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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머무는 산에 부처의 나라를 세우리라(5) 은하사와 장유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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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11.05 15:47
  • 호수 146
  • 12면
  •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kkim40@hanafos.com)

   
▲ 1천500년의 신비를 간직한 은하사는 가야에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는 장유화상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신어산 아래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은하사 전경.
낙엽 쌓이고 오래된 좁은 산길을
장유화상과 함께 간 수로왕과 허왕후
병풍바위 기암절벽 아래 대지에 서자
"아라한의 넉넉한 품새 지닌 것 같소"
금관국 최초의 가람 '서림사' 명명
왕과 왕후 세상 떠난 후 '은하사' 개명
삼성각에 창건주 장유화상 영정 모셔


동트기 전이었다. 봉황대 궁궐에 희미한 여명이 비쳐 들었다. 수로왕 일행은 궁궐을 나섰다. 멀리 수평선 위로 태양이 짙은 해무를 뚫고 오르는 중이었다. 궁궐 아래 포구는 적막감에 사로잡혀 있고, 연붉은 빛이 고요히 앉은 배와 앞바다를 불그죽죽 물들이고 있었다. 허왕후의 얼굴에도 연노란 빛이 슬며시 깃들었고, 수로왕은 그 빛을 보며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왕비의 옆에는 이제 세 살 된 거등왕자가 앙증스런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계절은 추색이 완연한 시월이었다. 추일청상(秋日靑裳)이라. 만산에 붉고 노란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붉고 묘려한 잎들이 홍수처럼 산과 하늘을 물들였다.
 
궁궐을 나온 수로왕 일행은 평야를 지나 신어산 입구에 다다랐다. 거등왕자의 손을 잡고 가마에서 내린 허왕후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허왕후는 감격에 찬 표정으로 신어산을 쳐다보았다. 산은 온통 붉고 노란 잎들을 담고 있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기암괴석은 하나같이 웅장했고, 암석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비취빛이었다. 금관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가진 곳이 바로 신어산이라고 했다.
 

   
▲ 은하사 한쪽에 있는 스님 조각들과 석탑.
장유화상은 진중한 자세로 신어산을 향해 합장했다. 허왕후도 장유화상을 따라 합장하며 간절히 소망을 빌었다. 오늘 그들은 금관국 최초의 사찰을 짓는 대역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대역사의 시작은 사찰을 지을 터를 고르는 것이었다. 신어산을 선택한 이유는 산자락에 웅장하게 서 있는 기암괴석들이 18 아라한의 위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어산의 남쪽으로는 광활한 평야가 연녹색 피부를 자랑하며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천삼백 리 낙동강이 푸른 이무기의 자태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산의 정상에 서면 무척산, 토곡산, 금정산의 고당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장유화상은 수로왕과 허왕후를 좁은 산길로 안내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흙에 발이 푹푹 빠지는 오래된 길이었다. 산짐승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산길 곳곳에는 복장나무, 신나무, 청사덕나무 등이 화려한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들은 마침내 고요한 대지에 도착했다. 그리 크지 않은 공터에는 야생화와 풀들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땅 뒤에는 기암절벽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절벽 너머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멀리 남쪽 방향으로 봉황대 궁궐이 보였다. 궁궐에서 보자면 이 곳은 북쪽이었고, 신어산 안에서 보자면 서쪽이었다.
 
   
▲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로 만들어진 팔각지붕 모양의 2층 건물인 보제루. 옛날 은하사에 비슷한 형태의 중층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대사. 참으로 좋은 장소요. 병풍처럼 둘러쳐진 저 바위들이 마치 아라한의 넉넉한 품새를 지닌 것 같구려."
"대왕께서 그리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저는 이곳에 서림사란 이름을 붙였나이다. "
"오라버니, 이 모든 것이 인연인가 봅니다. 저와 오라버니가 금관국에 온 것도, 이곳에 불법의 세계를 전하게 된 것도 모두 인연이겠지요."
"그러하오이다. 왕비시여."
"서림사라. 참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짐이 천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사랑스런 왕비를 만나게 된 것도, 또 소중한 내 아들 거등을 만나게 된 것도 다 부처님이 주신 인연 때문이지요. 대사, 수고하셨소이다."
"감사하옵니다. 대왕이시여. 하루속히 부처님의 미소가 금관국에 내리기를 바라옵니다."

