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화춘 창업자의 손자인 곡충의 씨가 창업주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로 이어졌던 경화춘과 만리향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경화춘은 65년 전 쯤 중국 출신 화교 곡소득 사장이 개업한 '중화요리전문점'이었다. 이 집은 김해 최초의 중국식당으로 2층 규모의 100석 이상 자리가 마련된 제법 큰 식당이었다. 그러나 15년 전쯤 곡 사장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아들들이 번갈아 경영을 맡았지만 결국 10년 전 문을 닫고 말았다. 경영을 맡았던 장남 조서 씨의 건강이 나빠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 수연씨도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수연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대신 올해 초 조서 씨는 아들 충의(31) 씨와 함께 경화춘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만리향'이란 이름의 손만두집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15일자 <김해뉴스> 3호 '그때 그 시절 경화춘을 아시나요'라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전부터 김해 토박이들로부터 경화춘에 관한 추억담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졸업·입학 등 기념할만한 날이 있을 때마다 경화춘을 찾았다는 얘기, 배우자를 처음 만나고 피로연까지 경화춘에서 열었다는 얘기, 수매가 끝난 후 경화춘에서 탕수육에 자장면 한 그릇을 비워야 비로소 수확의 기쁨을 실감했다는 얘기 등등…. 저마다 경화춘과 관련한 추억 한 자락쯤 가지지 않은 김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오래된 음식점 하나가 지역민들에게 이토록 '기억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런데 정작 관심을 끈 것은 사라진 '경화춘'이 아니라 현존하는 '만리향'이었다. 65년 된 경화춘의 스토리가 만리향을 통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 경화춘이 있던 자리. 아직도 건물 외벽에는 '慶華春'이란 상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시인 이은상의 노래말에 작곡가 현제명이 곡을 붙인 가곡 '그집앞'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노래말 그대로였다. 만리향 앞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몰래 발이 머물렀다. 그리움보다는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정작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두려웠다. 만리향의 만두 맛이 여느 분식점 수준에 불과하다면, 경화춘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면…. 이 65년된 스토리는 10년 전에 막을 내린 상태에서 영원히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오랜 망설임 끝에, 취재는 뒤로 하고 우선 만두 맛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한가한 오후 시간에 혼자 만리향을 찾았다. "찐만두 1인분!" 다른 건 필요없다. 만두집의 내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찐만두면 충분하다. 찐만두가 나오면 우선 표면에 생긴 주름부터 확인해야 한다. 만두는 숙성을 통해 완성되는 음식이다. 재료가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맛을 좌우하는 것은 숙성 시간과 타이밍이다. 고기와 야채 등으로 이뤄지는 속(내용물)도 숙성을 해야 하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드는 피(껍질)도 숙성이 관건이다. 심지어 만두를 빚고 난 다음에도 일정 시간 숙성을 거쳐야 맛이 완성된다. 표면에 생기는 자연스런 주름은 그런 숙성의 결과물이다. 만두 피와 속 사이에 있던 공기가 빠져 나가면서 생긴다. 공기가 빠져 나간 만큼 맛은 활성화된다.
 
피는 내용물의 색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얇다. 얇게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반투명한 색이 고르게 퍼지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반죽을 오래 치대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물은 겉으로만 봐도 그 양이 만만찮다. 겉모습만 보자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 하다.
 
