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자태 로 김해 생활 중심권 포용
대동 삼분수까지 이어지며 경관과 힘의 원천
수로왕과 허왕후 신화와 가락국 전설 품고
신령스러운 물고기 '쌍어'에서 이름 따 '신어산'
옛 포구에서 바라보던 해지는 산 그윽한 풍광
평화로운 산자락 시골마을 사람 사는 모습
조개와 굴 껍데기 깔린 포구 풍경 한시로 전해
신어산(神魚山)의 신어(神魚)는 한자 뜻 그대로 신령스러운 물고기다. 사전에는 길조(吉兆)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물고기라 뜻풀이를 하고, 한서(漢書) <선제기(宣帝紀)>의 '하늘의 기운이 맑고 고요하니 신령스런 물고기가 물에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을 예로 들고 있다. 이는 마치 봉황(鳳凰)이나 기린(麒麟)이 나타나면 훌륭한 임금이나 성인이 나타나 세상이 태평하게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다.
신어산은 가락국(駕洛國)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과 허황옥(許黃玉)의 신화 및 가락국의 전설을 품고 있는 성스러운 산이다. 여기에서의 신어는 쌍어문(雙魚紋·수로왕릉 봉분 입구의 납릉 정문에 그려진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을 두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신어산뿐만 아니라 수많은 물고기가 부처의 교화에 의해 바위가 되어 머물렀다거나,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해 자신이 마지막을 맞을 장소를 찾다가 뒤를 따른 수많은 물고기들과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들이 전해져오는 주변 삼랑진(三浪津)의 만어산(萬魚山)이 있으니, 이곳의 만어사(萬魚寺)는 김수로왕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부산광역시의 진산(鎭山)인 금정산(金井山)에는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빛은 황금색이라고 한다. 이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산 이름은 금정(金井)으로, 그곳에 있는 대표적 절은 하늘나라 고기라는 뜻의 범어사(梵魚寺)라 지었다 한다. 이상의 전설들은 모두 불교와 관련이 있고, 심지어는 김수로왕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 쌍어문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출발하였다고 하고 중국의 쓰촨성(四川省),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굳이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문양이 아니라든지 하는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물고기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동양사회의 민간신앙적 기원이 보편적인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신어산이 신령스러운 물고기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것이 이상할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며, 가락국과의 관계를 두고 설명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어산은 신(神)이 선(仙)으로 된 곳도 있으며, 부에서 동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산은 신어산 또는 선어산이라 불렸으며, 김해부 동헌(東軒)이 있던 구지봉(龜旨峰) 아래쪽으로부터 분성산(盆城山)을 넘어서 시작되어 김해의 생활 중심권을 감싸 안고 흐르던 산이라는 말이다. 신어산은 이러한 신화적 상징성을 안고 김해의 핵심 지역에서 대동(大東)의 삼분수(三分水)까지 이어지면서 김해의 경관과 힘의 원천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이 산에 대한 상세 노정과 풍취(風趣)에 대해서는 독자들께서 조금 부지런을 떨어 2013년 1월 9일자 <김해뉴스>에 실린 최원준 시인의 글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또한 신어산은 불교의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는 산인지라 오랜 사찰들이 많이 있어 이를 살펴보아야겠으나, 이곳의 사찰들에 대해서는 이후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신어산과 한시에 집중하기로 한다.
천년 가락국 | 千年駕洛國(천년가락국) | |
<정희량, 등신어산망해(登神魚山望海)> |
정희량(鄭希良·1469~?)은 신어산에 올라가 김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 아래 천 년 세월 가락국의 땅. 삼분수가 흰 물줄기를 셋으로 나누어 동쪽 바다로 흐르고, 칠점산(七點山)이 머리에 푸른 숲을 이고 그 물에 떠있다. 바다는 끝이 없어 수평선이 하늘에 이어졌고, 강둑을 따라 흐르는 강물은 초록빛 부들이 떠있는 것 같다. 시인은 이 신령스러운 가락국 신선의 산에서 세월과 공간을 초월한 호연지기를 펼쳐본다.
신어산 빛 허공에 가득 푸르고 | 神魚山色滿空靑(신어산색만공청) | |
<정범조, 잡요(雜謠)> |
정범조(丁範祖:1723~1801)는 물가 마을에서 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푸른 신어산과 멀리 보이는 물결, 이곳은 분명히 신선의 세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곳은 고깃배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뱃머리 하나하나에 작은 다리 걸치고 | 船頭一一小橋橫(선두일일소교횡) | |
<이학규, 전포행(前浦行)> |
이학규(李學逵·1770~1835)는 김해 앞 포구에서 이 시를 포함하여 열 네 수의 시를 읊고 있다. 특히 이 시에는 '신어산은 김해부 동쪽 10리에 있다'고 설명을 붙이고 있어, 이 시가 낙동강가 포구에서 신어산 쪽을 바라보면서 읊은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구절에서 보면, 이 시는 배에서 내린 뒤 조개와 굴껍데기가 깔린 포구 길을 걸어 신어산 쪽으로 다가가면서의 풍경을 읊은 것이다. 마지막 구절의 스무나무 또는 시무나무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나무로, 크게 자란 나무는 마을의 정자나무나 먼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정표목으로 많이 심었다. 시인은 포구에서 산 아래의 마을로 가다 비갠 뒤 햇빛에 반짝이는 스무나무 잎을 보고 해가 지는 풍광인 듯 그윽한 빛으로 다가오는 신어산을 느끼고 있다.
야윈 말 연이어 울며 짧은 담을 나서니 | 羸馬連嘶出短垣(리마연시출단원) | |
<이학규, 과조선장신어산재 만귀도중구호(過曹善長神魚山齋 晩歸途中口號)> |
주인의 전송을 받고 돌아오는 시인의 눈에 비친 신어산 주변의 시골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다. 보리를 베고 모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듬성듬성한 논 주변으로 해오라기가 날아올랐다 내리고, 마을 앞 큰 나무 밑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조금 전만 해도 고의를 입고 시끌벅적 보리타작을 하던 사내들이리라. 타작이 끝난 보리마당은 고요하고, 시냇물 소리가 시원하다. 기후조차 열흘에 한 번 바람이 불고, 닷새에 한 번 비가 오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맴맴 매미소리에 해 떴다 지고 노송 한그루가 하늘 높이 꽂혔고 | 蟬吟喞喞日暘頹(선음즐즐일양퇴) 老檜一株高揷天(노회일주고삽천) | |
<이학규, 조선장신어산각(曹善長神魚山閣)> |
엄경흠 부산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