼의(昏醫), 광의(狂醫), 망의(妄醫), 사의(詐醫), 살의(殺醫)가 바로 그것이다.
 
심의는 환자의 마음을 다스려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식의는 환자의 식이조절을 통해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며, 약의는 투약을 통해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다. 이상 심의, 식의, 약의는 양질의 의사에 속한다. 혼의는 환자의 질병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의사, 광의는 환자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학과 의술의 도리를 모르고 그릇된 약을 처방하는 의사, 망의는 환자의 병을 임의대로 진단하고 투약하는 의사를 말한다. 또 사의는 없는 병을 만들어 약을 쓰는 못된 의사를 일컫는다. 이상의 혼·광·망·사의 그릇된 면을 고루 갖춘 의원이 바로 살의가 된다.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원이라면 의당 심·식·약의 양의(良醫) 중에서도 심의가 최고의 경지임을 안다. 그리고 흥미로운 부분은 세조가 바로 식의를 심의 다음의 경지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훨씬 후대인 선조 때에 간행되었던 <동의보감>에서도 이러한 유지를 그대로 받들고 있다. <동의보감> 내상문(內傷門)에 보면 식약료병(食藥療病)이라 하여 '무릇 병에 걸리면 먼저 식이요법을 적용해야 하며 그래도 치유되지 않으면 약을 써야 한다. 그러므로 음식물과 약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 약물치료만큼이나 식이조절을 통한 질환의 치료가 중요함을 내상문의 서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시절에 의료인이 되기 위해 많은 질병과 치료법들을 배웠다. 점점 정복되어가는 질환도 있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의아했던 것은 '병인은 모른다'라는 기술이 질병의 숫자만큼이나 많았던 점이다. 고혈압의 경우 원인불명의 것을 편의상 '본태성 고혈압증'이라 분류하거나, 체온이 38.3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발열 증상이 3주 이상 지속되나 원인을 모를 때 '원인불명열'이라 붙이는 것이다.
 
때문의 약물만큼이나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소화제 처방보다 된장과 무즙을 권유하고, 패스트푸드 식이를 자제시키고, 수입 밀가루로 만든 음식보다는 우리 밀과 통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베지탁터(VEGEDOCTOR)'라고 하여, 채식을 하는 의료인의 숫자와 관심이 느는 것도 그러한 흐름일 것이다. 세 끼니 중에서 한 끼니라도, 현미채식을 하는 대중의 숫자가 늘기를 기원해 본다. 이것이 진정 '디톡스(Detox 제독요법)'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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