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재배 처음 시작한 김종국 씨

김종국(64·동상동·사진) 씨는 김해 토박이다. 그는 "조상 대대로 600년은 살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 씨는 1999년 장군차를 처음 상업재배하기 시작해 현재는 연간 4㎏을 생산하는 장군차의 산 증인이다.
 
장군차를 처음 재배했을 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법도 하지만, 김 씨는 뜻밖에 나무 한 그루 고사시키지 않았을 정도로 성공적인 영농을 해왔다. 오랫동안 불교를 연구해온 덕에 수십 년 전부터 차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옛 김해성 인근 '차밭골' 기록도 전해
타닌 등 맛 결정 성분 하동차보다 높아


주촌면 내삼농공단지 주변에 있는 김 씨의 차밭을 둘러보니 다년간 장군차 보급에 힘쓴 그의 노력이 엿보였다. 그는 "장군차는 품질 면에서 다른 차보다 월등하다"고 말했다. "인제대 연구진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질소와 회분 같은, 맛을 결정하는 성분의 구성 비율이 하동 차보다 우수하고, 특히 타닌이 12.9%로 하동 차의 7.6%보다 훨씬 높아요."
 
장군차로 만든 황차는 조금 진하게 마시거나 여러 잔을 마셔도 다른 차와 달리 속이 편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잘 보관하면 해를 넘길수록 차의 독특한 색과 맛이 더 좋아진다. 이런 명품차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조선시대 지도를 비롯해 각종 사료를 보여주며 "김해가 우리 민족 차 문화의 원류"라고 주장했다. 그는 "<삼국사기>에 중국에서 전해진 차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만, 김해는 허황옥이 서기 48년께 인도에서 차를 가져왔으므로 품종 자체가 다르다"고 언급했다.
 
김 씨는 1929년 간행된 <김해읍지> 원본을 펼쳐 김해에서 생산되는 토산품 중에 차가 있다는 부분을 보여줬다. 그는 "200년 전에 그린 김해 내부지도에 김해성 옆 땅은 '다전리(茶田理)'라고 표기돼 있다. 이곳에는 '어복탕(漁腹湯)'이라는 약수터가 있었는데, 만장대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좋은 물이 흘러 내려 찻물로 썼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동상동, 서상동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만든 정체성 없는 이름이다. 원래는 차밭골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가마터가 발견됐는데, 출토된 찻사발에 '김해'가 적혀 있어 김해가 차 문화의 원류임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 이 기사 취재 및 보도는 경남도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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