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례 상촌마을에 터를 잡은 '소림기념관'이 오는 9일 문을 연다. 상촌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광주안씨 문중의 유학자 소림 안병석(所林 安秉奭·1910~1975)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고서화작품과 도자기·고승유묵·서양화 등이 전시된다. 지역의 작은 기념관이지만, 그 안에 소장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는 문화재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 많다. 개관식을 앞두고 <김해뉴스>가 소림기념관을 찾아가 주요 작품들을 들러보았다.

▲ 소림기념관을 이루는 건물들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배치됐다.

소림기념관을 들어서면 정면 본관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오른쪽부터 소림서실, 사조헌, 배석헌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 고서화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왼쪽 액자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난 그림이다.
소림 선생 사진·유품 전시 소림서실
▶소림서실(所林書室)=소림 선생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과 관련 유품 등이 전시된다. 소림서실에 들어서면, 소림 선생의 친필 '孝百行源(효백행원·효가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뜻)'이 먼저 보인다. 이 글은 선생이 1974년, 손자인 안재선 소림기념관 관장에게 내려주었다. 후손이 바른 길을 걸어가기를 원했던 마음을 담은 글이다. 소림 선생이 늘 손닿는 곳에 두고 보았다는 <강희자전>(중국최대의 한자자전)은 선생이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 옆에 놓여 있다. 소림 선생이 17세 때 쑨원(1866~1925·중국의 혁명적 민주주의 지도자)의 북벌개혁론을 세밀하게 필사한 두루마리도 있는데, 무려 5m 길이에 이른다. 필체의 처음과 끝이 변함없이 단정해 마치 인쇄본을 보는 듯하다.
 
사조헌엔 추사 편액·소치 '모란도' 등

▶사조헌(思祖軒)=소림 선생과 선조를 추모하는 후손들의 마음이 담긴 방이다. 후손들이 간직하고 있던 작품들을 기증받아 전시했다. 이 방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호벽수(珊瑚碧樹·산호 가지와 벽옥나무 가지라는 두 보물이 서로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의미)'를 서각한 편액이 걸려있다. 추사가 융성하라는 의미로 사대부가나 전국 유명사찰에 써주었던 글귀이다. 추사의 필체를 감상할 수 있다.
 
▲ 사조헌의 내부 전경. 오른쪽 벽면 위에 걸린 추사 김정희 글씨의 '산호벽수' 편액과 소림 선생의 후손들이 간직하고 있던 작품들.

사조헌에는 소치 허련(1808~1893·조선 후기 서화가)의 '모란도'가 걸려있다. 모란은 부귀와 복락의 상징인데, 소치 허련은 모란을 잘 그려 '허모란'으로 불리기도 했다. 집안을 복되게 하라는 뜻을 담은 그림이다. 조소앙(1887∼1958·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의 서예작품도 눈에 띈다.
 
구한말에 이르는 유명화가들에서부터
김은호에 이르기까지 작품 걸린 배석헌

▶배석헌(拜石軒)=돌에 고개를 숙인다는 뜻을 담아 방의 이름을 지었다. 이 방은 조선후기부터 구한말에 이르는 유명화가들의 문인화와 괴석을 전시한다. 문인화 역시 괴석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아석 김종대(1873~1949·시·서·화·전각으로 유명한 김해의 문인화가)가 소림 선생에게 그려준 그림이 전시돼 있다.
 
▲ 소림 안병석 선생 근영.
몽인 정학교(1832~1914·행초서로 명성이 높았던 조선의 서화가), 미산 허형(1862~ 1938·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한 한국의 화가. 소치 허련의 4남), 해강 김규진(1868~1933), 춘곡 고희동(1886~1965), 이당 김은호(1892~1979) 등이 괴석 옆에 핀 난, 영지 등을 그린 작품들이 걸려 있다.
 
배석헌에는 안재선 관장이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다니면서 채집한 괴석들이 전시된다. 괴석은 자연의 축소판이며,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변치 않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며,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흥선대원군 난 그림에 정학교 글쓴 작품
이범석 장군 친필 등 모신 고서화미술관

▶고서화미술관=본관 아래 왼쪽에서 관리동을 마주보고 있는 묵향 그윽한 공간. 차산 배전(1843~1899·김해 서화사에서 문인화맥의 개조로 꼽는 인물)의 '사군자 괴석도'가 눈에 들어온다. 괴석을 중심으로 '매란국죽' 사군자가 그려져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난 그림에 몽인 정학교가 화제(그림에 써넣은 글)를 쓴 작품도 있다.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난을 치고 글을 지었던 선비들의 고아한 흥취를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오창석(1844~1927·중국 청나라 말기의 화가)의 '석란도', 소치 허련의 '산수도', 청전 이상범(1897∼1972)의 '동자승천도'도 볼 수 있다.
 
▲ 소림기념관 입구 고즈늑한 돌담길 풍경.
철기 이범석(1900~1972·독립운동가·군인·정치가)의 친필 '浩然正氣(호연정기·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크고 밝은 기)'에는 독립군 장교로서의 기개와 민족정기의 회복을 바라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의지가 담겨 있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개화사상가였던 김옥균(1851~1894)·유길준(1856~1914)·박영효(1861∼1939)의 글씨도 보인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간찰(편지)도 전시돼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약천 남구만(1629 ~ 1711·조선 후기의 문신), 선원 김상용(1561∼1637·조선 중기의 문신)과 흥선대원군의 간찰은 방금 전해 받은 듯 글씨가 선명하다. 성재 허전(1797~1886·3년여 김해도호부사로 머물며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 선정을 펼쳤다)의 간찰도 있다.
 
▲ 평보서실에 전시된 고려시대의 도자기.
서양화·도자작품·선비서실 평보서실
▶평보서실=마당을 가운데 놓고 본관건물과 마주하고 있다. 서양화와 도자작품, 고승유묵들을 전시하는 공간과 선비의 서실로 나뉘어져 있다. 이태길, 오승우, 김흥수, 조병덕, 김종학, 서병오, 박생광, 성제휴, 양달석 등 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주요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안재선 씨가 구입해 소장해 온 작품들이다.
 
이 방에서 보관중인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도자기들은 진품이다. 고려 청자, 고려 회청자, 철화전병 등을 통해 고려시대 도공들의 솜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 도자기를 통해서는 분청 인화문, 무안 반덤벙 기법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큰 스님들의 글씨를 볼 수 있는 고승유묵은 청담, 경봉, 법정, 원담, 진재, 용성, 퇴경 스님 등의 작품들이라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든다. 경봉스님이 달항아리에 직접 반야심경을 쓴 작품도 눈에 띈다. 용성스님은 항상 반성하라는 뜻으로 '상성(常省)'이라는 글을 썼다.
 
선비의 서실은 평보서실의 가장 안쪽에 자리했지만, 문을 열면 바깥마당과 이어진 마루가 있다. 이 방은 황토방으로 된 다실 겸 서실로, 소림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공간으로 꾸몄다.
 
▲ 소림기념관 입구 고즈늑한 돌담길 풍경.
한편, 소림기념관은 이달 말까지 일반에 무료로 공개된다. 오전 10시~오후 5시. 화요일 휴관. 소림기념관은 일 년에 봄, 가을 두 차례만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소림기념관 위치/진례면 시례리 329. 상촌마을 염수당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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