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긴장 속 정사 매달려 운동부족 탓
안질부터 근골격계 질환까지 자주 앓아


▲ 태종의 영정.
지난 8일 이현효 원장이 <김해뉴스> 창간 3주년 기념 무료시민교양강좌에서 강의한 '조선의 왕과 건강'을 총 8회에 걸쳐 보다 자세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싣습니다. 세조(본지 8월 28일자)와 세종(10월 17일자)은 '이현효 한의사의 건강백세' 칼럼을 통해 이미 소개되었으므로 이번 연재에서는 생략합니다.

"천하의 모든 오명은 내가 짊어지고 갈테니, 너는 어진 임금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기도록 하여라."
 
태종 이방원이 임종할 때 셋째 아들 세종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세종의 위대한 업적은 태종의 피와 땀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 태종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수많은 숙청을 단행한다. 조선 창건에 방해가 된다고 여긴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함으로써,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의 기반을 확고히 한다. 이후 이복동생인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조선의 설계자이자 신권중심론의 중심에 있었던 정도전·남은을 살해하고, 방석·방번을 귀양보낸 후 사사시킨다. 이것이 1차 왕자의 난이다. 이후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동복형제 방간이 박포와 공모하자, 역시 살해하여 조선왕조의 초석을 다진다. 이것이 2차 왕자의 난이다.
 
태조가 양위하고 결국 왕위에 오른 태종은 중앙집권 강화 절차를 밟아나간다. 공신과 외척을 무더기로 제거하였고, 사병을 혁파하여 군사를 삼군부로 집중시킨다. 1414년에는 육조직계제를 확립하여 육조가 국정을 나누어 맡도록 한 뒤 이를 한손에 틀어쥐며 8도 체제로 정비하였다. 태종은 또 호패법의 실시와 신문고의 설치 등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긴다.
 
태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태종에게는 안질을 비롯하여 풍질·견비통·역절풍·항강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안질에서는 조선의 체제를 정비하려 수많은 문서를 접했을 태종의 격무와 노력이 읽힌다. 풍질·견비통·역절풍·항강증 등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을 자주 앓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 소견으로 볼 때, 풍질을 위시로 한 태종의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은 영양상태에 비해 운동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추측한다. 비록 문과에 급제했지만, 태종은 스스로 무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자처했다. 활을 쓰고 말을 타는 무인의 피가 흐름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고려말의 혼란상을 종식시키고,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등의 생명을 건 위험한 정치적 선택으로 창건한 조선시대를 열기 위해 젊은 시절의 태종은 말을 타고, 수없이 아버지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러다 정몽주 등 고려유신의 숙청과 1, 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며 그는 왕위에 오른다. 이후 그의 삶은 정치가로서의 인생이었을 것이다. 개국공신이자 무인으로서의 삶에 비해 현저히 운동량이 부족한 문관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주로 앉아서 정사를 처리하고, 피의 숙청을 거쳐 만든 조선의 시대를 만들기 위해 숱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감내했을 것이다.
 
태종이 앓았던 풍질은 오늘날 관절염의 범주로 볼 수 있다. 관절염이란 뼈와 뼈를 연결하는 물렁뼈가 소실되는 것을 말한다. 퇴행성 관절염·류머티스·외상성 관절염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관절염은 체중의 부하가 걸리는 무릎, 척추 등에서 주로 발생하며 비만한 체형과 쪼그려 앉아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특히 빈발한다.
왕이 되어 무인의 삶에서 좌식위주의 문관의 삶을 사는 것은 운동부족으로 이어졌으며, 태종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운동부족은 근육의 발열기능 약화를 가져와 몸이 냉해졌을 가능성도 높다. 때문에 류머티스 관절염의 경우는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 면역기능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랫배를 데워주는 뜸치료와 체온을 올려주는 한약을 떠올리며, 태종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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