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대(五廣大). 탈을 쓴 다섯 광대가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탈놀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직업 형 유랑광대패들이 순회공연으로 놀이마당을 펼쳤다 떠나고 나면, 백성들이 이를 모방해 각자 역할을 맡아 놀이마당을 다시 펼치기도 했다. 오광대 탈놀이는 주로 영남지역에서 성행했다.
1890년께, 당시 김해군에도 오광대 탈놀이가 전해졌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르면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 낙동강 변 타작마당에서 놀이마당이 펼쳐졌다. 일제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으나, 김해문화원에 의해 복원 재연된 이 놀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탈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탈이다. 조지현(60) 씨가 운영하는 김해가락오광대탈전수관을 찾아가 보았다.

민속학자 송석하(1904∼1948)는 1933년에 창간한 학술지 <조선민속>에서 영남지방의 오광대 탈놀이가 경남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광대패에 의해 전파됐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민속>은 송석하를 중심으로 한 조선민속학회가 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학 전문학술지이다.
 
조선 중엽 율지리에 홍수가 났는데, 상자 하나가 물에 떠내려 왔다. 이를 건져 열어보니 다섯 개의 탈과 광대의 옷이 나왔다. 고을 사람들이 이를 가지고 탈춤을 만들어 즐겼다는 것이 오광대 탈놀이의 기원이다.
 
의령·신반·진주·가산·산청·창원·통영·고성·진동·김해·가락·수영·동래·부산진 등 경남 내륙과 해안선 일대의 각지로 이 탈놀이가 퍼져나갔다. 경상우도에서는 오광대, 경상좌도에서는 야류(野遊)라고 한다. 각 지역에서 제 고장의 탈놀이를 시작하게 된 시기와 영향 받은 경로는 제각기 다르다.
 
▲ 김해가락오광대탈을 응용한 브로치를 만들고 있는 조지현 씨. 벽에 김해가락오광대탈이 걸려 있다. 김병찬 기자 kbc@
가락에서 놀았던 가락오광대
일제 탄압으로 1937년 명맥 끊긴 후 
김해문화원 원장 지낸 류필현 씨 재연

동래야류 보유자 천재동 만난 조 씨
탈 기본 익힌 뒤 김해로 와 제의받아
김해가락오광대탈 의장 등록까지 이뤄
"김해의 문화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조지현이 운영하는 김해가락오광대탈전수관은 최근 생림면 생철리 125-1에서 문을 열었다. 생철교회 뒤편, 무척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 1층은 전수관으로, 2층은 전시장과 작업실로 나뉘어졌다. 2층 작업실에서 만난 조지현은 김해가락오광대의 유래부터 들려주었다.
 
"가락에서 주로 놀았다고 해서 가락오광대라 불렀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1937년 이후부터는 중단되다시피 했어요. 그러던 것을 김해문화원 류필현 원장이 탈놀이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해 다시 재연했지요."
 
고 류필현 원장은 말뚝이역의 조광화(1919~1988), 영노역의 김상기(1907~1988), 노장역의 하문찬(1911~1994), 양반역의 곽성준(1917~1990) 등의 증언에 의거해 탈·의상·도구·동작 등을 정리했다. 1984년 김해문화원에 의해 재연된 가락오광대는 1990년과 1995년에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1996년에는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1997년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경남대표로 출전해 장려상을 받았다.
 
"김해에서 재연한 가락오광대가 관심을 받으면서 명칭에 관한 논란이 시작됐어요. 부산으로 편입된 가락에서는 '가락오광대', 김해에서는 '김해오광대', '김해가락오광대'라 부르는 등 지역 명을 놓고 여러 주장이 있어요.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의 오광대 탈놀이를 다시 재연한 것도 김해이고, 전국으로 알린 것도 김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민속학자와 문화재위원의 고증을 받아 탈을 만들고 있는데, '김해가락오광대탈'로 의장등록을 했습니다."
 
