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용욱 삼방전통시장 상인회장이 '옛날손칼국수' 맛자랑을 하고 있다.
멸치와 다시마·감초만으로 끓인 육수
잘게 썬 고추와 깨·김에 다대기 취향껏
쫄깃하고 구수한 면발에 밴 추억의 맛
"깨끗하고 정이 넘치는 데다 맛까지 겸비"


"우리 집은 소개할 만한 특별한 게 없는 데예."

'옛날손칼국수'의 주인장 김혜정(48·여) 씨는 칼국수가 무슨 대단한 음식도 아닌데다 신문에 소개할만한 내용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부끄럽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다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맛이 없더라도 집에서 아이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칼국수를 만들 뿐"이라고 했다.
 
말이 쉽지, 엄마가 아이에게 만들어 주는 그런 칼국수를 파는 집이 어디 흔한가. 동네 식당에서 칼국수로 한 끼 배를 채우려다가도 '차라리 집에서 해먹고 말겠다'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꽤 많다. 배용욱(64) 삼방전통시장 상인회장이 무려 24시간이라는 장고(?)의 시간 끝에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깨끗하고 정겨운 음식'에 있었다.
 
배 회장을 따라 삼방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깔끔한 외양의 칼국수집이 보였다. 여기서 깔끔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몄다는 뜻이 아니다. 간판이 단정하고, 칼국수 만드는 주인장의 부지런한 손길을 엿볼 수 있는 유리문이 정겨웠다.
 
"여기가 칼국수 맛있게 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배 회장이 농담을 던지며 먼저 식당으로 들어섰다. 내부가 단출하다.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고, 메뉴는 칼국수와 김밥이 전부다. 속이 훤히 보이는 주방 역시 면을 자르고 삶는 기구와 꼭 필요한 조리기구 말고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다.
 
그런데, 이 집에서 즉각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청결함과 간결함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이런 집이 상당한 내공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일단 비빔칼국수와 그냥 칼국수를 주문해봤다. "여기는 맛도 있어요." 배 회장의 이 말은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이 주는 편안함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가 말하는 '칼국수의 맛'이란 게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원래 1948년생이지만 그 시절에는 으레 그랬듯 1년 뒤인 이듬해에야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는 배 회장은 원래 김해 사람이 아니다. "마산에서 사업에 실패했는데, 이곳에서 재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가 6년째 상인회장을 맡아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전통시장 발전에 힘쓰는 이유다. 삼방시장에 오기 전까지 긴 사연이 있는 듯 했으나, 그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칼국수에 관한 추억이 많다고만 했다.
 

▲ 삼방전통시장 '옛날손칼국수'의 비빔칼국수. 깔끔하고 정겨운 맛이 어릴적 어머니가 해주던 칼국수를 생각나게 한다.
삼방시장은 전통시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통시장이 아니다. 1990년대에 삼방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주택가가 들어섰고, 덩달아 상점들이 생겨났다. 어느 사이엔가 물건과 돈이 꽤 모여들었다. 그러자 상인들은 각종 정부지원 사업을 받을 수 있는 '인정(등록)시장'이 되고자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삼방시장의 태동과 함께 한 배 회장이 나서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삼방시장이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그가 상인회장을 맡게 된 것이었다. 이후 그가 수년간 노력한 끝에 삼방시장은 '인정시장'이 되는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지금의 삼방시장은 역사는 짧지만 지역민과 호흡하며 추억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삼방시장의 이야기는 칼국수의 역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칼국수가 대중화된 시점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광복 직후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간편하게 반죽해 칼로 잘라 삶아먹었다고 해서 칼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에 칼국수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칼국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시대의 칼국수는 끓는 물에 삶아 내어 냉수에 헹군 뒤 다시 맑은 장국을 붓고 고명을 얹어서 먹었다. 손이 많이 가므로 특별한 날에만 먹었고, 처음부터 국물에 면을 함께 끓이는 현대의 칼국수하고는 '귀천'이 달랐다. 지금의 칼국수는 3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련된 추억이 있을 정도여서 어지간한 전통음식의 친근함을 뛰어넘는다. 길을 가다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찾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 칼국수.
'옛날손칼국수'에서는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는다는 점에서 '별 게 있는' 식당이다. 칼국수에는 잘게 썬 고추와 깨, 김이 들어갔고, 다대기는 손님이 취향에 따라 넣어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국물은 멸치와 다시마 그리고 감초를 넣어 우려낸 것인데, 걸쭉하지 않고 담백했다. 양은 성인 남성이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을만큼 적당히 넉넉했다.
 
주인장은 상동 출신이다. 결혼하면서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는 "10년 전부터 칼국수를 배웠고, 3년 전에 가게를 낼 때까지는 잘 한다는 집은 다 다녀봤다"며 "억지로 낸 맛에 실망하다 느낀 점이 칼국수는 칼국수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옛날손칼국수'는 '대박 맛집'은 아니지만 꾸준히 매출을 올리는 식당이다. 김 대표가 6세 터울의 막내 동생 김혜숙 씨와 무리하지 않으며 일하고 있고, 먹고 살 정도는 되니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배 회장은 '옛날손칼국수'에 대해 "칼국수는 사실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이곳도 요란하게 음식철학을 자랑하는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해주던 칼국수는 우리 생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전통시장과 닮았고, 이곳에 오면 그런 칼국수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옛날손칼국수는 매일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서 11시 정도부터 음식을 판다. 일요일에는 쉰다. 다만 매일 신선한 재료를 쓰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날은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변하는 파나 무를 전혀 쓰지 않을 정도로 신선도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칼국수 4천 원, 비빔칼국수 4천500 원, 콩칼국수 6천 원, 냉칼국수 5천 원, 김밥 1천5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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