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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사랑, 죽음으로 이룬 사랑 … 두 사람의 극락왕생을 비는 공주의 목탁소리(4)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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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10.22 16:20
  • 호수 144
  • 12면
  •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kkim40@hanafos.com)

   
▲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황새바위. 개라바위라 불렸으며, 크고 작은 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던 포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개라바위 올라 오줌누기 시합 하던 황세와 여의
이팔청춘이 되자 연정의 마음을 확인하고
개라바위에서 혼인할 것을 맹세하는데
유민공주와 황세장군을 혼인시키려는 왕
"정인이 있나이다" 거부하는 황세
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사람
피눈물과 피를 토하는 통곡으로 생을 마쳐

가을의 숲속은 유적했다. 바람에 따라 풍경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고 새벽 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어디선가 솔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작은 사찰 하나가 보였다. 사찰을 안고 있는 임호산으로 서서히 여명이 몰려왔다. 유민공주는 불단을 향해 길게 합장을 드렸다.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가 경내에 흘렀다. 목탁을 두드리며 낮게 금강경을 독송하는 공주. 오랜 시간 동안 부처님께 예불을 드린 공주는 이제 오른쪽 제단으로 몸을 돌렸다. 제단에는 두 사람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였다. 유민공주는 오래도록 목탁을 두들기며 두 사람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사랑도 집착도 모두 찰나의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목탁소리는 어느새 산자락을 맴돌더니 봉황대 언덕으로 날아갔다. 언덕 중앙에는 개라바위가 있었고, 그 위에는 황세와 여의의 이야기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봉황대 언덕 위로 황세와 여의가 헉헉거리며 올라섰다. 잠시 후, 숨을 고른 두 아이는 개라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들의 발 아래로 넓은 포구가 펼쳐져 있었다. 크고 작은 배들이 쉴 새 없이 포구를 들락거렸다. 푸른 바다에서 상큼한 갯바람이 불어왔고 들녘에는 황금빛 나락이 물결치고 있었다.
 
"여의야. 우리 오줌 누기 시합하자."
"에, 무…무슨 말이야?"
"누가 오줌발이 센가 시합하자고."

황세는 네가 과연 어찌할 것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여의는 잠시 망설이더니 선뜻 대답했다.

"좋다. 까짓 거. 내가 확실히 세다는 것을 보여주지."
"야, 그럼 바지 벗어!"
"아무리 우리가 아이라도 바위 위에서 누는 것은 창피해. 내려가서 시합하자."

황세는 미심쩍었으나 딴은 그 말이 옳다 하여 바위 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여의는 재빨리 바위 밑으로 내려가면서 갈대 하나를 꺾었다. 그리고는 바지 춤 안으로 삼대를 집어넣었다.
 
여의가 먼저 바지를 풀러 오줌 누는 자세를 취하자 황세도 질세라 바지를 풀러내렸다. 황세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분명 여의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처럼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이다. 황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여의가 여자임을 증명해보겠다고 결심했다.
 

   
▲ 지난 4월 가야문화축제 폐막작으로 공연된 극단 이루마의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한 장면.
세월이 흘러 어느새 두 아이는 이팔청춘의 나이가 되었다. 세월은 여의의 몸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눈에 띄게 허리와 다리가 가늘어지고 젖가슴이 봉긋 솟아올랐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남장을 한 여의는 복대로 늘 젖가슴을 짓눌러야 했다. 그래도 풍겨 나오는 여인의 향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어느 날, 황세는 여의와 함께 거북내(지금의 해반천)로 가게 되었다. 크고 작은 바위와 은모래가 반짝이는 거북내는 무척 조용했다. 바닥에는 연푸른 옥돌이 깔려 있었고 수천 년을 흐른 물줄기는 자수정처럼 맑았다.
 
"야, 여의야. 우리 멱이나 시원하게 감자."

황세는 웃을 훌훌 벗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장대한 기골을 가진 황세의 몸은 탄탄하면서도 구릿빛이었다. 그의 빼어난 몸을 보며 얼굴이 달아오른 여의. 선뜻 옷을 벗지 못하고 무척 망설이는 눈치다. "황세야. 먼저 들어가서 멱을 감으렴. 나는 볼일 좀 보고 들어갈게."

"그래라. 나 먼저 하고 있을 게."

여의는 커다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한참동안 멱을 감던 황세는 여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무척 이상했다. 여의를 찾으러 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커다란 나뭇잎이 떠내려 왔다. 나뭇잎에는 여의가 자신이 여자임을 고백하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나뭇잎을 본 황세는 만족스런 웃음을 띄우며 여의를 찾았다. 그러나 여의는 이미 집에 가고 없었다.
 
그날 밤, 황세는 여의의 아버지인 출정승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출정승은 황세를 불러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허나 황세는 자기 아비 황정승을 닮아서인지 보통 소고집이 아니었다.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원래 출정승과 황정승은 어릴 때부터 깊은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두 사람은 각자 아들과 딸을 낳으면 혼인시키기로 약조한 바 있었다. 그런데 딸을 낳은 출정승의 마음이 변하고 말았다. 빈한한 황정승 집안에 딸을 보내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여의에게 남장을 시켰던 것이다.
 