조지현의 삶은 처음부터 운명으로 정해진 것처럼 오광대 탈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는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서 태어났다. 농기구를 직접 만들어 쓰던 할아버지의 손재주와, 군악대 출신으로 관악기며 사물을 능숙하게 다루었던 아버지의 감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김해에서 터를 잡기 전 부산에서 잠깐 살았는데, 그때 천재동(1915~2007)선생을 만났다. 천재동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보유자로, 부산을 대표하는 민속 문화 '동래야류'의 탈을 만드는 데 평생을 헌신했다. 조지현은 천재동 선생에게서 탈을 만드는 기본을 익혔고, 1985년 천재동 선생과 함께 부산일보사 1층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 2013년 김해시공예품대전에서 특선, 경남도공예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김해가락오광대탈 파티션'.
1980년대 후반에 김해로 이사를 와서는 류필현 원장에게 사군자를 배웠다. 김해가락오광대를 재연하느라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던 류 원장은  조지현에게 "오광대 탈을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조지현은 쉽게 응하지 못했다. "처음 오광대 탈놀이를 보았을 때 친근감이 들었고, 놀이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영감 할미 과장이 좋았죠. 하지만 제가 그 탈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계속 탈 제작 요청이 들어왔다. 2000년, 가락문화제 기간 중 체험부스를 열었는데 김해민속예술보존회 김재걸 회장이 찾아왔다. "오광대의 탈을 만들어달라고 하시더군요. 결국 오광대 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동안 배우고, 만들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접고 오로지 탈에만 몰입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민속학자 송석하가 수집한 가락오광대의 탈은 모두 12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2점, 국립민속박물관에 10점이 소장돼 있다. 조지현은 이 탈을 수차례 실측하고, 옛 자료들을 조사하고, 문화재위원들의 고증을 받아 탈을 만들었다. 한창 탈 제작에 빠져있던 당시 갑상선암 수술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그는 "일단 탈부터 다 만들고 난 뒤 수술을 하자"며 탈에만 매달려 가족들을 애태웠다.
 
1년 넘게 만들고, 고증 받고, 다시 만들고, 또 고증을 받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그가 만든 탈은 문화재위원들의 인정을 받았고, 2004년에 의장 등록됐다. 김해가락오광대탈놀이에 사용되는 탈 19개가 모두 의장 등록됐다. 실제 놀이에 쓰이는 탈은 20개인데, 같은 모양이 2개라 19개를 등록했다.
 
오광대 탈 중에서 사자와 담비탈은 대소쿠리 탈이고, 나머지는 박탈이다. "탈을 만들기에 맞춤한 바가지를 찾기가 힘들어요. 전국의 전통시장을 돌면서 바가지를 사들이기도 하고, 박을 직접 기르기도 합니다. 박을 수확한 뒤 반으로 켜고, 삶고, 긁어내고,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고 햇볕에 말려야 탈을 만들 수 있어요." 탈을 만들기 위해 박을 심고 키우기까지 할 만큼 조지현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탈' 생각뿐이다.
 
▲ 김해가락오광대탈 브로치. 동전 만한 크기로 만들어진 작은 탈 모양의 브로치는 액세서리로 손색이 없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밤에 눈을 감기 직전까지 탈을 생각하고, 탈에 관한 일을 끊임없이 한다. 오광대 탈을 동전만한 크기로 만들어 열쇠고리를 만들었는데, 쇠고리 부분을 감싸 장식한 전통매듭 역시 그가 직접 만들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즐기던 탈놀이의 탈을 만드는 게 제 일이 됐고, 그 탈을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여러 형태로 만드는 것도 제 일입니다." 그는 전시회 때 자신이 만든 탈을 본 김해 시민들이 "안동 하회탈이네"라고 말할 때가 있다며 "오광대 탈놀이 명칭에 대한 논란도 김해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사라지지 않을까요? 김해가락오광대는 김해의 문화자산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수술 날짜를 미루고 또 병원에 누워 있을 때에도 오로지 탈만 생각했다는 그의 예술적 집념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어렸을 적 할머니의 말씀을  들려주며 웃었다. "내가 뭔가를 시작하면 할머니가 '야가 또 머끄대이로 땅바닥에 홈을 팔라카네'라고 하셨죠." 머리카락으로 땅에 홈을 판다는 말인데, 상상을 해보라. 머리카락이 무슨 힘이 있다고, 땅바닥에 줄이나 제대로 긋겠는가. 그러나, 할머니가 손녀를 보기는 제대로 보셨다. 조지현은 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옛 모양이 사라질 뻔 했던 오광대 탈은 그의 손에서 다시 살아나 움직이고 있다. '김해가락오광대탈'이라는 이름으로. 

>>조지현
2004년 김해가락오광대 탈 제작자로 문화재위원 고증 거침. 김해공예협회 초대회장 역임. 금벌 미술작가회 회장 역임. 디자인등록 제0384471호(외18건). 2011년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 찻잔공모전, KDB전통공예산업대전, 관광기념품공모전 등 수상 다수. 2011년 행정안전부 향토핵심자원 시범사업선정. 2012년 특허등록 제10-12749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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