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 불사는 나무속에 앉아 있는 부처님을 드러내는 일이다. 목불은 나무의 바깥에서부터 일정한 양을 깎아내며 조각해야 한다. 처음부터 치밀한 설계가 있어야 완성할 수 있다. 또한 완성될 때까지 불모(佛母. 부처를 낳는 어머니라는 뜻도 있고, 부처를 조각하거나 그리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도 된다)의 지치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각칼 사용법에 능통해야 한다. 대동에서 목불을 조각하는 정봉환(46) 씨를 찾아가 목불 불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저 경건한 작업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고 속을 태우면서 불상조각가를 꿈꾸었고, 늘 배우는 자세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정봉환 씨 뒤로 목불과 후불목탱화가 보인다. 박나래 skfoqkr@

정봉환의 공방 '수곡불교조각원'은 대동면 주동리 452-5에 있다. 성안마을을 지나 산해정으로 가는 길목이다. 1층은 수미단(須彌壇·부처님을 모시는 단) 등을 짜는 공장이고, 2층에 정 씨의 '수곡불교조각원'이 있다. 2층은 작업을 하는 공방과, 손님을 맞는 공간으로 구분돼 있다. 공방에는 한창 불사중인, 아직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부처님이 여러 분 앉아계셨다.
 
그런 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일까요?
어느날 공방 앞에서 만난 '강한 이끌림'


정봉환은 경남 합천군 초계리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일찍 부산으로 이사해 초·중·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그는 한 목공예 공방 앞을 지나다가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더군요.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나의 진로선택으로 연결된 셈이죠. 그 공방에서 목가구의 장식조각을 배웠어요. 일본에 수출하는 불단도 만들었구요." 일본은 조상을 모시는 불단을 집안에 설치하는 가정이 많다. 그는 1년 여, 목공예 공방에서 일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 목불 조각 도중 정봉환 씨가 부처의 상호를 다듬고 있다.
군대에서는 행정병으로 근무했는데, 그가 목공예 공방에서 일하다가 입대한 사실이 부대에 알려져 근무 시간 외에는 계속 목조각을 했다. 그가 군에서 복무하던 중, 가족이 김해 부원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제대 후 불교조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진례면 시례리의 한 불교조각가 밑에서 1년 6개월 정도 일했다. 그런 뒤, 부산 강서구에 있는 불교조각 전문회사인 '금강불교'에 취직했다. 금강불교는 불교조각의 전반적인 분야를 다루는 회사로, 직원이 25명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부산에서 제일 큰 회사였다. 그는 이 회사에서 15년 정도 일하면서 불상, 목탱화, 나무부조 등의 작업을 했다. 불교의 신앙내용을 그린 그림을 탱화라 하는데, 이것을 나무부조로 만들어 입체화한 것이 목탱화이다.
 
정봉환은 금강불교에 입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군에 가기 전에 불교조각을 전문으로 하는 금강불교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일부러 찾아가서 작업과정을 구경했습니다. 부처님을 조각하는 불사를 나도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워낙 어렵고, 또 경건해보여서 내가 감히 해도 되는 것인가, 할 수 있을까, 마음만 태웠지요. 제대 후에 금강불교 직원을 만나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아는 분을 통해 몇 번이나 부탁을 드려서, 힘들게 입사했어요."
 
그는 처음에는 목탱화 분야를 맡았는데,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끝없이 불타올랐다.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절을 짓는 거잖아요. 불교조각의 모든 것은 부처님을 위한 것입니다. 불상 조각이 하고 싶어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남아 공부를 했습니다. 선배님들의 작업도 지켜보고, 밥도 사면서 배우고, 혼자서 불상 조각도 하고…."
 
