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별 발행 안내·홍보·표지·안내판 등
맞춤법 틀리고 문장구조 안되는 것 많아
외국어 남용에 외래어 표기법도 안지켜
허웅·이윤재 선생 고향 '한글도시' 무색


올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67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다시 법정공휴일로 지정됐고, 전국적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김해는 세계적 한글학자 허웅 선생과 이윤재 선생의 고향이어서 한글날의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지난 8월에는 김해시가 허웅 선생 추모 한글학당을 세운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다.
 
그러나 김해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글학자 허웅의 도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을 모범적으로 사용해야 할 관공서들이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해뉴스>가 김해시보건소, 장유문화센터, 연지공원 등 10여 곳을 둘러보며 각 기관에서 발행한 안내·홍보물이나 각종 표지·안내판 등을 살펴보니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맞춤법 표기가 틀린 사례는 비일비재했고, 말이 안 되는 문장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 김해시에서 관리하는 한 공원에 붙은 안내 표지판. '개, 애완동물 등은…출입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주어를 함부로 생략하는 바람에 마치 개에게 존대말을 쓰는 꼴이 돼버렸다.
김해시 공원녹지과에서 관리하는 한 어린이놀이터에 설치된 이용 안전수칙에 이런 문장이 있다. '위생관리를 위해 애완동물의 출입을 삼가하오니….'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삼가하다'는 틀린 말이다. '삼가다'가 맞다. 그리고 그 뜻은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이다. 국립국어원의 해석에 따르면 이 문장은 '개가 스스로 어린이놀이터에 가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뜻이 된다. 이 문장은 '위생관리를 위해 애완동물의 출입을 금지하오니…'로 바꿔야 한다.
 
다른 표지판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개, 애완동물 등은 반드시 목줄을 착용하여야 출입을 하실 수 있습니다.' 애완동물이 출입을 하신다니, 동물에게 존댓말을 사용한 것이다. 시설 관리자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개 등 애완동물의 주인은 애완동물에게 목줄을 채워야 출입하실 수 있습니다'였을 것이다. 주어를 이상하게 생략하는 바람에 글이 엉망이 된 것이다.
 
김해우체국 앞에는 이런 표지판이 서 있다. '이 도로는 수시로 불법 주·정차 단속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도로가 어떻게 단속을 실시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다. '이 도로에서는 수시로 불법 주·정차 단속이 실시됩니다'라거나 '이 도로는 불법 주정차 단속이 수시로 이뤄지는 곳입니다'로 바꿔야 한다.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남용하거나 외래어 표기법이 틀린 사례도 눈에 띄었다. 김해시보건소의 책자와 전단지에는 'Health♥Life(건강과 삶)''CONTENTS(목차)'처럼 외국어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었다. 김해는 도시 표어부터 'Gimhae for you(당신을 위한 김해)'라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글 보급에 앞장서야 할 관공서에서 한글 맞춤법 표기 및 문장의 오류가 발생하고, 외국어·외래어가 남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관공서 소속원들의 언어의식 수준에 원인이 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공공기관의 한글 맞춤법 표기를 점검하고 감수하는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의 김형배 학예연구사는 '정책 과대 포장'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는 새 정책이 기존의 것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외국어와 외래어를 주로 사용한다. 우리말로 쓰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을 외국어로 포장해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에 공표된 국어기본법에서는 '관공서는 공문서를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권고조항에 불과하다. 김 학예연구사는 "공공기관에서 쓰는 언어는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써야 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개념의 침해이며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루 빨리 강제 조항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전국 16군데에 국어문화원을 두고 공공기관을 상대로 공공언어 교육을 하고 있다. 경남·부산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진주 경상대학교 국어문화원과 부산 동아대학교 국어문화원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에 김해의 공공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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