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상대적으로 크게 제작된 머리와 손은 군주로 군림한 메디치 가문을 누르고 권력을 쥔 공화정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501년에 만들기 시작해 4년에 걸쳐 완성했다.

1784년 피에트로 대공 수집 미술품 기증
미술학교라는 뜻의 아카데미아 미술관 출발
미켈란젤로 '다비드상' 진품 옮겨와 유명세
미완성의 노예상 4점 등도 관람객에 명성


드디어 피렌체다.
 
중세의 어둠을 뚫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도시라든지, 두오모의 지붕이 꽃의 도시란 이름처럼 아름답다든지 뭐 이런 달콤한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휴가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하는 순간. 우선 빨리 숙소부터 잡아야 했다. 짐과 아이들을 아내와 함께 역 구내 패스트푸드점에 남겨두고 저렴한 호텔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어젯밤은 니스에서 베네치아까지 밤기차를 탔다. 그리고 오늘은 새벽부터 허겁지겁 베네치아 구경을 떼고(?) 피렌체로 달려 내려온 길이다. 오늘 저녁은 편안한 잠자리가 꼭 필요하다. 마음은 급한데 골목길에 줄지어선 호텔들 문밖으론 '빈방 없음' 표시가 즐비하다. 초조한 것은 나. 그들에겐 어쨌든 즐거운 여름 한철 대목이다.
 

▲ 피렌체 시내 전경. 도시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며 역사지구는 1982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어제 니스에서 여행 중인 한 동양인 가족을 만났다. 그쪽도 아이들이 있어 플랫폼에서 늦어지는 밤기차를 함께 기다렸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했고 마르세유에서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3주간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라는 그는 니스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에서만 휴가의 대부분을 보내리라 한다. 파리에서 시작한 나의 여정을 듣더니 빙긋이 웃는다.

여름휴가로 열흘간의 숨가쁜 유럽여행을 보내는 우리가족이 한국에선 그래도 얼마나 부르주아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튼. 어렵게 에어컨은 없지만 선풍기 하나는 쌩쌩 잘 돌아가는 구석방을 그러나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겨우 잡았다. 굳이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꼽자면 우피치 미술관과 가까워 아침 일찍 줄을 서러 나가기 편하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피렌체. 늘 꿈꾸던. 도시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탈리아에는 아카데미아란 이름의 미술관이 여러 곳 있다. 도제식 교육으로 미술을 가르치던 시절부터 각각의 미술학교에 교육용 조각과 회화작품들이 필요했던 이유로 미술학교란 뜻의 미술관이 생겨난 것이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1784년 피에트로 레오폴도 대공이 자신이 수집한 고전 미술 작품을 미술학교에 기증한 것이 출발점이 되었다.

▲ 다비드상 손부분.
특히 1873년 이탈리아 통일 직후, 시뇨리아 광장에 있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온 후 미켈란젤로의 조각 전시 공간으로 그 명성을 더했다. 표를 사기 위해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있는 골목을 찾아 들어섰다. 우피치 미술관에 이어 또 다시 한여름 폭염의 땡볕 아래 하염없이 늘어진 긴 줄이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 머나먼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에겐 말로만 듣던.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명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피렌체 사람들은 다비드를 참 좋아한다. 미술관의 다비드상 말고도 2점의 다비드 복제 조각상이 피렌체 시내에 더 있다. 아르노 강 건너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와 원래 자리인 시뇨리아 광장에. 특히 시뇨리아 광장은 시내의 중심이라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몇번씩 다비드와 마주치게 된다.

다비드는 잘 알고 있듯 오늘날도 여전히 빈번하게 상징과 비유로 차용되는,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바로 그 다윗이다.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상을 의뢰했던 피렌체 공화국 정부 또한 주변의 거대한 강대국들과 싸워나가는 도시국가 피렌체의 정의와 자유의 상징물로서 다비드상을 필요로 했던 거다. 팔맷돌을 오른손에 움켜 쥔 다비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골리앗과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기 직전의
▲ (위)수염난노예/(중간)젊은노예/(아래)성마태오상
긴장된 모습이다.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의 숨 막히는 순간. 모든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의, 그러나 침착하고 담대한 다비드를 묘사한 미켈란젤로는 1501년 그가 29살 나던 해에 만들기 시작해 4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지칠 만큼 지친 후. 드디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간다. 일층. 안으로 들어가면 앞뒤로 긴 복도식 전시실이 나오고, 그 끝 지점.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에 모두가 기다린 다비드상이 있다. 돔형 천장 아래 높이 서있는 다비드상은 입구 쪽 멀리에서부터도 보인다.

