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로 빚어낸 고양이 두 마리. 앞발을 얌전하게 모으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의 몸에는 꽃이 만발해 있고, 싱그러운 풀잎이 바람에 산들거리고, 나비가 날고…. 아름다웠던 어느 봄날, 꽃밭에 나온 고양이를 표현한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도자기핸드페인팅 작가인 김현소(33) 씨가 들길을 산책하며 보았던 꽃과 나비, 그날의 행복했던 기억을 그려 넣은 것이다. 지난해 김해공예협회전에 김현소가 출품한 '좋았던 날'이다.  김현소의 공방 '핑크샌즈'에서 도자기핸드페인팅의 세계를 만나보았다.

김현소의 공방 '핑크샌즈'는 내동 1097-5에 있다. 내외동 종합시장 입구 맞은편이다. 공방 안에는 완성된 작품들이 진열돼 있었고, 넓은 작업대에는 김현소와 그의 수강생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가득했다. '좋았던 날'을 그려 넣은 고양이 두 마리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차 한 잔을 앞에 둔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귀여운 고양이가 금방이라도 앞발을 쭉 뻗으며 낮은 소리로 '야옹' 할 것 같았다.
 

▲ "도자기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문양이 어울릴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도자기 핸드페인팅 작가 김현소 씨는 아직도 더 배우고 열심히 작업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김병찬 기자 kbc@

김현소는 망양휴게소가 있는 경북 울진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의 가족들은 부산 거제리에 잠깐 살다가 김해로 이사를 왔다. 그는 김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창원전문대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서울에서 의상 관련 회사를 2년간 다니다가 다시 김해로 돌아왔고,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무역회사를 다니는 6년여 동안 회사생활은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내가 직장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가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러던 중 옻칠공예가 박부영(김해뉴스 2013년 9월 4일자 '공간&' 참조) 씨가 포크아트 공방을 열고 있을 때, 박부영 작가한테서 포크아트 공예를 배웠다. 4년 정도 포크아트를 배우던 어느 날, 박부영 작가가 그에게 "다른 공예 분야도 배우고, 다른 선생님한테도 배워봐라. 폭넓게 배워라"고 권했다. 김현소는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 박부영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 내외동 핑크샌즈가 떠올랐다. 평소에도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김현소의 눈에 띄었던 곳이었고, 어떤 작업을 하는 공방인지, 어떤 작품이 진열돼 있는지 평소 눈여겨 보던 곳이었다. 그는 핑크샌즈에서 1년여 도자기핸드페인팅을 배웠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했고, 포크아트로 기본을 다진 터라 도자기핸드페인팅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다 배우고 나면 또다른 분야를 배울 생각이었는데, 핑크샌즈를 인수받을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함께 다니던 수강생들이 여럿 있었지만, 김현소가 가장 열심이었기에 그에게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다. 핑크샌즈를 책임져 줄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잘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공방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부모님들은 직장생활이 안정적이니 계속 다니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지만,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직장생활보다 더 오래,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지요. 부모님이 크게 반대를 하신 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길이 더 안정적이잖아요."
 
▲ (위) 컵손잡이와 컵받침에 커피콩 모양으로 장식한 김현소의 작품. (아래) 작품 '좋았던 날'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해 2010년에 핑크샌즈를 인수했다. "막상 인수하고 나니 처음에는 좀 힘들더군요. 그 전에는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만 하면 됐는데, 운영까지 하려니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처음에는 서툴렀죠. 막상 제 작품을 할 시간은 빠듯했구요.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온 지 어느새 4년차를 맞았습니다. 걱정하시던 부모님들도 이젠 뿌듯해하십니다. 특히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세요. 제가 공방을 잘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부터 제게 독립심을 길러주고 강하게 키워주신 아버지 덕분입니다"
 
초벌구이 마친 도자기 위에
수채와·유화·세밀화 등
좋았던 기억 되살린 그림 그려넣어


도자기핸드페인팅은 초벌구이가 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입힌 다음 1천240~1천250℃ 온도의 가마에서 재벌구이 해 완성한다. "제가 원하는 형태의 도자기를 성형하고, 그 디자인을 경기도 이천의 제작회사에 주문해요. 도자기핸드페인팅에 사용되는 도자기는 슈퍼화이트라는 흙으로 만듭니다. 슈퍼화이트를 물에 녹여 성형된 주물 틀에 부어 굳혀서 700~800℃에서 초벌구이 합니다. 초벌구이 한 도자기를 받아 그림을 그립니다. 12색의 안료가 있는데, 물로 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수채화, 유화, 세밀화 등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유약 작업을 하고 다시 가마에서 구워냅니다." 그의 공방에는 1루베 크기의 전기 가마가 있다.
 
걷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는 그는 도자기를 장식한 그림의 소재를 주로 자연에서 찾는다. "길을 걷다가 꽃을 보면, 저는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줄기와 잎까지 자세히 봐요. 야생화도 좋아하거든요." 작품 '좋았던 날' 고양이의 몸에 그려진 꽃과 나비 그림이 세밀화처럼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관찰력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그는 도서관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오래된 책이나 잡지를 보면 그림의 소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늘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문양이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초벌구이한 도자기를 보면서 그 위에 그릴 그림을 생각하기도 하고, 미리 생각해서 그 그림이 어울릴 디자인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김해공예협회전 출품 '좋았던 날'은
그런 행복한 경험을 되살린 작품이죠


고양이는 그가 직접 빚은 것이다. 그는 이제 도자기를 직접 만든다. "고양이를 좋아해요. 지금도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고양이 몸에 그림을 그려 넣었을 때, 제가 여행길에서 느꼈던 좋았던 기억, 행복한 순간, 아름다운 자연이 오롯이 되살아났어요. 저의 '좋았던 날'을 고양이가 입고 있는 셈이죠."
 
직접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으니, 그의 도자기핸드페인팅 세계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궁금했다. 올해의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물어보았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걸 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 1등 말고, 중간을 '잘' 지켜가고 싶어요. 다음 작품은 무얼 할까 고민하면서 나를 뛰어 넘는 것,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잘 해내기 위해 더 고민하고, 더 배우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한편, 그는 김해공예협회회원들 가운데 막내이다. "'공간&'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제가 해도 되나 하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저는 튀는 성격도 아니고, 튀고 싶지도 않거든요. 아직 배울 게 많고, 더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때입니다."

≫ 김현소
도자기핸드페인팅 공예가. 김해공예협회 회원. '핑크샌즈' 운영 중. 제2회 국제깃발대전, 제4회 김해미술대전 입선. 제4회 한양예술대전 특선. 김해공예협회전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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