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 소녀는 '나의 꿈 찾기' 발표 수업 때 "내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누가 화가가 되라고 말해준 적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는 화가가 되고 싶다, 화가가 될 것이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을 뿐이다.
아주 서서히 몸과 마음에 배어든 화가의 꿈이었다. 그 꿈을 키워 온 문영정(48) 씨는 지금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어 있다.

문영정은 경남 하동읍에서 태어났고, 하동여고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만들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종이인형을 그리고, 인형 옷을 그리고, 예쁘게 색칠하고, 이 종이인형과 옷들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놀았다. "돌이켜보면 그림과 떨어져 있었던 날이 없었네요. 놀 때도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화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후부터 그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그림 잘 그리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마침 하동여고 앞에 작은 화실이 하나 생겼는데, 부모를 졸라 그 화실에 다녔다. 고 1때, 학교대표로 그림대회에 나가 하동군에서 주는 큰 상도 받았다. 그러나 문영정은 하동의 작은 화실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 문영정 화가는 목정화실에서 주로 작업을 하지만, 가끔 집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작은 방 곳곳에 그의 그림이 걸려 있다. 김병찬 기자 kbc@

미술교사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죠
목정 문운식 선생을 만난 건 기회였고
한국화 기초부터 다시 배웠어요

"미술학원에 대한 정보 같은 것도 없었는데,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고 1때부터 진주의 화실을 찾아갔죠. 언니가 진주에 살고 있었어요.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면 진주 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화실을 다녔고. 방학 때는 언니 집에서 살면서 화실을 다녔어요."
 
여고생이 3년 내내 하동과 진주를 오가며 화실을 다녔으니 힘들었을 법도 한데, 정작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단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러 가는데 뭐가 힘들어요.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날들이었죠."
 
그는 진주에서 모뉴망, 현대, 예로 세 곳의 입시미술학원을 다니며 기초부터 다시 하나하나 배웠다. "알고 보니, 제가 다닌 미술학원이, 진주의 대표적인 입시전문미술학원이더군요. 3학년 때, 예로화실을 다니면서 경상대학교로 진학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죠."
 
▲ 문영정의 작품 '돌담을 걷다'.
그가 대학에서도 미술을 하겠다고 하자, 교사였던 아버지는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는 마침내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로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경남 합천 야로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문영정은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어느 봄날, 푸릇푸릇 새 생명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학교 앞 들판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스케치를 나갔다. 그는 블라우스에 긴 A라인 스커트를 입고, 논두렁에 핀 들꽃처럼 하늘하늘 걸으며 학생들의 그림을 봐주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훔쳐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학교와 담을 이웃하고 있던 야로보건소의 남자 직원들이었다. 그 구경꾼들 사이에 있었던, 당시 야로보건소의 공중보건의 이상철 씨는 문영정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한편의 소설 같은 만남이었다. 야로중학교의 체육교사를 통해 소개를 받은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그 후 이상철 씨는 김해에서 치과를 개원했고, 부부는 함께 김해로 왔다. 올해로 23년째. 문영정은 그때부터 김해 사람이 되었다.
 
경남도전·대한민국 미술대전 등
잇따라 수상하며 한국화가 길 차근차근
윤슬미술관에서 2009년 첫 개인전
자연의 강한 생명력에 대한 집착에서
보다 자유롭고 단순화된 풍경으로 전환


그와의 인터뷰 도중 기자는 작은 실수를 했다. "전공이 뭐죠? 서양화, 동양화?"라고 물은 것이다. 그의 전공은 미술교육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미술교육과는 회화는 물론이고, 사진부터 조소까지 미술의 모든 영역을 다 배우고,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죠.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전공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무슨 작업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 때문에 다시 정식으로 붓을 잡았고요."
 
