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로왕릉.
목욕하고 술 마시며 액을 쫓는 계육일
아홉 명의 씨족장들이 회의를 열 때
구지봉 쪽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

"여기 사람이 있는가? 여긴 어디인가?"
구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구지봉이라 합니다"
"땅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어라"

오색구름과 쌍무지개 사이로
황금빛 상자가 매달린 새끼줄이 내려와
여섯 개 황금알이 빛나고 있었다

알 표면에 적힌 글씨 대로
열이틀 후에 상자를 다시 열어보니
여섯 명의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용모가 수려하고 기골이 장대하며
상아처럼 투명한 몸과 화광이 빛났으니
첫 째로 세상에 나온 '수로'가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국'이라 하였다


'과연 저 상자 안에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 구야국(狗耶國)의 아도간은 높다란 제단 위에 모셔놓은 금합자를 쳐다보았다. 제단 주변에는 하얀 장막이 드리워져 있고, 장막 사이에서는 향기로운 초가 소리 없이 타고 있었다. 서창을 통해 들어온 새벽 달빛이 제단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주었다. 아도간은 몸을 왼쪽으로 돌려 벽에 걸린 청동거울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부족들이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저 상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청동거울을 어루만지며 잠시 눈을 감았다.


열이틀 전, 그날은 계욕일( 浴日·액을 덜기 위해 목욕하고 술을 마시는 날·3월 3일)이었다. 매년 이날이 되면 구야국 사람들은 몸을 씻고 구지봉 신단수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를 열곤 했다. 이런 전례에 따라 아도간을 비롯한 구간(九干·9명의 씨족장)들도 아침 일찍 계곡에서 몸을 씻은 후, 인근에서 부족장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마치면 백성들과 함께 구지봉에 올라가 천신께 제의를 올릴 예정이었다. 푸른 옥가루를 풀어 놓은 듯 계곡에서는 초록빛 물이 콸콸 흘러 내렸다. 계곡 주변에는 물안개가 자우룩했고 구간들은 흰 옷에 연갈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먼저 천기를 살피는 유천간이 달과 별의 움직임을 거론하며 날씨를 예측했다. 뒤이어 치수를 담당하는 유수간이 계곡물을 끌어 당기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신귀간이 천신 제의를 행하는 절차에 대해 말하였다. 구간들의 말이 모두 끝나자 좌장격인 아도간이 부족 간 혼인 문제를 꺼내었다.
 

▲ 구지가의 탄생지이자 수로왕의 탄강지인 구지봉에는 한석봉의 글씨로 추정되는 '구지석봉(龜旨奉石)'이라는 글자가 청동기시대 고인돌에 음각돼 있다.
그때 갑자기 계곡의 북쪽 언덕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북쪽 언덕은 구지봉이 있는 곳이었다. 우렁우렁하게 들리는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을 부르는 듯 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하다가 이내 웅장한 폭포수처럼 커다랗게 변해갔다. 구간들은 모두 벌떡 일어섰다. 구지봉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 너무 이상했던 것이다.
 
아도간은 흰 옷을 펄럭이며 급히 구지봉 쪽으로 뛰어갔다. 구간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구지봉 입구에 닿았을 때, 백성들도 소리에 이끌려 구름떼처럼 모여 있었다. 마침내 구간들과 백성들이 구지봉에 올라서니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은 신비로운 소리에 숨을 죽이며 하늘을 쳐다봤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는 조각구름만이 유유히 흐를 뿐,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가?"

다시 소리가 들려오자 구간들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있습니다."
"그럼 여기가 어디인가?"
"구지봉이라 합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이곳에 새로운 나라를 열라고 하셨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땅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어라."

구간과 백성들은 어리둥절했다. 난데 없이 땅을 파고 노래를 부르라니? 그러면 왕이 될 분이 하늘에서 내려온단 말인가?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작은 노래 소리가 서서히 들려왔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만일 내 놓지 않으면 불에 구워먹으리라."

노래는 흥겹게 빠른 박자였고 사람들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계속해서 노래가 울려퍼지자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였고, 노래를 부르며 땅을 파고 있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웅긋붕긋 피어난 오색구름과 쌍무지개 사이로 붉은 새끼줄이 천천히 내려왔다. 새끼줄 끝에는 황금빛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상자가 땅 위에 닿자 백성들은 노래를 멈추고 상자 주변에 몰려들었다. 구간들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았다. 순간, 상자에서 황금빛이 솟구쳤다. 그 빛은 오색구름을 뚫고 하늘로 높이 뻗어 갔다. 백성들은 넋을 잃은 채 그 빛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구간들이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빛나고 있지 않은가! 신기하게도 가장 큰 황금알 표면에는 열이틀이 지난 후에 다시 상자를 열어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모두 괴이하게 여겼으나 아도간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계시인 것 같소. 내 이 상자를 우리 집에 가져가서 열이틀 후에 다시 열어보리다."
 
▲ 구지봉에서 수로왕릉으로 옮겨진 육가야의 상징 '육란상'
백성들은 그 말을 옳게 여겨 황금 상자를 아도간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아도간은 황금상자를 집 안의 제당 안에 모셔놓고 오늘까지 기다려 온 것이다.
 
"아도간 어른. 구간들께서 도착하였사옵니다." 하인의 목소리에 눈을 뜬 아도간은 옷매무새를 바로 고쳤다. 곧 이어 진중한 옷차림을 한 구간들이 제당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구간들이 자리를 잡자 하인들이 황금상자를 그들 앞에 모셔왔다. 아도간은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신비로운 일이었다. 아도간이 상자를 열어보니 여섯 명의 아이들이 상자 안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구간들 역시 그 아이들을 보고는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황금알이 아이들로 변하다니! 여섯 아이들 중 유독 용모가 수려하고 기골이 창대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상자 밖으로 나오더니 구간들을 향해 낭랑한 음성을 발했다.
 