▲ 만리향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
이제 맛을 볼 차례다. <김해뉴스>에서 음식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라는 객관적인 입장을 떠나 굳이 밝히자면, 나는 만두 매니아다. 만두라면 사족을 못쓴다. 사족을 못 쓰는 만큼 평가에 냉정하다. 만두 마니아는 처음 맛 보는 만두 '하나(!)'에 사활을 건다. 찜통에 쪄서 나온 만두는 손님 앞에 놓이는 순간부터 육즙과 피(껍질)가 굳기 때문이다. 잠시 겉모습을 감상한 다음 첫번째 만두를 시식한다. 적당히 보드랍고 쫀득한 피가 찢어지는 순간 구수한 육즙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소룡포(小籠包·돼지기름과 콜라겐이 들어가 육즙이 풍부한 중국식 만두) 못지 않은 육즙이다. 돼지고기·대파·부추·무 등으로 만든 속은 풍성하고 누린내가 전혀 없다. 돼지고기가 좋은 덕이다. 돼지고기의 선도가 떨어지면 아무리 야채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들 누린내를 잡을 수 없다. 첫번째 만두에서 느꼈던 임팩트가 나머지 아홉 개를 먹는 동안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머나먼 중국 산둥 땅에서 건너와 김해에 둥지를 틀고 3대째 역사를 만들어 온 '곡씨' 집안의 내림 손 맛이 변함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만두 맛을 확인했으니 이제 이 스토리를 부활시킬 차례다. 며칠 후 <김해뉴스>의 기자임을 밝히고 만리향을 다시 찾았다. 경화춘의 창업자인 곡소득 씨의 맞며느리인 왕수연씨는 32년전 시아버님의 가게 근처에 만리향이라는 만두집을 열었다. 곡충의 씨가 태어나던 해였다. 어린 충의 씨에게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경화춘과 어머님이 운영하는 만리향은 성장의 터전이자 유일한 놀이터였다. 어린 그에게는 자장면보다
▲ 오래도록 바삭하고 씹는 맛이 일품인 탕수육을 만들고 있는 곡충의 씨.
만두가 훨씬 맛있었다고 한다. 동상동 종로길 사거리 건너 편에서 시작한 만리향은 몇 년 후 경화춘 근처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부터 입소문이 퍼져 문전성시를 이룬다. '향기가 독특하고 강해서 만리까지 퍼진다'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15년 전 할아버지 곡소득 씨가 세상을 뜨자 경화춘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10년 전엔 어머니 왕수연 씨가 암에 걸려 만리향까지 접었다. 이렇게해서 곡 씨 집안이 김해에서 이뤘던 두 개의 스토리가 한꺼번에 막을 내린다.
 
그리고 십 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과 옷장사 등을 하던 충의 씨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만두집을 열기로 한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로 이어졌던 경화춘과 만리향의 스토리를 부활하기 위해서! 이래야 스토리가 재미있어지는 법인데 사실은 아니다. 어릴적부터 인이 박힌 그 만두 맛이 그리웠다. 게다가 그 만두라면 지금이라도 제법 돈벌이가 될 것 같았다. 퇴직 후에 만두집을 하겠다던 계획이 20년쯤 앞당겨진 셈이다.
 
부모님은 걱정과 기대 속에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기억 속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제법 혹독한 수련이 이어졌다.
 
만두란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음식이 아니어서 재현 자체도 어렵거니와 시절도 변하고 입맛도 변한 상태다. 단순히 과거의 맛을 재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만두 속은 어찌 해결됐는데 피를 만드는 일이 만만찮았다. 어머니로부터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반죽을 500번 이상 치대는 중노동이 반복된 끝에 감을 잡았다. 만두의 숙성 타이밍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냈다. 지금은 당일에 쓸 만두를 하루 전에 빚어 숙성시킨다.
 
탕수육과 만두국을 만드는 방법은 경화춘을 운영했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충의 씨 스스로 판단하건대, 지금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맛을 거의 재현했다고 한다. 피와 속으로 구성되는 기본이 충실하니 찐만두, 군만두, 물만두 모두 평균 이상의 맛이다. 돼지고기 등심을 넉넉히 사용하고 고구마 전분과 계란으로 옷을 입힌 탕수육은 오래도록 바삭하고 고기 씹는 맛이 제법이다. 새콤달콤한 레몬소스는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개량되었다. 많지 않은 메뉴지만 그 메뉴들 속에는 경화춘과 만리향의 역사와 맛이 녹아 있다.
 
이쯤되면 꽤 멋진 부활 스토리라 생각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과거 김해의 중심지였던 종로길 상권이 예전만 못하니 손님이 뜸하다. 가끔 만리향을 기억하는 오랜 단골들이 찾아주지만 그것만으로는 힘이 부쳐 보인다. 내동이나 삼계동 등 상권이 좋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임대료가 워낙 높거니와 경화춘과 만리향이 있던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만리향에서 20여m를 가면 예전 만리향이 있던 가게다. 거기서 다시 20여m를 더 가면 경화춘이 있던 2층 양옥 건물이 있다. 지금도 '경화춘(慶華春)' 석 자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좋아하던 만두를 제 손으로 빚어 먹을 수 있게 된 충의 씨에게 최근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하루를 마감할 즈음 만두 한 접시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만두와 맥주의 궁합이 기가 막힙니다. 만두의 숨은 맛을 맥주가 끌어내 주는 것 같더라구요. 어지간한 스트레스는 그냥 풀립니다". 이 사람 진짜로 만두 맛을 아는 사람이다. 맛을 아는 사람이 만드니 어디 내놔도 꿇리지 않을 만두다. 인상 좋은 충의 씨 뒤로 지난 60년의 역사가 어른거린다. 만리향뿐만 아니라 종로길이 예전처럼 화려하게 부활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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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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