▲ '생명'.
미술교사로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는 친구의 소개로 한국화가인 목정 문운식 선생을 만났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죠. 기회가 왔다 싶으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성격이에요. 목정화실에서 한국화의 기초부터 다시 배웠어요. 몇 년 동안 붓을 놓았으니 처음에는 힘들었죠. 미술대학 출신이니 어떻게 그리는지도 알고 있었고, 보는 눈도 있었는데, 제가 원하는 대로 그림이 안 나와서 처음에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3~4년 정도는 우왕좌왕 했던 것 같아요. 2000년부터는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경남도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등에 작품을 출품해 수상을 하면서 차근차근 걸어왔습니다. "
 
그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목정화실로 달려가 1시간 정도 그림을 그렸다. 물 한 모금 마실 겨를도 없이 몰입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 뒤,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아침에는 남편과 같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해 아이들 돌보고 살림을 했으니, 남편은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줄을 몰랐죠. 10년을 그렇게 혼자서 그림을 그리다가 개인전을 열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깜짝 놀라더군요."
 
남편 이상철 씨는 "전시회에 내걸 그림이 어디에 있으며, 개인전이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전을 열면 사람들이 좀 와야 하는데 사람들을 부르는 것도 민폐다"라며 선뜻 동의해 주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영정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작품도 화실에 있었으니 남편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문영정은 그런 남편 앞에 가제본한 전시회 팸플릿을 내밀었다. 팸플릿을 본 남편은 놀라면서 "이걸 모두 당신이 그렸느냐, 내가 뭘 해주면 되겠느냐"고 반색을 하며 물었단다. "그제서야, 남편에게 팸플릿 인쇄비용과 전시회 오픈식 때 남편의 지인들을 초청하자는 말을 꺼냈죠."
 
그는 계속해서 당시를 즐거운 표정으로 회상했다. "남편이 적극 도와주니 첫 전시회 준비가 술술 풀리더군요. 연극하는 후배에게 전시회 오프닝 준비를 부탁했는데, 알고 보니 그 후배가 번작이극단의 조증윤 대표였어요.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전시회 디스플레이 하는 날에 남편이 방문을 왔는데, 100호짜리 그림이 몇 개씩 들어오니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일손을 도와 줄 후배들을 불러주었고…. 첫 번째 개인전이라는 감회도 컸지만, 남편이 그때부터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보람이었습니다." 2009년 그의 첫 전시회는 그렇게 해서 성황리에 끝났다.
 
그런데, 개인전에 걸렸던 그림들은 어딘지 좀 쓸쓸하고 적막하다. 그가 '생명'이라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40호 크기의 이 그림은 잡목 아래에 우거진 채 시들어 있는 풀을 그린 그림이다.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슬픔을 추스를 수 없어 힘이 들었어요. 우연히 다 시들어 가는 잡목과 잡초 더미 사이에서 다시 싹을 틔우는 어린 풀잎을 보았지요.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는데, 다 시들어버린 줄 알았는데 다시 피어나는 풀 한포기를 보니 자연의 강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더라구요. 한겨울 스산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땅 속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다시 움트고 있어요. 첫 번째 개인전에 걸었던 그림들은 그런 주제로 그림 그림이 많아요. 언니를 생각하면서, 제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와 아픔을 털어내면서 그린 그림들이죠."
 
그렇게 해서 응어리와 아픔을 털어내고 난 지금, 그의 그림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그림도, 생각도, 붓도. 눈앞에 펼쳐진 풍경 중에서 하나를 확 잡아당겨서, 필요 없는 물체나 형태는 안 그리고, 많은 것을 생략한, 단순화 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 붓끝에서 자연이 재창조되는 거죠." 그의 말대로 그가 보여준 최근의 그림은 이전의 그림과는 달라져 있었다. 풍경은 화폭 안에서 넓고 여유로웠다. 그가 그리지 않음으로 해서 더 많은 이야기가 화폭에 숨어 있는 듯 했다.

≫문영정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경남도전 특선 5회, 입선 2회. 경남국제아트페어(2013, 창원컨벤션센터), 개인전(2009,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부스전(2006, 안산단원미술관), 초대전 및 단체전 200여 회 참여. 대한민국미술대전·경남미술대전·3.15미술대회, 김해미술대전·경북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현재 경남미협 한국화분과위원장, 경남미술초대작가, 김해미술초대작가 등. 김해가야고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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