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 이유와 불거지는 각종 의혹

'시장 선거용이다.' '아니다. 기업의 고충을 해소해주려는 것이다.'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다.' '아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김해시가 '경사도 조례(도시계획조례)'를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김맹곤 김해시장은 그동안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경사도 조례'를 꼽아 왔다. 그런데, 그랬던 김 시장이 시장선거를 불과 8개월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조례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조례 강화 당시 "난개발 문제 해결"
지역 경제계 강력한 반발에도 밀어붙여

특혜 의혹 특정산단 파문 거세지자
다른 산업단지들 대거 인·허가
이젠 경사도마저 완화해 기업 편들기

시장 '거수기' 눈총 시의회 행보 귀추

■ "저런 곳에 공장이…" 했던 김 시장
김맹곤 시장은 2010년 7월 1일 취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쾌적한 생활환경을 위해 난개발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김해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김해시 외곽지역은 어디를 가나 소규모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도대체 저런 곳에 어떻게 공장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이내 공장입지 경사도를 25도에서 11도로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상정했다. 당시 김해시 관계자는 "경사도 조례를 변경하면 도로·하수도 등을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2천10억 원 가량의 기반시설 비용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옛 조례상으로는 향후 개발 가능 면적이 317.010㎦인데, 새 조례를 적용해도 214.373㎦는 개발할 수 있다"면서 '경사도 규제 강화 시 산업용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상공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당초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이 조례 개정 반대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해둔 상태여서 조례 안 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12월 본회의의 투표 결과 새누리당 시의원들 중 일부가 이탈해 결과는 10대 6, 김 시장의 완승으로 끝났다.
 
김해상공회의소(회장 강복희)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김해상의는 "김해 주변 도시를 보면 밀양이 녹지지역은 20도, 나머지 지역 25도로 규제 수준이 가장 낮고, 양산이 21도, 창원은 녹지 16도에 나머지 지역 21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해상의가 회원 기업체 대표 등 7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 가운데 76.5%가 규제 강화에 반대했다.
 
이후에도 지역 경제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새희망김해포럼(이사장 이유갑)이 지난 6월 20~25일 기업인 1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들 중 53%가 경사도 강화 조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긍정적인 답변은 14%에 그쳤다.
 

▲ 소나무가 우거진 김해의 산이 포클레인에 의해 마구 파헤쳐지는 모습. 김해시가 산업단지를 무더기로 허가한데 이어 경사도 조례 완화를 추진하고 있어 이런 볼썽사나운 일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 "산단·공단 다 지어라"
우여곡절 끝에 뜻을 관철한 김 시장은 이후 주요 행사와 언론 인터뷰에서 경사도 강화 조례를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다. 그는 2011년 12월 CJ헬로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난개발 방지 조례를 통해 환경을 지키고 도시의 가치를 높였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김해청년회의소 창립 제44주년 기념식에서는 "난개발 방지와 친환경·친기업 정책이 토대가 되어 일본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로부터 세계적 대기업들을 연이어 유치했다"고 자랑했다.
 
김 시장은 이 과정에서 지역 경제계의 재개정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재개정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김해시가 추진 중인 개정 조례 안은 '경사도 11도가 넘는 땅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했던 것을 고쳐 21도까지 건축을 허용 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김해시의회의 한 시의원은 "일부 시의원들과 경제계 등에서 조례 개정 당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시장은 이를 묵살했다. 그러다 선거를 앞둔 지금에 와서야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서 재개정을 한다고 하는데, 누구라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느냐"고 지적했다. 한 기업인은 "김 시장이 최대 치적으로 자랑해 온 정책을 임기 말년에 스스로 바꾼다는 것은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해시는 이에 대해 "난개발 억제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반박했다. 경사도 기준을 완화하더라도, 사업 예정지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표고차가 50m 이하일 때만 개발을 허락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어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이런 설명은 뒤바뀐 정책을 눈가림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개별공장의 표고차가 50m 이상인 곳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단서조항에 묶여 난개발을 할 수 없는 부지나 공장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경사도 조례 재개정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점은, 김 시장이 최근 들어 개별기업의 산업단지도 무더기로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김 시장은 경사도 조례를 강화한 직후인 2011년 중순 이후부터 2년 동안 개별기업들에게 산업단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난개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그는 조례 재개정 추진에 앞서 최근 몇 달 사이에 갑자기 개별기업들에게 산업단지 허가를 무더기로 내줬거나, 내주려 하고 있다. 김해시가 올해 승인했거나 승인을 검토 중인 민간 산업단지는 외자유치를 앞세운 가운데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노비즈밸리 산업단지 등 10여 곳에 이른다.
 
이에 대해 김해시의회의 한 의원은 주목되는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김 시장은 특정 산업단지와 관련해 비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다른 산업단지들을 대거 풀어줬다. 이에 따른 반발이 일자, 이제는 경사도 조례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시의회의 입장은?
2010년 김 시장이 경사도 조례 개정안을 제출했을 때, 김해시의회는 김 시장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당시 시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이상보(새누리당) 의원은 5분 자유발언 등을 통해 "난개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기준을 높게 잡으면 부작용이 따른다. 상공인들 중 80%가 반대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 등 9명은 김 시장이 주장한 11도 대신 18도로 경사도를 제한하자며 수정안을 내놓았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김형수(민주당) 의원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시의회는 시민을 대표하는 곳"이라며 경사도 11도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 조성윤(무소속·당시 민주당) 의원은 "앞으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된다고 본다"며 이 의원의 발언을 반박했다. 권요찬(민주당) 의원은 "경기도 과천은 9도, 수원·군포는 10도 미만으로 조례를 제정해 놓은 것으로 안다. 11도로 제한하는 게 맞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당시 배정환 의장이 이 의원 등의 18도 수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투표 결과는 찬성 6, 반대 15였다. 부결이었다. 수정안에 찬성했던 9명 가운데 3명이 이탈했던 것이다. 이어진 11도 원안 투표에서는 표결을 하지 않고 원안대로 가결했다. 이미 18도 수정안이 부결된 마당에 원안 투표는 해보나 마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의원 등이 내놓은 18도 수정안은 김해시의 재개정안 21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김해시의 재개정안에 대한 시의회의 반응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시의회의 상황을 분석해 보았을 때, 김해시의 요구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소속 당을 떠나, 시의회가 사실상 김 시장에게 장악돼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시의회에서 열린 각종 표결에서 시의원들은 김 시장의 뜻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김해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지금 시의회는 시장을 위한 거수기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위상이 약화돼 있다"면서 "만약 이번에 시의회가 경사도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켜준다면 3년 전 자신들의 표결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셈인데, 이런 사실을 부끄러워 할 의원이 얼마나 될지조차 의문"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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