"마침내 하늘의 명을 받아 이 땅에 내려왔구나. 내 이제부터 이 나라의 왕이 되어 백성들을 돌보리라."

아이의 몸은 상아처럼 투명했고 머리 위에서는 둥그런 화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감히 범접치 못할 위엄 앞에 구간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리며 공경을 표했다. 첫 번째로 세상에 나왔다고 하여 그 아이를 수로(首露)라 불렀다.
 
그달 보름, 수로는 구간들의 주청에 의해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였다. 나라 이름을 대가락국(大駕洛國)이라 하였으니, 구야국은 부족국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라의 기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때가 서기 42년이 되던 해였다.
 
그 후, 수로왕께서 즉위한 지 2년째가 되던 계묘년 봄 정월이었다. 왕께서 임시로 만든 궁궐의 남쪽으로 행차하여 산세를 둘러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답평 주변은 마치 여뀌잎처럼 좁지만 지극히 아름다워 열여섯 아라한(阿羅漢·석가모니의 제자)이 머물 만하구나. 하나에서 셋을 만들고 셋에서 다시 칠성(七星)이 머물만 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리오. 내 이곳에 새로 도읍을 정하리라."

구간들은 왕의 명을 따라 신답평 주변에 둘레 천오백 보의 외성과 궁궐 및 여러 관청을 지었다. 이때가 갑진년(44년) 2월이었고 수로왕이 거처할 새 궁궐이 비로소 처음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때 완하국(琓夏國) 함달왕의 부인이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또한 사람이 나오매, 그 이름을 탈해라 하였다. 탈해는 바다를 건너 가락국에 와서는 수로왕에게 왕위를 내 놓으라고 겁박하였다.
 
"하늘이 이 땅의 백성을 위해 나를 이리로 보냈는데 어찌 너에게 왕위와 나라를 넘기리오. 내 너를 징치하여 후세의 본을 삼으리라."
 
이에 왕께서 칼로써 치려 하매, 탈해가 술법으로 겨루자고 하니 왕께서도 좋다고 하셨다. 탈해가 매로 변하여 왕을 위협하자 왕께서는 독수리가 되어 물리쳤고, 탈해가 참새로 변하여 도망가자 수로왕께서는 매로 변하여 그를 쫓아버렸다. 힘에 부친 탈해가 곧 술법을 풀고 왕께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탈해는 자신을 죽이지 않은 수로왕의 은덕을 칭송하는 말을 남기며 조용히 물러가고 말았다.
 
왕이 즉위한 지도 어언 육년의 세월이 흘렀다. 구간들은 날마다 왕에게 배필을 맞으라고 주청을 드렸다. 그러나 왕께서는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 있으니 과히 걱정말라며 구간들을 안심시켰다. 구간들은 신령한 왕께서 또 어떤 신묘한 일을 내실지 자못 궁금하게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 무신년(48년) 7월 27일이 되자 왕께서 갑자기 신귀간에게 승점에 가서 낯선 배를 기다리라고 명하셨다. 신귀간은 날랜 병사들과 더불어 승점으로 갔고, 왕께서 말한 붉은 돗을 단 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반나절을 기다리던 신귀간은 마침내 붉은 돛을 단 배가 가락국으로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왕께 아뢰었다.
 
수로왕은 친히 승점으로 나아가 작은 행궁을 차리고는 아유타국에서 온 황옥공주를 맞이했다. 천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마침내 수로왕의 인연이 머나먼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수로왕과 공주는 행궁에서 사흘 밤낮을 보낸 후, 온갖 진귀한 보물을 가득 싣고 새 도읍지로 돌아오니 드디어 대가락국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 수로왕릉 입구인 '가락루' 전경.
왕과 왕후는 열 명의 아들과 두 명의 공주를 두었는데, 이중 첫째가 거등왕이 되었다. 둘째와 셋째 왕자는 왕비의 성을 따라 허 씨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따라 불가의 몸이 되었다. 또 공주 한 명은 신라로 시집을 갔고, 또 한 명인 묘견공주는 바다 건너 왜국으로 건너갔다. 공주는 왜국에서 작은 나라 하나를 세웠는데 그게 바로 왜국 최초의 나라인 야마다이국인 것이다. 그녀는 야마다이국의 여왕인 히미코가 되었으니, 이는 수로왕께서 철기를 비롯한 수많은 물자와 군사를 보내준 결과였다.
 
왕후께서 기사년(189년) 3월에 세상을 뜨니, 온 백성과 왕이 지극히 슬퍼하였다. 이에 왕은 매일 외로운 베개에 의존하여 힘겹게 사시다가 기묘년(199년) 3월에 돌아가시니 그때 나이 158세였다. 나라 사람들은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비통해 했다. 마침내 백성들은 대궐 동북쪽 평지에 빈궁을 세웠는데 높이는 한 발이고 둘레는 삼백보였다. 이 빈궁에 왕의 유체를 모시고 장사를 지냈으니 후세 사람들은 이를 수로왕릉이라고 했고 납릉(納陵)이라고도 불렀다. 납릉 정문에는 아유타국의 상징인 쌍어문양과 파사석탑 문양, 코끼리상도 그려져 있으니 황옥공주의 흔적이 연면히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수로왕 대부터 이후 9대 구형왕까지 490년간 김해와 인근지역을 다스린 위대한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김수로왕께서 창업한 금관가야였던 것이다.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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