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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마다 신묘한 가락국 전설, 골마다 금바다 사람들의 애틋한 설화(50)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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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09.03 16:59
  • 호수 138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무척산에서 바라본 김해의 산줄기들.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지난한 세월 제자리 지키며 앉아
쇠의 바다 김해를 품고 가락국의 신화를 지키며
김해사람들의 마음의 '안산'으로 저마다 '신화의 숲'이룬 산들

굽이치는 낙동강을 시작으로 드넓은 김해평야 베고 누워
동신어산에서 지리산 영신봉까지 231㎞를 내달리는 낙남정맥
그 시발점에 자리한 산들

수행하듯 오른 산에서 잠시잠깐 되잖은 깨달음에 득의양양
환속하던 모습마저 지켜주던 어미 품 같던 '김해의 산'
가락의 웅혼한 역사 품고 김해 사람들의 따듯한 속내 닮았어라


이번 50회로 '김해의 산을 거닐다' 연재를 마친다. 연재를 시작했을 때 지인들은 "너른 평야를 가진 김해에, 산이 몇 개나 된다고 연재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기실 연재 의뢰를 받고 난후, 부산일보 인기 등산코너 '산&산' 터줏대감이었던 진용성 현 광고국장의 도움으로 넘겨받은 산은 20여 개. 김해의 이 산 저 산을 끌어 모아 20여 회 정도로 가볍게 시작한 터였다.
 
그러나 김해의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흥미진진하였고, 알면 알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었다. 봉우리마다 가락국의 신묘한 전설이 걸려 있었고, 골골마다 '쇠바다, 김해' 사람들의 애틋한 설화가 흐르고 있었다.
 
평야를 베고 누운 산을 오를 때는 어미의 품에 드는 것 같았고, 강물에 발을 적시는 산을 오를 때는 기나긴

   
▲ 분성산 퇴뫼식 산성.
휴식을 취했다. 바다와 마주한 산에서는 자연의 광대무변함을, 산성을 가진 산에서는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결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색색의 감성을 가진 산들을 알아가면서, 가락의 웅혼한 역사와 김해사람들의 따뜻한 속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산과 사람은 닮아간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서 무릎을 치기도 했다.
 
이렇게 '김해의 산'을 오르기를 만 2년여. 대략 50여 개의 산을 거닐게 되었다. 김해시에서 기명한 산들과 등산객들이 명명해준 산,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되어 있는 산들을 망라하여 취재대상에 포함시켰으며, 지명이 있는 어지간한 산들은 그 얼굴을 보려고 노력을 했다.
 
햇수로 3년 동안 거닐었던 김해의 산들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 아무리 작고 낮은 산일지라도 가락국의 전설과 주위의 대자연이 어우러지면서, 그 속내의 웅숭깊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름으로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줬던 그들이기도 했다.
 
불목하니로 산에 들어 수행하듯 산을 오르고, 잠시잠깐의 되잖은 깨달음에 득의양양 환속을 하던 필자를, 묵묵하게 지켜주었던 그들. 그 산들을 하나하나 나직이 불러본다. 그러자 그들과의 인연이 눈앞에서 스쳐 지난다.
 
'김해의 산', 그들 중에 많은 산들이 가락국의 신화를 품고 있다. 그 만큼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오며, 가락국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던 것이다. 우선 '쇠의 바다, 김해'를 지키고 섰던 임호산은 가락국 겸지왕의 딸 유민공주와 그의 부마 황세장군, 황세장군의 정혼녀 여의낭자의 애절한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무척산은 수로왕의 아들 거등왕이 모후인 허왕후를 기리기 위해 지은 모은암과 무척대사가 창건했다는 백운암, 수로왕이 쌓았다는 마현산성 등이 있기에 가락국의 이야기가 은은하게 피어나는 곳이다. 수로왕릉을 조성하기 위해 무척산 정상에 연못을 파서 조성한 '천지' 설화도 가락국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 발아래로 펼쳐진 김해시가지, 칠산 전경.
봉황대는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유적지로, 가야시대 대표적 조개더미인 '회현리패총'과 함께 사적 제2호로 지정된 곳. 봉황대 앞의 황세바위는, 황세장군이 왕궁을 향해 오줌을 누니 왕궁 앞까지 물바다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구지봉에는 수로왕 탄강을 지켜 본 고인돌, 구지봉석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청동기 시대 때부터 굿판을 벌이며 가락국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풍요를 빌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용지봉에는 용이 잠시 쉬다 승천한 곳 '장유암'이 자리 잡고 있다. 가락국의 어머니 허왕후의 오라비인, 장유화상이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남방불교의 터전인 김해에서도 중요한 불교성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어산(神魚山)은 말 그대로 신어(神魚), 신령스런 물고기가 머무는 산이다. 그것도 가락국을 상징하는 아유타국의 쌍어(雙魚), 즉 신어 두 마리가 깃들어 있는 산이다. 신어산 영구암(靈龜庵)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원찰(願刹)로 전해지는 암자다. 멀리서 보면 거북이 머리 위에 절이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라 '영구암'이라 지었다고들 한다.
 