그 주변에 사람들이 오일장터에서처럼 모여 있다. 둘러보니 긴 복도식 갤러리에 만들다 중단한 듯한 조각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미완성의 미학'으로 불리며 다비드상 못지 않게 전 세계 미켈란젤로의 팬들을 사로잡는 4점의 노예상과 '성 마테오' 그리고 '팔레스티리나의 피에타'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6점의 노예 연작을 만들었는데 그중 거의 완성작에 가까운 2점은 파리 루브르박물관로 가고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미완성인 4점의 노예상만 남아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위대한 '콰트로첸토'(1400년대라는 뜻)라 부르는 15세기에 이르면 르네상스 회화는 원근법과 해부학 등 과학적 지식을 통해 보다 더 세밀한 사실적 표현이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에겐 사물을 실물과 똑 같이 그려내는 일 즉, 자연주의적 사실 표현이 그들이 이르고자 하는 최종 목표 지점이 아니었다.

"플랑드르의 화가들은 이성에 입각해서도 아니고 예술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며… 힘찬 표현력도 무시한 채 오로지 외양으로만 꼭 같이 보이기 위하여 그림을 그린다"라며 당대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의 정점에 있던 플랑드르 회화를 비판한 사람도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다. 무슨 뜻인가. 예술의 본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그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인물이나 사물의 외양 못지 않게 그 내면의 모습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미완으로 남김으로써 대리석이란 물질에서 사물이란 구체적 형상이 생겨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작품을 의도적으로 미완성으로 남기는 기법을 '논 피니토(non finito)'라 부른다고 한다.
 
미술관을 나왔다.

걷다보니 또 다시 다비드가 서 있는 시뇨리아 광장이다. 시뇨리아는 통치권이라는 의미로 이탈리아 중세정부를 뜻하는 말이다. 금융업으로 시작해 도시국가의 군주로 군림한 메디치 가문. 그들의 안목으로 설계되고 번성한 피렌체. 르네상스. 그리고 새로운 세계사. 그런데, 모두가 다비드면 골리앗은 대체 누구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도나도 거인 골리앗에 맞선 다윗을 자청하는데 그렇다면 정작 골리앗은 어디에 있는가. 혹시 나는? 아. 그나저나. 땡볕에 오래 서 있었더니 머리가 띵하다.
 


■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 조각가, 시인.
조각 작품으로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와 '다비드', '모세'가 유명하고, 프레스코 회화 작품으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시스티나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 벽화가 유명하다. 스스로는 조각가로 불리길 원했으며 300편이 넘는 시를 써 남기기도 했다. 살아서 3편이나 되는 자신의 전기를 본 최초의 미술가이기도 하다. 보통 미켈란젤로 혹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로 부른다.




■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a dell' Accademia) ──────

·주소:Via Ricasoli 58-60, 50122 Firenze
·전화번호:+39 055 2388609
·예약전화번호:+39 055 294883
·개관 시간:화요일~일요일 am 8:15~pm 18:50
·월요일 휴관
·요금:6.5유로
·가는 길:두오모 광장 북쪽 리카졸리(via Ricasoli)를 따라 5분 거리에 있다.
http://www.firenzemusei.it/00_english/accademia/index.html


■ 여행팁 -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서 세계적 관광지인 피렌체는 현재 인구 40만 규모의 도시. 13∼15세기의 예술작품과 건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인 시가지 중심부는 거리 전체가 박물관과도 같다. 관광객이 오가는 구시가지는 미술관 관람을 제외하면 반나절이면 걸어서 다 구경할 수 있다. 피사 등 주변 토스카나 지방의 여행을 함께 할 계획인 경우 피렌체를 베이스캠프 삼아 기차로 당일치기로 오가며 여행을 하면 된다. 덧붙이자면 근처의 시에나와 산지미냐뇨는 토스카나 여행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하이라이트이다.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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