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차는 김해가 자랑하는 대표적 특산물이다. 맛과 향이 전국 유명차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게 보편적인 평가다. 1999년부터 상업재배가 시작돼 역사가 길진 않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여러가지 상을 받으며 전국 정상급 차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장군차가 김해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장군차의 역사와 문제점 및 발전 방향, 하동·보성·제주 등 다른 유명차에게서 배울 점 등을 시리즈로 싣는다.

(1)역사와 현황 및 발전 방향

일부 장군차 전문가들은 한국 차 문화가 김해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근거로 이능화(1869~1943)가 쓴 <조선불교통사>를 든다. 이 책을 보면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차 씨앗을 가져왔다고 기록돼 있다. 이능화는 '김해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 세상에서는 수로왕비 허 씨가 인도에서 가져 온 차 씨앗이라고 전한다'고 적었다. 물론, <조선불교통사>의 기록은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적은 것이므로 반드시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허황옥이라는 여인이 멀리 인도에서 차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는 장군차의 내력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스토리텔링의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허황옥 전파 기록 스토리텔링화 재료
독자적 형태 발전과정도 차별화 장점
6년 연속 명차 선정으로 품질 입증
재배면적·산업화 투자 확대방안 절실


장군차에 관한 다른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발견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김수로왕의 15대손인 신라 30대 문무왕이 661년 가락왕묘에 제향을 올리도록 조칙을 내렸는데, 제물로 차가 올라갔다'고 돼 있다. 이는 '차례(茶禮)'가 말해주듯 옛날에 제의적 행사를 할 때 술이 아닌 차를 제물로 썼음을 의미한다.
 
하동군은 <삼국사기>를 근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차를 재배한 곳이 하동이라고 주장한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에 다녀온 사신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나와서다. 이에 대해 장군차 전문가들은 "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 있지만, 그 이전부터 차가 재배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김해에 가야시대부터 차가 있었을 정도로 장군차 문화가 융성했지만 문헌에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조선시대 불교문화의 쇠퇴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과거 장군차에 관한 기록은 '금강사'라는 사찰과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금강사를 중심으로 김해의 차 문화가 발달하고 금강사 주변에 차를 심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김해향교 근처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금강사는 지금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 주촌면 내삼리에 있는 장군차 밭. 김해에서 실질적으로 상업재배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 중 하나다.
금강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고려 충렬왕이 몽골을 도와 일본 원정을 가려고 김해에 왔다가 금강사에서 차를 마셨다고 한다. 왕은 차 맛이 으뜸이라는 뜻에서 장군차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신인 서거정(1420~1488)의 시 '김해 금강사'에는 조선시대에 쇠락한 금강사와 장군차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시조릉은 깊고 산은 적적하기만 한데(始祖陵深山寂寂)/장군수는 늙어만 가고 풀만 무성하여 처량하구나(將軍樹老草妻妻)'
 
장군차가 최초냐, 하동차가 최초냐 하는 것은 장군차의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김해의 차 문화가 다른 지역과 달리 독자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했다는 점이다. 조선 말기 때 학자였던 허훈(1836~1907)은 1899년 김해를 방문한 뒤 '금강영차'라는 시를 지어 장군차를 묘사했다. '금강곡 안에 푸른 찻잎들이 펼쳐졌는데(金剛谷裏綠旗槍)/아름다운 맛은 고저차의 향기와 같네(美味眞同顧渚香)/(중략)/비로소 기품이 동방에서 제일인 것을 알겠네(始知奇品冠東方)/(후략).'
 
김해는 예전부터 찻사발로 유명한 도요지다. 김해와 그 주변 가야의 영역이었던 땅에 차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도 차 문화가 융성했음을 말해준다. 진례의 '다곡(茶谷)'이나 상동 '다시곡(茶時谷)', 창원의 다호리(茶戶里) 등이 그런 곳들이다. 특히 동상동과 대성동에 자리한 분성산 기슭은 조선시대 지도에 다전동으로 나와 있는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곳이 차밭골로 불렸음을 뜻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1985년부터 가야차 조사에 들어간 가야문화연구회는 1929년 간행된 <김해읍지>에 '금강곡에 황차가 나는데 일명 장군차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근거로 금강사 옛 터를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대성동에서 1천200그루, 동상동에서 375그루의 차나무를 발견하고 이 일대가 장군차의 재배지였음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1999년부터는 농가에 차 묘목이 보급돼 상업재배의 첫 발을 내디뎠다.
 
2009년 진주산업대 추갑철 교수팀은 연구를 통해 김해에 자생하는 장군차의 품종이 다른 지역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군차는 잎이 넓고 두꺼워 아열대 기후가 원산지인 차의 모양을 가진다. 반면, 중국에서 전해진 전남 보성 등 다른 지역의 차는 차 잎이 좁고 얇은 '소엽종'이라는 것이다.
 
김해시는 장군차를 명품 특산물로 만들고자 그동안 품질 향상과 스토리텔링 작업을 벌였다. 이에 따라 2007년 한국차인연합회와 함께 허황옥을 '대한민국 제1호 차인'으로 규정하고 선포식을 열었다. 2008년에는 보성 다향제에서 품질평가 1위, 제7회 국제명차품평대회에서 최고상을 각각 차지하는 쾌거를 올렸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는 6년 연속 '차의 날 기념 올해의 명차'로 선정되며 품질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장군차는 재배면적이 좁은 탓에 생산량이 턱없이 적다. 장군차 재배면적은 65㏊로서, 하동의 1천48㏊, 보성의 1천149㏊에 비해 5~6%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장군차의 생산량은 하동과 보성의 1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재배면적과 생산량을 늘리고, 산업화를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게 과제다.
 
김해시농업기술센터 조규범 주무관은 "김해의 장군차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온갖 노력 덕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며 "하동, 보성 같은 곳보다 물량도 적고 지명도가 낮지만, 고급화와 스토리텔링 작업을 잘 하면 최고의 명품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 취재 및 보도는 경남도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