그 다음날, 장유화상은 공터 위에서 도편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편수는 멀리 백제 땅에서 온 사람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님, 이곳에 사찰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길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목재를 수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관건입니다."
"그건 걱정 마시오 이미 목재는 내 다 마련해 놓았소. 길은 내일부터 작업하면 되니까 도편수께서는 목공들과 기와공, 단청장이를 데리고 오시오."
"며칠 있으면 속속 금관국으로 들어올 겁니다."

장유화상은 산길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던 일꾼들을 불렀다. 일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삽과 칼을 들고 나무와 풀을 베었다.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일꾼들은 서림사로 향하는 길을 빠르게 만들어 갔다.
신어산 입구에 장정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가을이라지만 한낮의 태양은 강렬했다. 모두의 이마에 구슬땀이 흘렀다. 커다란 통나무 밑에 작은 나무를 받치면서 장정들은 말과 노새를 이용해 신어산으로 나무들을 져 날랐다. 일꾼들이 나무들을 서림으로 가져오자, 목공들이 부지런히 도끼와 톱, 대패로 나무를 쪼개고 자르기 시작했다.
 
겨울이 다섯 번 지나가고 신어산 정상에 철쭉이 활짝 피어나는 봄이 되었다. 세 살이던 거등왕자는 이제 여덟 살이 되어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왕후는 거등왕자 밑으로 두 명의 왕자를 더 낳았다. 왕후는 왕자를 낳으면 반드시 신어산으로 와서 왕실과 왕자의 무운을 빌었다.
 
서림사를 짓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일꾼들이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며칠 동안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장유화상이 아유타국에서 갖고 온 신비의 묘약으로 그들의 배탈과 설사를 멎게 했다. 또 한 번은 큰 호랑이가 공사 현장에 나타나 두 명의 일꾼을 잡아먹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일꾼들이 두려움에 떨어 공사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장유화상은 동굴에 웅크리고 있는 큰 호랑이를 석장으로 내리쳐 한 번에 잡았다. 호랑이 가죽은 궁궐에 바치고 그 고기는 모든 일꾼들과 나누어 먹었다.
 
일곱 해가 시작될 즈음의 봄이었다. 어느덧 서림사는 가람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삼성각과 응진전, 명부전이 완성되었고 범종루도 다 만들었다. 대웅전 또한 단청만을 남겨 둔 상태였다. 대웅전은 장유화상과 허왕후의 고향인 서쪽을 향해 있었다.
 
   
▲ 2000년에 건립된 범종루. 안에는 신어범종과 목어가 있다.
장유화상은 범종루에 서서 오층석탑과 눈 위에 있는 대웅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제 녹의홍상이 절정에 치닫는 성하의 계절이 되면 서림사는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도편수가 장유화상을 찾아와 쌍어 문양을 어디에 새길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칠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유화상도 도편수도 서서히 늙어갔다. 두 사람은 금관국 최초의 가람을 세우면서 때론 싸우고 때론 곡주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갔다.
 
"대웅전 수미단에 새기시오. 삼천 년이 흘러도 이 가람이 무너지지 않게. 또한 대들보에 신어를 그려 넣으시오."
 
도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각장이와 단청장이를 데리고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사흘 전에 대웅전 지붕에 치미를 올려놓았다. 관세음보살상은 골조 공사를 하기 전에 이미 본존불로 모셔 놓은 상태였다. 이제 화룡점정의 순서만 남아 있었다. 보살상의 눈에 작은 점 두 개를 찍으면 서림사는 금관국을 지키는 위대한 사찰로 태어나는 것이다.
 