   
▲ 봉황대 언덕 위에 있는 여의각. 황세와 여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날이 되면 두 사람을 위한 작은 제사가 열리곤 한다.
황세가 여의의 집 앞을 지킨 지 사흘이 되던 날이었다. 출정승은 딸을 불러 황세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여의는 얼굴을 붉힐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딸의 속마음을 알게 된 출정승은 이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황세를 불러 개라바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황세는 한달음에 개라바위로 달려가 여의를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나…. 거의 하루가 다 갈 즈음이었다. 저 멀리서 하늘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여의가 눈에 들어왔다. 황세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의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여의를 개라바위로 데려갔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붉고 노란 빛이 아낌없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면서 반드시 혼인하자는 맹서를 하게 되었다.
 
때는 수로왕의 9대손인 겸지왕이 다스리던 시대였다. 당시 대가락국은 신라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황세는 뛰어난 장군이 되어 신라군을 격파하는 데 앞장섰다.
 
"어서 오게. 황세 장군. 진정 우리 금관국의 보배로다."

황세가 망산도에 침입한 신라군을 격퇴하고 돌아오자, 겸지왕은 친히 그를 환영했다. 대전의 신하들도 황세의 늠름한 기상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황세를 존경과 사랑의 눈으로 쳐다보는 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왕의 딸인 유민공주였다.
 
"황세장군은 진정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오. 내 이제부터 장군을 하늘 장수라 칭하고, 유민 공주와 결혼시켜 짐의 부마로 삼겠소."
 
신하들은 모두 놀라는 눈치였으나 이내 찬성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유민공주 또한 휘장 뒤에서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황세장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혼인을 약조한 여의낭자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폐하, 저에게는 혼인을 약속한 정인이 있나이다. 폐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무엇이라?"

갑자기 대전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휘장 뒤에 있던 유민공주도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무슨 망발인가? 정혼한 여인이 있다니? 그게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출정승의 따님인 여의낭자이옵니다. 두 아버님께서 이미 약조를 하시었고…."
"그건 안 될 말이다!"

겸지왕은 단호한 태도로 황세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대는 왕실과 나라를 구해야 할 몸이다. 두 말 하지 말고 짐의 뜻을 받들라."

서슬 퍼런 왕의 목소리에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못했다. 황세장군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가득 담겼다. 유민공주 또한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황세 장군은 허탈한 마음으로 홀로 봉황대 언덕에 올라갔다. 하현달이 붉은 빛을 내고 있었고 언덕에 황망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개라바위에 오른 그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공주와 혼인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했다.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어느 봄날. 대전 앞뜰에서는 경쾌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황세장군과 유민공주의 혼인식이 열렸다. 겸지왕과 신하들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향기로운 술을 마셨다.
 
그 날 밤이었다. 궁궐 안 지밀한 곳에 차려진 신방에는 화려한 비단 금침이 펼쳐졌다. 봉황촛대 아래 신부복 차림의 유민공주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어두운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 황세장군이 있었다. 마침내 대취한 황세장군은 자리에 드러누워 잠꼬대하듯이 읊조렸다.
 
"공주. 아무래도 공주에게 마음을 주긴 어렵겠소. 이런 나를 용서하시오. 흑흑."

   
▲ 여의각 인근에 세워져 있는 여의낭자의 영단.
황세 장군은 한동안 흐느끼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유민공주는 잠든 황세장군을 내려다보며 가슴아파했다. 공주는 저도 모르게 섬섬옥수를 황세장군의 얼굴로 가져가 흘러내린 눈물을 훔쳐 주었다.
 
황세장군은 한동안 여의낭자를 잊기 위해 무던히도 전장에 나갔다. 차츰 그의 성정도 포악해져 갔다. 그가 전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유민공주는 열과 성을 다해 황세장군을 깍듯이 대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황세장군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밤새 술을 마시며 여의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을 보면 볼수록 유민공주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그 언젠가는 여의를 죽이고 말겠다는 망상을 품기도 했다.
 
한편, 황세장군이 혼인한 후 여의는 식음을 전폐하고 말았다. 철이 들 무렵부터 막연하게 그리움이 사무쳤던 남자. 그의 넉넉한 품에 안기겠다는 꿈이 사라진 여의는 삶의 의욕을 잃고 말았다. 결국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 여의는 애타게 황세의 이름을 부르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여의가 얼마나 황세를 그리워했는지, 죽은 뒤에도 두 눈에서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황세는 여의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개라바위로 올라가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날. 마침내 황세 또한 여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결국 이승의 끈을 놓고 말았다.
 
두 사람이 모두 죽음에 이르자 유민공주는 너무나 참담한 마음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두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황세가 죽고 난 후, 겸지왕은 공주에게 다시 궁궐로 들어오라고 명했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공주는 조용히 두 사람의 영혼을 위무하고 싶었다. 개라바위를 굽어보는 임호산에 작은 사찰을 하나 세워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유민공주는 임호산 깊은 곳에서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영혼을 위로하며 한 많은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 후로 후세 사람들은 임호산을 유민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봉황대 언덕에 가면 여의각이라 불리는 작은 사당이 하나 있다. 후세 사람들이 여의와 황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작은 전각을 세웠던 것이다. 매년 5월 5일 단오날이 되면 두 사람을 위한 작은 제사가 열리곤 한다. 또한 개라바위를 황세바위라고 부르면서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을 길이길이 보존하고 있다.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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