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뉴스>는 최원준 시인의 '김해의 산을 거닐다'에 이어 김대갑(49) 여행작가의 '스토리텔링 김해 여행'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김 작가는 김수로왕릉, 허왕후릉, 은하사 등 김해의 주요 유적, 유물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 형식의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 허왕후릉.
수로왕의 인연을 실은 배가
붉은 돛을 단 채 거친 풍랑을 뚫고
마침내 금관국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제 그 '때'가 온 것이다

파사의 돌을 싣고 풍랑을 잠재우며
아유타국을 떠나온 왕녀는
망산도가 가까워지자 홍조를 띠었다

"어서 오시오 공주
내 일찍이 그대를 기다렸다오"
"하늘이 정하신 임금께
하늘의 인연을 빌어 인사 전합니다"

부부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보물 수레와 신하들을 대동하고
봉황대 궁궐로 들어갔다

"나의 인연을 찾았으니
이제 진정한 나라를 만들어야겠소"
마침내 대가락국의 시대가 열렸다

 
"저기, 붉은 돛을 단 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신귀간이 흥분된 표정으로 대궐로 들어와 김수로왕에게 아뢰었다. 그 말을 들은 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리었다. 얼마 전, 유천간을 비롯한 구간(김수로왕 신화에 등장하는 9명의 씨족장)들에게 명하여 망산도(진해시 용원으로 추정)로 가 배를 기다리라 명한 터였다. 왕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속히 왕녀 일행을 대궐로 모셔오라고 했다. 구간들이 급히 궁궐을 빠져 나가 망산도로 향하자 수로왕은 잠시 눈을 감았다.
 

▲ 허왕후릉.
벌써 6년 전이었다. 하늘의 명을 받들어 이 척박한 땅에 내려온 지도. 수로왕이 황금 밧줄을 타고 이 땅에 내려왔을 때, 구간들과 백성들은 '구지가'를 부르며 신심으로 수로왕을 환영했다. 이후 새로 도읍을 정했으며, 궁성을 튼튼하게 짓고 나라의 기틀을 세워 백성을 위한 정치를 베풀었다. 해마다 봄이면 천지가 오색 창연한 빛으로 가득 찼고, 가을이면 연노란 들녘에 황금나락이 넘실거려 백성들이 배불리 먹었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 융성할 즈음, 구간들은 수로왕에게 찾아와 좋은 배필을 맞이하라고 간청을 드렸다. 왕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해왔다. 이제 그'때'가 온 것이다. 붉은 돛을 단 배가 수로왕의 인연을 실은 채, 거친 풍랑을 뚫고 마침내 금관국 앞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한편, 왕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잉신(공주가 시집갈 때 따라가는 신하)인 신보와 조광의 말을 듣고 있었다.
 
"공주님, 이제 곧 가락국입니다. 채비를 하시옵소서."

오빠인 장유화상도 미소를 지으며 왕녀에게 가락국에 다와감을 전해주었다. 왕녀는 눈을 살짝 뜨고는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섬을 바라보았다. 섬 위에서는 횃불을 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배는 횃불의 신호에 따라 차츰 망산도 근처로 다가갔다. 바람은 더 없이 향기로웠고, 하늘에는 옥색구름이 은근히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도 사납던 바다는 지극히 평온한 물결을 이루며 왕녀 일행을 반겨주었다. 처음 아유타국을 떠날 때, 거친 풍랑이 일어 배는 단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부왕께서 주신 '파사의 돌(파사석탑)'을 실으니 바다는 거짓말처럼 잔잔하게 변했다. 왕녀는 배 한가운데에 묵묵히 자리 잡은 파사의 돌을 쳐다보았다. 왕녀는 비로소 자신이 가락국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나의 낭군이 바로 저 가락국에 있단 말인가?' 왕녀는 볼에 살포시 홍조를 띠었다. 서쪽으로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는 붉디붉은 색감을 바다 위에 황홀하게 뿌리고 있었고,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담홍색 빛깔이 어려 있었다.
 
▲ 수로왕릉에 있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어진.
망산도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섞인 섬이었다. 서쪽에서 온 귀인을 맞이하기 위해 가락국에서 정성스레 만든 것임에 틀림없었다. 배가 망산도 가까이 다가가자 가락국 사람들이 향기로운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으며 공주의 배로 다가왔다. 가락국의 배는 왕녀의 배를 진중한 자세로 망산도 근처 별포로 인도했다. 마침내 공주의 배는 별포 나루터에 도착했고, 왕녀는 신비로운 향을 풍기며 나루터에 귀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유천간이 조심스레 왕녀에게 다가가 왕이 계신 대궐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왕녀는 부드럽지만 정색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대들과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따라가겠는가?"
 
이에 유천간이 급히 대궐로 달려가 수로왕께 왕녀의 말을 전했다. 왕은 그 말이 옳다 여겨 친히 왕녀가 계신 곳 근처에 납시어 화려한 행궁을 차렸다.
 
그때 왕녀는 나루터를 지나 높은 언덕에서 쉰 후에, 금과 옥으로 수놓은 화려한 비단바지를 벗어 산을 지키는 수호령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그래서 이 고개를 후세 사람들은 능현(비단고개)이라 불렀다.
 
