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례로 들여다본 실상

베트남 출신 투이(가명) 씨
결혼중개업소가 방에 여성들 들여보내
물건 고르듯 선택돼 첫날밤 치르고 결혼
시부모가 산부인과 데려가 불임시술
가게·집안일 내몰리며 종업원처럼 혹사

베트남 출신 투이(가명) 씨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A 씨와 결혼했다. 그가 A 씨와 결혼한 과정은 정말 간단했다. 결혼중개업소는 투이 씨를 포함해 젊은 여성 5~6명을 한 방에 일렬로 세웠다. A 씨는 그중 가장 마음에 든 투이 씨를 선택하고 그날 바로 첫날밤을 치른 뒤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한국에 온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투이 씨는 시부모의 손에 이끌려 김해의 한 산부인과로 가 알 수 없는 시술을 받았다. 한국어를 전혀 몰랐던 투이 씨는 자신이 어떤 시술을 받았는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자궁에 피임장치를 삽입하는 일명 '루프 시술'을 한 걸 알게 됐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피임 시술을 한 시부모의 행동에 투이 씨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피임 시술을 하고 난 뒤 6개월 동안 투이 씨는 부작용으로 매일 하혈을 했다. 결국 루프를 제거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여러모로 순탄치 않았다. 시부모와 남편은 가게를 운영했다. 투이 씨는 그 가게에서 하루 종일 종업원처럼 일만 해야 했다. 그에게는 용돈이나 급여가 한 푼도 주어지지 않았다. 시부모에게 투이 씨는 며느리, 아내가 아니라 종업원에 불과했다.
 
고생하는 투이 씨에게 돌아오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라 투이 씨의 모국을 모욕하는 말과 행동이었다. "너희 나라에는 물 없지. 속옷이 다 해졌는데 너희 엄마 가져다줄까." 투이 씨를 무시하는 시부모의 말은 그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집안일도 모두 투이 씨의 몫이었다. 함께 사는 시누이는 빨랫감을 투이 씨의 얼굴에 던지거나,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리기도 했다. 투이 씨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하지만 돈이 없는 투이 씨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투이 씨가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이라곤 남편뿐이었다. 하지만 남편도 투이 씨의 버팀목은 아니었다. 남편은 "여기서 지내다가 베트남 남자 만나면 결혼해라. 언제든 보내주겠다"며 오히려 투이 씨를 조롱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투이 씨에게 주기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 일에 지친 그가 잠자리를 거부하면 남편은 "잠자리를 안 할거면 한국에 왜 왔느냐. 이럴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타박했다.
 
시부모와 남편의 학대를 참다못한 투이 씨는 2년여 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한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 지난 4일 김해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한 결혼이주여성이 기자에게 한국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정 기사 내용과는 무관.

25세에 시집온 쿠엔(가명) 씨
임신 후 당뇨로 3개월만에 유산 비운
입원 동안 남편·시댁식구 찾지도 않아
시누이 불쑥 찾아와 "본국 돌아가라"
가슴 속 큰 상처에도 한국 떠나지 못해

지난해 25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역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쿠옌(가명) 씨. 그도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한국남자와 결혼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그는 임신을 했다. 검진을 하러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그에게 당뇨병이 있다고 알려줬다. 당뇨병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쿠옌 씨는 임신 3개월 만에 뱃속의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병원에서는 유산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유산 후 쿠옌 씨는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지만, 시댁 식구들은 물론 남편조차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시댁 식구들에 대한 섭섭함으로 그의 마음은 멍들어갔다. 입원 마지막 날 시누이가 쿠옌 씨를 찾아왔다. 그는 반가운 마음으로 시누이를 맞이했지만, 시누이는 "비행기 표 사줄게, 너희 나라 돌아갈래"라는 말을 하며 그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상처만 안고는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쿠옌 씨는 다시 남편과 살고 있다.
 
재혼 남편과 결혼 팡 니아(가명) 씨
임신 두 번 했지만 시어머니 강제 낙태
남편의 두 아이나 잘 키우라고 강요
끊이지 않는 가정내 폭력에 몸서리
집 나와 쉼터 생활 도중 억지로 끌려가

역시 베트남 출신인 팡 니아(가명) 씨. 그는 아이 둘을 둔 50대 남성과 결혼했다. 그는 두 번 임신했지만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산부인과로 가 강제로 낙태를 당했다. 원래 있는 남편의 아이나 잘 키우라는 게 이유였다. 때론 평소보다 집에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베트남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 집에 돌아온 날 남편은 손에 프라이팬을 쥐었다. 그리고 버릇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그에게 폭행을 행사했다. 남편은 폭행도 모자라 겨울이면 방에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았다. "춥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다 못해 집을 뛰쳐나간 그는 대구에 있는 쉼터에서 한동안 살았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쉼터에 전화를 걸어 팡 니아씨를 데려오라고 되레 화를 내기도 했다. 조국으로 차마 돌아갈 수 없는 팡 니아씨는 매일 눈물을 참으며 남편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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