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마을이라고? 자연이 남아 있지를 않은데 소개할 게 있겠나? 일단 마을회관으로 와 보소."
 
한림면 안하리 안하마을은 안곡리에서 흘러온 안하천이 용덕리에서 나오는 용덕천과 만나는 곳에 있다. 용덕천은 안하마을 앞 들판을 적시며 나아가서 299만㎡ 넓이의 화포천 습지를 형성한 뒤 낙동강과 합류한다. 마을 동북쪽과 서북쪽에는 마을 주민들이 학산이라고 부르는 명학산을 비롯해 200m를 넘지 않는 나지막한 언덕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 안하마을 입구의 오래된 식당 앞에는 숨이 겨우 붙어 있는 고목이 있었다. 마을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듯했다.

안하천·용덕천 만나는 곳에 자리잡아
물난리 한자 '안'과 낮을 '하' 합쳐 이름
숲골과 봉산 둘러싸인 정남향 배산임수
옛 모습 대신 난개발 몸살에 깊은 시름


김정옥(70) 이장과 마을 주민들은 "아름다운 자연이 이제는 없다"고 하지만, 안하마을은 그래도 일대에서 가장 자연을 잘 보전해온 편이다. 안하리에는 어은, 장재, 독점마을이 있었다. 이제 독점마을은 사라지고 어은과 장재마을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예전만 못하다는 안하마을 주민들의 한탄은 과거에는 그만큼 이곳의 땅과 물이 실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실제로 안하마을은 한때 한림면의 옛 이름이었던 이북면의 면 소재지였다. 안하마을은 정남향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마을 앞에 숲골이라는 작은 숲이 있고, 그 너머로는 봉산이 비스듬히 서 있어 그런대로 명당의 조건을 갖췄다. 한 때 폐교 위기에 몰렸던 안하초등학교에는 멀리 사는 북부동 아이들이 다닌다. 자연 친화적 환경과 통학버스 지원이라는 장점 때문이겠지만, 풍수지리도 한몫 거들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안하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김 이장을 따라 마을 입구로 나가 마을 이름의 유래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옛부터 물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물난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들판은 기름져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잦은 홍수가 있었던 안하마을의 우리말 이름은 물난리의 발음에서 온 '물아리'였다. 물아리는 나중에 물을 한자로 표기한 '안'과 땅이 낮다는 뜻의 '하'가 합쳐져 안하로 바뀌었다고 추정된다.
 
▲ 안하마을 앞 공터를 지키는 정자.
각종 치수사업으로 이제는 주민들이 홍수 피해에서 벗어났지만, 요즘 안하마을을 괴롭히는 것은 난개발이다. 안하마을 주변 어디를 가더라도 공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보기에 흉한 것은 물론이고, 각종 오염 물질이 나와서 어떤 작물을 심어도 작황이 나빠져. 예전에는 우리 마을에 감을 참 많이 했지. 지금은 할 사람도 없지만 하더라도 약을 많이 쳐야 하니 어렵지."
 
한때 100가구에 400명이 넘었던 마을 인구는 70가구에 100명 이하로 줄었다. 이마저 대부분 어르신들이고, 도시로 나간 젊은 사람들은 명절 때나 고향을 찾는다. 김 이장은 "내가 그나마 젊은 편이라 이장을 맡았다. 처음에 공장이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일자리가 생겨나고 젊은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직원들은 기를 쓰고 도시에서 출퇴근하려 한다. 마을의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다들 자가용을 마을 주변에 대는 바람에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안하마을은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자연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금은 농번기인 겨울을 맞아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며 과일을 깎아먹기도 하지만, 이마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다행히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쇠락했던 마을교회에 새 목사가 오면서 주말이면 70~80명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며 웃었다. 이제 더 바라는 것은 없고, 그저 기초노령연금이나 좀 더 주면 좋겠다는 게 어르신들의 소박한 새해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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