왕녀는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수로왕이 있는 행궁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왕녀가 가는 곳마다 기기묘묘한 화초가 꽃을 피웠고, 무지갯빛 나비들이 군무를 이루며 발걸음을 인도했다. 왕은 멀리서 다가오는 왕녀를 바라보며 담담하면서도 은근한 미소를 띄웠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구려. 그대와 나는 천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기어코 만난 것이라오.'
 
수로왕은 왕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오롯이 쳐다보았다. 구간들의 주청을 애써 무시하며 그토록 기다린 사랑이었기에 왕의 마음은 더 없이 기뻤다. 왕녀는 왕에게 다가가면서 왕의 수려한 용모를 따뜻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로왕의 몸 곳곳에서 투명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에 취해 왕녀는 서서히 수로왕에게 나아갔다.
 
"어서 오시오. 공주. 내 일찍이 그대를 기다렸다오."
 
수로왕은 그윽한 음성을 발하며 왕녀를 행궁으로 인도했다.
 
▲ 파사석탑이 보관된 파사각.
왕녀는 홍조 띤 얼굴로 수로왕의 뒤를 따라갔다. 자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행궁 안으로 들어서니 도화 향기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상아로 만든 촛대에 모싯빛 촛불이 피어 있었다. 바닥에서는 호랑이 가죽이 극치의 부드러움으로 공주의 발바닥을 어루만졌다.
 
수로왕은 왕녀를 행궁 한 가운데로 인도한 후, 주위를 물리쳤다. 왕녀는 잠시 장유화상을 바라보았다. 장유화상은 부처님의 미소를 머금은 채, 은근한 눈짓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고 위로했다. 모든 사람이 물러가고 이제 행궁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후, 왕녀는 조심스레 붉은 입술을 열어 옥처럼 고운 음성으로 말했다.
 
"소녀는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성은 허 씨이며 이름은 황옥이고 나이는 열여섯이옵니다. 저의 부모님께서 상제가 명한 바대로 저를 이리로 보냈나이다. 하늘이 정하신 임금께 감히 하늘의 인연을 빌어 안부 인사를 전하옵니다."
 
수로왕은 조용히 왕녀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공주여. 내 일찍이 상제의 명에 따라 가락국의 왕이 되었고, 다시 상제의 명에 따라 그대를 기다렸다오. 이제야 우리가 만났으니 이 모두가 다 하늘의 뜻이라오."
 
▲ 허왕후릉에 있는 파사석탑. 허왕후가 아유타국을 떠나올 때 배에 싣고 온 '파사의 돌'이다.
수로왕은 이 말을 끝으로 조용히 왕녀를 품에 안았고, 왕녀는 부끄럽고 민망한 맘으로 수로왕의 품에 자신을 내맡겼다. 이로부터 수로왕과 왕녀는 사흘 밤낮을 행궁에서 보내며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사흘 후, 수로왕과 왕녀는 온갖 진기한 보물을 실은 수레와 수많은 신하를 대동하고 봉황대 궁궐로 들어갔다. 장유화상은 행렬의 맨 선두에 서서 하늘의 뜻에 따라 부부가 된 두 사람을 인도했다.
 
봉황대 높다란 좌석에 정좌한 수로왕은 구간들에게 명했다.
 
"상제의 뜻에 따라 나의 인연을 찾았으니 이제 이 나라를 진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하겠소이다. 구간들에게 정식으로 벼슬을 내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집을 정돈하고 백성들을 내 아들처럼 사랑하리다."
 
구간들과 백성들은 새로 맞은 왕비의 이름을 연호하며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대가락국의 시대가 열렸다.
 
세월이 흘러 허왕후는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았다. 왕비에게는 작은 소원이 하나 있었다. 첫째인 거등은 왕의 대를 이을 것이니, 둘째 왕자와 셋째 왕자는 자신의 성을 따라 허 씨를 받들도록 왕께 간청드렸다. 왕은 그 말을 따라 새롭게 성씨를 만들고 두 왕자로 하여금 그를 받들게 하니, 바로 김해 허 씨의 기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허왕후가 가락국에 들어온 지 어언 140여 년. 마침내 명을 다하여 수로왕과 그 후손들이 보는 중에 이승의 끈을 놓으니 그 때 나이 157세였다. 그로부터 가락국은 9대 구형왕까지 오백 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김해지역을 다스렸으니 그의 흔적은 아직도 김해 땅에 연연히 전해져 온다. 지금도 김해시 구지봉 근처에 허왕후의 능이 있으며, 파사의 돌이 왕비의 영령을 간절히 수호하고 있다. 왕비의 8대손인 질지왕은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수로왕과 왕비가 합혼했던 곳에 왕후사를 세웠다. 이 왕후사는 오백 년의 세월 뒤에 장유사로 바뀌어 현재 장유계곡 위에 유유히 남아 있다.


>> 김대갑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여행작가 겸 프리랜서 작가. ㈜장산국 콘텐츠 기획실장. 문화유산 해설사, 스토리텔러. 저서:<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2012, 영인미디어>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2005,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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