태정산(台亭山)은 가락국 왕의 태(胎)를 묻었다 하여 태봉(胎峯)으로 불리던 산이다. 이 산 줄기에는 허왕후와 수로왕이 합환한 것을 기리는 왕후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모산은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모(佛母)의 산'이다. '불모(佛母)'란 '부처의 어머니'란 뜻. 그리고 '승려를 낳은 어머니'란 뜻도 가지고 있다. 일곱 왕자를 출가시킨 허왕후를 기리며 붙여진 산 이름이다.
 
이와 함께 '김해의 산' 중에는 가락국을 지키는 산성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분성산을 시작으로 비음산, 각성산, 양동산성, 천곡산성, 마현산성 등이 그들이다. '김해의 산성'은 '철의 왕국' 가락국이 융성하던 시대에, 가락국을 지키고, 가락사람들을 지키던 산성이다. 돌무더기와 흙더미로 한 땀 한 땀,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쌓아올렸던 수성(守城)의 성이기도 하다.
 
   
▲ 임호산에서 바라본 김해평야.
수성(守城). 지킨다는 것은 그래서 결연한 것이다. 지켜야 할 존재를 위해 제 목숨까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킨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지킴으로써 지켜내야 할 것들의 행복을 함께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빼앗으려는 것들에게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내는 일은, 모든 방법을 다해야 하는 혼신의 노력이다. 그래서 '김해의 성'은 아름다우면서도 눈물겨운 사랑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해의 산'은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시작으로 산이 일어나, 멀리 지리산까지 남해안을 달려가는 낙남정맥. 낙동강변 동신어산을 시작으로 지리산 영신봉에 이르기까지 231㎞를 이어져 오며 경상남도를 가로지르는 진맥이다.
 
낙남정맥을 따르는 '김해의 산'은 동신어산을 시작으로 덕산, 신어산, 장척산을 거쳐 금음산, 황새봉으로 이어지다가 용지봉 능선에서 크게 출렁이기 시작한다. 대암산과 신정봉, 비음산 청라봉으로 이어지며 창원, 고성, 진주, 산청의 산줄기로 흐르다, 지리산에서 그 걸음을 쉬는 것이다.
 
   
▲ 덕산에서 바라본 낙동강 전경.
유장한 흐름의 낙동강을 따라 길을 걷는 산들도 있다. 무척산 줄기의 사명산을 시작으로 무척산, 용산, 금동산을 거쳐 동신어산, 덕산, 지라안산, 각성산이 길을 따른다. 대동수문에서 낙동강은 서낙동강과 갈라지고, 서낙동강을 따라 백두산, 까치산, 마산, 돛대산, 금병산 등이 김해벌과 함께 햇빛 받으며, 강물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다로 향하는 것이다.
 
낙동강과 흐르는 산들은 장쾌한 산 아래의 조망이 거침없이 펼쳐지는 것이 특징. 낙동강의 유장한 물길과 함께 사방팔방의 전망이 거칠 것 없이 터진다. 파노라마 사진 한 장이 눈에 새겨지듯 다가오는 것 같다.
 
오금이 저리는 바위들이 정상부에 우뚝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온갖 산골짝의 바람이 다 모여 든다. 강 건너 영남알프스의 제(諸)산들이 첩첩으로 대간을 이루고 있고 그 밑으로 물금벌과 양산신도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부산의 금정산과 백양산, 승학산 등의 산줄기가 장대한 몸짓으로 바다로 향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해평야가 키운 산들도 올망졸망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벌판이 키운 산들이라 대체로 몸집이 작은 편이다. 김해벌의 칠산을 비롯하여 대동벌의 지라안산, 마산, 장유벌의 반룡산, 용두산, 진영벌의 봉화산, 생림의 용산 등이 바로 그들이다.
 
원래 이 산들 대부분은 김해벌이 생기기 전,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던 섬들이었다. 바다의 물이 빠지고 너른 들이 되었을 때, 이 산들은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들고, 영혼의 집인 유택도 보살펴 주었다.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 사람과 자연마을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김해의 산'들은 크고 작고, 높고 낮고를 떠나서 제자리에 앉아 지난한 세월을 지켜왔다. 꿋꿋하게 '쇠의 바다, 김해'를 품고, 가락국의 신화를 지키며, 김해 사람들의 '마음의 안산(安山)'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김해의 산'을 일일이 걸어보고 바라본 바로, 김해에 있어서 이 산들은 '신화의 숲'이다. 김해의 꿈과 희망과 열정이 그들에 의해 표현되고, 김해의 정체성과 정서가 그들을 통해 숨을 쉰다. 그러하기에 '김해의 산'들은 김해의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해의 산'을 글로 옮기는 복락을 허락해준 <김해뉴스>와 산을 거닐 때 함께 해주고 뒤를 봐주던 여러 지인들에게, 마지막 말미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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