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김해시 주촌면 대리 마을의 한 공장 근처에 1500마리의 돼지가 매몰돼 있다.

경남에서 구제역이 최초로 발생한 김해시 주촌면 일대 가축 매몰지들이 환경부의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부실하게 조성돼 오염우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남환경운동연합은 이달 초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과 국계마을, 내선마을의 가축 매몰지 12곳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인 결과, 환경부 지침을 준수한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지하수 위 1m 이상 이격' '하천 수원지 집단가옥으로부터 30m 이상 이격'같은 환경부의 지침을 모두 어겼다는 것이다.
 
경남환경운동연합은 또 12곳 매몰지 중 저류조를 확보한 곳도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지침에는 매몰지에 저류조를 확보해 쌓인 침출수를 수시로 소독하고 정기적으로 수거해 소각하거나 폐수처리토록 돼 있다. 배수로 역시 저류조에 흘러들도록 해야 하지만 모든 배수로가 하천이나 논, 농수로로 연결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침출수 배출용 유공관 설치는 잠금장치를 하도록 돼 있지만 한 곳도 잠금장치를 설치한 곳이 없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김해뉴스> 취재팀도 주촌면 일대를 둘러보며 비슷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일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 50여 가구로 이루어진, 한 때 물 좋고 공기 맑았던 자그마한 마을은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지난 1월 24일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이후 이 마을에는 9개의 '거대한 무덤'이 생겨났다. 축사와 공장 옆, 폐저수지…. 악취는 매우 심했다. 이날 함께 현장을 방문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관계자 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들 역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최성대(61) 이장은 "지난 주말에 내린 폭우 때문에 그래도 오늘은 악취가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최 이장의 안내로 둘러본 구제역 매몰지 현장의 참상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지난 1월 26일 돼지 2천여 두를 묻었다는 매몰지에는 비닐이 덮여 있었는데, 그 위로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최 이장은 "시간이 지나 사체가 부패하면서 땅이 꺼지고 그 위로 빗물이 고인 것"이라며 "혹시라도 방수 비닐이 찢어져 침출수가 마을 하천으로 새어 들어갈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매몰지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 마을 앞 원지천에는 세제를 풀어놓은 듯 물 위에 거품이 둥둥 떠다니고 있고, 매몰지를 덮은 비닐 위로 빗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왼쪽에서부터)

특히 이 마을은 지난 1월 인근 하천에 붉은 핏물이 섞인 침출수가 흘러들어 주민들의 불안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이후 시에서는 침출수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매몰지를 콘크리트로 에워싸는 공사를 진행했지만 주민들은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을 앞 원지천에는 이미 하얀 거품이 둥둥 떠다녔고, 군데군데 흑갈색의 찌꺼기도 눈에 띄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 김종철(68) 씨는 "이 마을 땅 대부분이 자갈이랑 모래로 이뤄져 있어서 침출수가 아래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리마을 주민들은 모두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침출수로 인한 2차 오염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30년 넘게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김화준 부녀회장은 "매일 생수를 사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하수를 팔팔 끓여먹어도 개운치가 않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한 주민도 "이런 물로는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항의와 민원에도 불구하고 김해시에서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최 이장은 "시에서는 일단 괜찮다고 물을 끓여 마시라고 하는데 안심할 수 없다"며 "그냥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지하수 오염도가 어느 정도인지 투명하게 결과를 공개하라"고 말했다.
 
2시간 여에 걸쳐 구제역 매몰 현장을 둘러본 정 의원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현장에 직접 와 보니 주민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운을 뗐다. 특히 그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대책 없이 수만 마리의 돼지를 묻은 건 몰상식한 행동"이라며 "국회에서 김해 주촌면 대리마을이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도 침출수 하천유입과 주민들의 식수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나섰다.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김희자 사무국장은 "(구제역 매몰지가) 민가랑 어느 정도는 떨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장을 둘러보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며 "매몰지가 낙동강 본류에서도 6~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주민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물을 마시는 일이 없도록 시 차원에서 생수 공급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해시는 지역 내 57개 가축 매몰지 가운데 부실한 매몰지 8곳을 선정해 12억원을 들여 매몰지 보강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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