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례면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초전리가 진례의 중앙부에 있다. 초천리 돈담마을은 용지봉이 진례쪽으로 뻗어 내린 다섯 갈래 중 가장 왼쪽에 있다. 용지봉이 들판에 이른 곳의 산자락을 허물고 마을이 들어섰다고 한다. 지대가 조금 높다고 해서 돋은 마을(담)이라는 뜻의 돈담(敦淡)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지대가 높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들판 한가운데에 마을이 있는 느낌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도 추수가 끝난 들판이 보였다. 공장도 몇 곳 들어와 있지만, 주민들의 집 담벼락에는 가을 햇살이 변함없이 따사롭다. 담장 너머 감나무에는 잘 익은 감이 주홍빛 보석처럼 달려 있다. 현재 마을에는 30여 가구에 7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독뫼(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낮은 산)의 흔적도 남아 있다.

▲ 진례면의 한가운데 있는 돈담마을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습이 조금 변했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독뫼' 흔적
민물고기 넘쳐나던 논 옆 도랑의 추억
논마다 물 대던 보와 풍성한 들판들
만 명이 '삐댈' 땅엔 진례초 100년 역사
한여름 가물 때 오일장 열리던 돈담교
동네 아낙들 글자 가르치던 '시전할매'

"지금은 논 옆의 도랑들이 직강화됐지만,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흘러 운치가 있었죠. 미꾸라지도 많이 잡혔습니다." 돈담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송윤한 김해생활경제연구소장이 마을을 안내했다. 그의 말처럼 돈담마을 논에는 미꾸라지가 많았다고 한다. 뻘 속에 자갈이 많아서 미꾸라지는 깨끗하고 노랗고 토실토실했고 살이 야물었다. 추어탕을 끓여내면 국물이 아주 시원했다.
 
"미꾸라지뿐만 아니라 메기, 가물치, 은어, 피라미, 붕어, 장어도 득시글거렸지. 도랑이 물 반, 고기 반이었어. 마을사람들이 하루저녁에 미꾸라지를 두 드럼통씩 잡기도 했는걸. 진례면에 쌀을 사러 오는 장사치들이 큰 동이로 미꾸라지를 사가기도 하고, 마산에 있는 부식가게에서 미꾸라지를 받으러 오기도 했지." 마을 주민 송수복(58) 씨의 말이다. 마치 농촌마을이 아니라 어촌마을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풍족했던 물고기들은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도랑이 직강화 되자 자연히 사라졌다.
 
돈담마을에는 물을 대는 보도 많았고, 보 옆마다 논이 있었다. 그 풍성한 들마다 보의 이름이 붙었다. 등깔들. 정보들, 배양보들, 텃보들, 진례보들, 배합보들….
 
송 씨는 "우리 마을은 못 살고 잘 살고가 없었어. 우리나라가 살기 힘들었던 1960~1970년대에도 집집마다 한섬지기 농사는 지었으니까. 그건 경남에서도 드문 일이었어. 다들 밥 걱정 물 걱정 없이 살았지"라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농사가 많아 1978년까지 마을에 머슴이 있었어. 1979년 김해에서 영농기계화 1호 마을이 되면서부터 머슴도 없어졌어."
 
마을에는 진례초등학교가 있다. 1926년 개교해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학교를 세우기 전의 일이다. 한 스님이 마을을 지나다가 들판 한 곳을 바라보며 "1만 명이 삐댈(밟아서 발자국을 남긴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땅이구나" 라고 감탄했다. 바로 그 자리에 진례초등학교가 들어섰단다. 송 씨는 "예전에는 진례초등학교 운동회 날이 진례면 잔칫날"이었다고 전했다.
 
▲ 추수가 끝난 돈담마을 들판.

1930년에 세운 돈담교에는 마을 주민들은 물론 진례면민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한여름 가물 때면 돈담교 위에 장이 섰다. 가뭄이 들 때 장을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해서 오일장을 돈담교로 옮겼던 것이다. 돈담교에서는 가설극장도 열려 이동영화가 상영되기도 하고, 악극단 공연도 열렸다. 가설극장이 서는 날이면 온종일 마을과 진례면이 들썩였다.
 
마을에서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야학도 열었다. 남자들은 시원한 도랑가에서, 여자들은 시전할매의 방에서 글자를 배웠다. 청주송씨 집안의 시전할매는 글자를 가르치고, 마을 아낙들이 친정으로 보내는 편지도 써 주었단다. "시전할매로 부르는 사람도, 시전아지매로 부르는 사람도 모두 그분께 도움을 받았죠. 글씨가 좋았어요. 수놓기도 배우고, 혼례가 있으면 폐백음식 하는 것도 배우고, 마을이나 집안에 큰 일이 있으면 여자들이 찾아가 의논을 드리는 분이었지요." 다른 주민 송삼복(54) 씨가 시전할매의 추억을 더 들려주었다.
 
문맹 퇴치운동에 열성이었던 돈담마을은 마을 입구에 탁자를 놓고, 장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시험을 보도록 하기도 했다. "글자를 모르면 장에 못 나갔어. 이번 장에 못 나가면 닷새 동안 열심히 글자를 깨쳐 시험에 합격하고 다음 장에 나갔지." 송수복, 송삼복 씨는 "못 배운 사람은 범보다 무섭다. 후손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던 마을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다시 들려주었다.
 
마을주민들은 마을 바로 옆으로 남해고속도로와 경전선(KTX)이 지나가는데, 그 소음이 너무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주민들은 "철도소음이 너무 크고, 집이 덜덜 흔들릴 정도"라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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