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 상(上)자, 상리(上里) 아이가, 어데 가도 안 진다!"
 
한림면 안곡리 상리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안하리에서 안곡교를 건너고, 안곡마을과 중리마을을 지나면 가장 위쪽에 상리마을이 있다. 염·공·조, 세 성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상리마을 돌담길과 옛 모습을 간직한 시골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제일 위쪽에 동네라고 '상리'라 불러
염·공·조 씨 집성촌 이루며 일가친척
마을 입구 당산 소나무 군락 위용
삼계로 이어지는 상리고개엔 옛 정취
 
마을 입구에 접어들면 주변 나무와는 어딘지 분위기가 사뭇 다른 소나무 고목 몇 그루를 만나게 된다. 도로가 난 탓에 소나무가 선 언덕도 도로에 바짝 붙어 있지만, 언덕이 무너지지 않도록 석축을 쌓아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이 소나무가 상리마을의 당산나무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이 곳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 삼계동으로 이어지는 마을 뒷산 상리고개.
상리마을은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물이 풍부해 예전에는 논농사, 밭농사를 지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축산을 크게 했다. 최근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어디서 봐도 공장이 보이긴 하지만, 마을회관 앞에서 둘러보는 마을의 집들에는 아직 옛 모습이 남아있다. 주변의 산은 늦가을의 풍경으로 아름답다.
 
지영순(78)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산으로 꽉 차 있었어. 숲속마을이었지. 지금은 공장이 들어서면서 객지사람들도 많이 들어왔어. 어느 마을, 어느 마을 가를 게 뭐 있어. 안곡, 중리, 상리 할 것 없이 다 친구였지"라고 말했다.
 
"봄이면 온 산이 진달래로 물들어 산이 발갛게 불타는 듯 했지. 나무도 많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아름다웠어." 염정옥(86) 할머니가 옛날 풍경을 떠올렸다.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한림면에서 술도 제일 잘 묵었다 카더라"고 덧붙였다. 한림면 술도가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인즉슨 그만큼 상리마을에 젊은이들이 많고 활달했다는 의미란다. 할머니들은 이야기 끝에 "한 가락씩 하던 멋쟁이 양반들이 다 저 세상 가버렸다"며 먼저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염·공·조, 세 성씨가 서로 혼인을 하면서 일가친척을 이루고 살아서 '넘(남)이 없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단결도 더 잘됐던 거야." 한림면 출신으로 김해군 공무원을 지냈던 조정래(80) 씨가 상리마을을 안내하며 덧붙였다.
 
마을회관 앞에는 그 옛날의 아름다운 인정과 모습을 잊지 말자는 마음을 담아 '2006년 쾌적한 숲속마을 김해시 한림면 상리'라고 새긴 박석이 박혀 있다.
 
▲ 마을 입구 당산나무. 소나무들의 기상이 대단하다.
마을 뒷산을 넘으면 삼계동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상리고개'라 한다. 상리고개는 안곡마을, 중리마을, 상리마을 사람들이 김해로 가는 길이었다. 장을 보러 갈 때는 물론, 이 고개를 넘어 학교에도 다녔다. "고갯길을 걸으면, 길바닥이 가슴에 닿을 만큼 가팔랐어. 얼매나 힘이 들던지. 그때는 차도 없고, 운반수단도 없었어. 남자들은 지게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상리고개를 넘어 김해까지 다녔어. 힘드니까 혼자서는 못 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도와가면서 넘었지." 옛날 고개 넘던 이야기 끝에 할머니들은 "제발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오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가 그나마 저 밑에 안곡까지만 온다. 5분만 더, 몇 발만 더 오면 되는데, 타는 사람 없다고, 오던 버스가 무단히 안온다. 매일은 안 타도, 우리도 버스 탈 일이 안 있나."
 
마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상리고개를 넘어 김해시내로 돌아왔다. 옛날, 숨가쁘게 넘던 상리고개는 말끔하게 포장된 시군도 16번도로가 됐다. 고개를 넘어서니 김해공원묘지가 보였다. 산등성이에서 단풍이 지는 걸 감상하는 동안 10분도 채 안 돼 삼계동의 대단지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고갯길을 '김해의 옛길 걷기'로 개발해도 좋겠다 싶었는데, 공장을 오가는 덤프트럭이 많아 그러기엔 좀 위험했다. 하지만 내내 아쉬운 생각이 들만큼, 상리고개 주변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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