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생각날 때가 있어. 이집 음식맛을 잊을 수가 없더라구." 강성숙 교수가 양푼이비빔밥과 손칼국수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학생들 못지 않게 그에게도 오래토록 정든 맛이다.
학생들 따라 몇번 왔었는데 잊을 수가 없었죠
개운한 첫맛과 칼칼한 끝맛의 손칼국수
쓱쓱 비벼 먹는 양푼이비빔밥의 궁합을
넉넉한 인심은 덤이니 얼마나 행복해요


인제대학교에 다니던 대학생 시절. 전공서적 서너 권이 들어있는 묵직한 가방을 둘러메고 학교로 갈 때면 강의실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지…. 또 캠퍼스 경사는 왜 그렇게 가파르던지…. 3시간씩 이어지는 강의를 듣고 나오면 무척 배가 고팠다. 지갑도 가방처럼 묵직했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그럴 때면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가던 식당이 있었다. 바로 인제대 먹자골목에 위치한 '몽실이손칼국수'였다. 인제대 기초대학 강성숙 교수에게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강 교수는 대학시절 교양과목을 배웠던 은사다. 제자의 제안에 강 교수는 단번에 "몽실이 어때?"라고 되물었다.
 
반가웠다. 대학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 "몽실이 어때"라고 자주 물었을 만큼 좋아했던 식당이었다. 정겨움과 푸근함, 그리고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던 덕분이다. 대학시절엔 다시 캠퍼스로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잊은 채 식당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곤 했다.
 
"아들아, 와 이래 오랜 만에 왔노! 살이 찐 것 보니까 밥은 묵고 다니는 갑네." 푸근한 인상을 가진 주인 이정숙(56) 씨가 오랜 만에 찾아온 옛손님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어머니를 만난 듯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다.
 
식당을 찾는 학생들로 먹자골목이 붐빌 시간인 오후 1시. 식당 안 6개의 식탁은 허기진 대학생들로 꽉 찼다. 학생들 틈에 끼어 자리를 잡았다. 좁고 시끌시끌하지만 마치 고향집에 온 듯 정겹다. "아들아, 뭐 주꼬." "양푼이비빔밥 주세요."
 
강 교수는 "워낙 잘 아는 곳이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고 농담을 했다. 몽실이손칼국수는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종종 찾는 가게다. 강 교수가 이 식당을 알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주로 교내 교직원 식당에서 다른 교수들과 밥을 먹는데, 밖에서 먹자는 의견이 모아지면 인제대 후문 쪽으로 가곤 하지. 생림으로 가는 도로변에 식당이 여럿 있거든. 그런데 가끔 몽실이가 생각날 때가 있어. 학생들을 따라 몇 번 왔는데, 음식 맛을 잊을 수가 없더라구. 게다가 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이 좋아. 교수들도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같이 밥을 먹고 싶을 땐 종종 찾는 그런 곳이지."
 
양푼이비빔밥 두 그릇을 시켰는데, 식탁 위에는 칼국수 두 그릇도 함께 나온다. 몽실이손칼국수에서는 비빔밥을 시키면 국물 대신 칼국수 한 그릇을 덤으로 준다. 칼국수 양은 만만치 않다. 덤으로 딸려 나온 칼국수가 다른 칼국수집의 한 그릇 수준이다. 별도로 주문하는 칼국수는 거의 곱배기다. "와 이리 많이 줍니까"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돌아오는 주인 아주머니의 대답이 재밌다. "이만큼 줘도 더 달라는 학생들도 있다. 니가 학생 때는 더 많이 줬는데, 직장생활 하더니 양이 줄었는갑네." 이 말에 강 교수는 웃음보를 터뜨렸다.
 
양푼이비빔밥 재료는 단순하다. 잘게 썬 상추와 콩나물, 채를 썬 당근, 김 가루, '계란후라이'가 전부다. 그 위에 참기름과 통깨가 뿌려져 있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부원동 새벽시장에서 공수한 신선한 채소와 갓 지은 쌀밥, 국산 참기름을 쓴다.
 

▲ 잘게 썬 청양고추를 고명으로 얹어 먹으면 칼칼함이 일품인 몽실이손칼국수의 칼국수.
양푼이에 고추장 양념까지 들어 있으니 이제 쓱쓱 비벼 먹기만 하면 된다. 숟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진한 참기름 향이 입안에 맴돈다. 평범하지만 익숙한 맛이 느껴진다. 출출할 때 집에서 남은 밥과 반찬을 넣고 비벼 먹던 바로 그 맛이다. 이런 맛은 몇 번이고 먹어도 물리지 않아서 더욱 좋다.
 
칼국수 국물을 들이켰다. 파와 쑥갓, 부추 등이 고명으로 들어가 있는 칼국수에 잘게 썬 청양고추를 약간 넣으면 첫맛은 개운하고 끝맛은 알싸하다. 이 식당의 칼국수는 멸치 대신 디포리(밴댕이)를 우려서 국물을 낸다. 디포리 육수는 멸치 특유의 비린내나 텁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 맑고 개운한 것이 특징이다. 면 몇 가닥을 입으로 가져갔다. 탱글탱글하고 매끈한 면발이 입안에서 탄력 있게 씹힌다. 면발이 '쫄깃하다'고 말하려면 이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집 칼국수 면발의 비결은 주인 아주머니의 남편 이귀동(62) 씨에게 있다. 이 씨는 가게 안에서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고 숙성시킨 뒤 삶기 전에 반죽을 썰어 낸다. "아내는 육수를 뽑고 남편은 면을 뽑아. 30년을 넘게 살아 온 부부가 이 일로 10년을 넘게 호흡을 맞췄으니 그 맛이 좋을 수밖에." 강 교수가 이 가게의 칼국수 맛을 칭찬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에서 나오려니, 주인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아들아, 속이 허전하거든 다시 오너라.", "네! 어무이 보고 싶으면 또 올게요!"


몽실이손칼국수/인제대학교 맞은 편 오래뜰먹자골목 안. 산채비빔밥(4천500원), 손칼국수·손짜장·수제비(4천 원), 땡초김밥(2천 원), 국산콩국수(5천500원). 055-337-8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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