나무에 불상을 조각하는 목불 불사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도와가며 해야 해요


그러던 중 그에게 따로 목탱화 의뢰가 들어왔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독립을 했다. 그가 불상을 조각한 지는 8년 여, 대동에 공방을 연 지는 올해로 5년째이다. "불교조각은 각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수미단 짜는 분, 목탱화 조각하는 분, 불상조각 하는 분, 채색하는 분, 모두가 서로 도와가면서 불사를 하는 거지요. 그렇게 함께 일하는 동안 저도 점점 기량이 늘어났습니다. 불상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상호(相好.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 불교미술에서는 부처님의 얼굴을 뜻함)인데, 상호를 조각하는 것에도 자신이 생겼습니다."
 
정봉환은 6개월 전 쯤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소목장 박현석 씨가 1층에 공장을 내고, 정봉환은 2층에 공방을 차렸다. "박현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이고요, 3년 전부터 그 분이 수미단을 짜고 제가 불상조각을 하는, 함께 움직이는 형태가 됐지요. 이 분야에서 제가 처음 뵈었던 분들을 아직도 만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20년 지기들이죠. 저는 여전히 막내 뻘입니다." 그는 부원동 집에서 출발해 매일 오전 8시쯤이면 주동리의 공방에 닿는다. 하루 종일 나무와 씨름 하는데, 한창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밤이 이슥해질 때가 많다.
 
현재 공방에서 한창 제작 중인 불상의 둘레는 한 아름은 족히 넘었다. 목불의 조각 기법 가운데, 하나의 통나무로 불상 전체를 조각하는 것이 '통조각 기법'이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오래되고 일반적인 기법이다. 연대가 오래됐거나 크기가 작은 목불에서 통조각 기법을 볼 수 있다. 목불의 크기가 크면, 목재의 지름보다 돌출되는 손이나 발 등은 다른 나무를 덧붙이기도 한다. 특히 좌상(坐像)에서는 옆으로 길게 돌출되는 양 무릎 부분을 다른 나무로 덧붙여 조각한다. 목불의 재료로는 오동나무, 소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이 사용된다. 결이 아름답고 조직이 견실한 나무들이다.
 
"목불 불사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힘들지만, 부처님의 상호를 완성하고 나면 그 피곤함이 씻은 듯 사라지지요. 완성된 목불상에 옻칠을 하는 과정, 그 다음의 개금작업(불상에 금을 입히는 작업), 채색작업 등은 따로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불상은 진심을 다해 작업하는 여러 과정의 전문가들이 함께 이루어내는 불사인거지요."
 
▲ ① 완성된 목불. ② 목불 위에 옻칠을 하는 단계. ③옻칠한 목불에 개금 작업을 해 불상을 완성한다.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배움의 자세로
진심을 담은 작업에 정진하려 하죠


그가 만든 목불 중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있다. 경기도 용인 미륵사에 모셔진 이 목불은 높이가 5m에 이르는데, 3년 정도의 제작기간이 걸렸다. 전북 무안 내소사의 지장전에 모신 '지장보살 목탱화'도 그의 작품이다. 2년여의 기간에 걸쳐 완성됐다. 강원도 태백의 유일사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과 목탱화'는 완성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눈이 많은 곳이라 1년에 차량통행이 가능한 기간이 4개월밖에 안 돼 작업기간이 더 길어졌다.
 
정봉환은 바로 며칠 전, 전북 고창 선암사 도솔암에 '반야용선(참된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 극락정토로 가기 위해 타는 배)'을 완성해 보냈다. 이 사찰들에 가면 정봉환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김해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생림면 도요마을의 금국사 삼존불이다. "독립해서 만든 제 첫 작품이지요. 부처님이 잘 계신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끔 금국사에 들릅니다."
 
그는 현재 김해의 한 절에서 부탁해 온 부처님을 불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지금도 낮은 자리에서 여전히 배움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나무를 보면 부처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나무 안에 계시는 부처님을 드러내 보이는 작업이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분들은 높은 경지에 계신 분들입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여전히 막내입니다. 처음 뵈었던 분들, 30년 가까운 세월을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하는 분들을 뵈면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정봉환
불상조각가, 목공예가, 서각인. 문화재청 인정 문화재 수리기능인 2968호. 김해미술대전 추천작가. 대한민국서각대전 초대작가. 경상남도 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2013년 김해아트페어 개인부스전(김해문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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