삼 개월 후. 모든 전각의 단청이 끝나고 이제 대웅전 주존불의 점안식만 남은 상태였다. 점안식은 오후 늦게 거행될 예정이었다. 서림사 전체에 밤새도록 촛불을 켜고 부처님이 오래도록 경내에 머물기를 바랄 것이었다. 그를 위해 금관국 아리따운 처녀들이 대웅전 앞뜰에서 밤을 지새워 탑돌이를 할 예정이었다. 수로왕과 허왕후, 장유화상, 그리고 도편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함께.
 
   
▲ 보제루 2층 복도 난간에 조각돼 있는 삼두 거북.
뎅~. 태양이 서서히 서쪽 하늘로 넘어가면서 붉고 노란 빛을 지상에 뿌릴 즈음이었다. 대웅전 앞마당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수로왕과 허왕후, 거등왕자는 대웅전 앞에 차려진 휘장 안에서 이 모든 과정을 경건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막 태양이 서쪽 봉우리를 넘어갈 때였다. 장유화상이 붓을 들어 관세음보살상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나뭇단이 그의 발밑을 지탱하고 있었다. 뎅~. 다시 범종루에서 종소리가 울려 나왔다. 장유화상은 관세음보살상 왼쪽 눈에 점 하나를 찍었다.
 
대웅전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장유화상은 몸을 돌려 다시 붓을 들었다. 그리고 오른쪽 눈에 작은 점을 하나 찍었다.
 
'보살이시여. 충분히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안에 남아 중생에게 고귀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숭엄한 존재이시여. 때론 당신이 부처님보다 더 위대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이타의 정신 때문일 겁니다. 이제 당신은 서림사의 주존불이 되어 주소서.'
 
그런데 그때였다. 장유화상을 떠받들고 있던 나뭇단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허나 그들은 잠시 후, 눈을 비비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유화상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오른손에 들린 붓끝이 관세음보살상 눈 위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장유화상은 그 붓끝의 힘에 의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그 엄숙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대웅전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로왕과 허왕후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뜻이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장유화상이 아래로 내려왔다. 붓을 잡은 그의 오른손이 가늘게 떨렸다. 허왕후가 앞으로 달려와 장유화상의 손을 잡았다. 오누이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작은 눈물을 흘렸다. 수만 리의 바다를 건너 도착한 금관국에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가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다.
 
대웅전에 있던 모든 중생들이 마당으로 몰려나왔다. 범종루에서 청량한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탑돌이가 시작되었다. 서림사 전체에 촛불과 횃불이 불타올랐고 중생들의 염원이 담긴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들은 모두 눈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른 은하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직녀성과 견우성이 반짝이는 가운데, 무수히 많은 별똥별들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은하수를 쳐다보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오늘 창건된 서림사가 금관국과 백성들을 지켜주기를 바라면서….
 
세월이 흘러 수로왕과 허왕후, 장유화상 모두 이승의 끈을 놓게 되었다. 서림사는 그 이름을 은하사로 바꾸었고 삼성각에 창건주인 장유화상의 영정을 모셨다. 대웅전 대들보에는 지금도 신령스러운 물고기가 남아 있으며, 대웅전 아래 수미단에는 아유타국의 상징인 쌍어가 선명히 그려져 있다. 이 쌍어문양은 수로왕릉의 정문에 그려진 것과 유사하다. 천 오백년의 신비를 간직한 은하사. 가야에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는 장유화상의 흔적은 지금도 김해지역에 연연히 전해져 오고 있다. 장유면이라는 행정 지명이 남아 있고 장유계곡과 그 계곡 위에 장유암이라는 절이 있다. 더군다나 장유암에는 푸른 이끼에 싸인 장유화상 사리탑이 남아 장유화상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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