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폐위 후 치통·각기 시달려
인체 에너지 빠져나가 근력·기운 소모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고종은 폐위되고, 1907년 7월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즉위하게 된다. 그는 1910년 왕으로 강등되어 폐위될 때까지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허수아비 황제'의 지위에 있었다.
 
순종의 즉위를 계기로 일본은 차례차례 조선을 무력화시키며 야욕을 드리내기 시작한다. 1907년 정미7조약을 계기로 일본인 통감이 내정간섭을 시작하게 되고, 정부 각 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한다. 재정 부족을 구실로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고, 1909년 7월 기유각서로 사법권을 강탈한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대한제국을 멸망시킨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36년간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된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 기거하며 망국의 한을 달래다 1926년 4월 25일 승하하게 된다.
 
1910년 한일합방을 기점으로 조선왕조는 막을 내리게 된다. 때문에 <조선왕조실록> 중 1910년 재위 시절을 '순종실록'으로 편철하여 기록하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는 '순종실록부록'으로 하여 기록이 남게 된다.
 
순종실록부록을 보면, 그 전의 왕조실록과 몇가지 다른 점이 있다. 순종 19년 4월 7, 8일 의관이 들어와 진료하고 주사를 놓았다는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이 선교사 알렌에 의해 고종 때였던 1885년에 설립되었고, 개화가 되면서 서양의학도 본격적으로 수입되던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순종은 선대왕들과는 달리 치과 진료를 받은 기록이 '순종실록부록'에 수 차례 언급돼 있다. 1910년 12월 7일에는 치아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 반종철이 입진했으며, 1914년 6월 4일에는 순종의 치통 치료를 위해 의원 요코야마 시게루가 입진했다는 기록이 있다. 7월 8일에는 진료 공로로 금시계를 하사한 기록이 나온다. 1926년 4월 6일에는 주사와 관장법을 시술하고 4월 24일에는 식염주사를 맞은 기록이 있다. 경술국치의 회환과 사그라들어가는 순종의 생명을 느낄 수 있다.
 
순종부록에는 89회의 입진 기록이 있다. 순종의 치통과 각기 등의 잔병치레 원인을 '탈영실정증(脫營失精症)'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의보감>을 보면, '탈영'은 귀하고 높은 권력층이거나 명예의 지위에 있다가 지위를 상실하게 되어 생긴 병이다. '실정'은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돼 생긴 병을 이른다. '몸이 매일같이 수척해지며, 기가 허해지고 정기도 없어지며, 병이 심해지면 자주 놀라게 된다. (중략) 근심으로 인해 혈(血)이 줄어들게 되고, 슬픔 때문에 기가 소모되어 음식 맛이 없고 싫증이 나며, 날로 살이 빠지게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순종의 경우에는 인체의 기본적인 에너지인 정혈과 진액이 밖으로 빠져나가 하지의 근력도 저하되고, 선천의 기운이 소모되어 치통도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순종에게 경술국치가 그랬듯이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남편의 주식투자 실패로 알뜰살뜰 모았던 수억 원을 까먹고 빚더미에 올랐다는 어떤 부인의 하소연. 명예퇴직을 하여 퇴직금으로 식당을 열었는데, 손님이 없어 폐업을 고려중이라는 어떤 중년남성의 푸념…. 어찌 보면 한의학의 탈영실정증은 시대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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