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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형동기가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견되자 일본 학자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묻어나고…(11)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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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4.01.28 11:19
  • 호수 158
  • 8면
  •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kkim40@hanafos.com)

   
▲ 어린이들이 날씨가 맑은날 국립김해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가야 건국 신화가 깃든 구지봉에 자리잡은 김해박물관은 가야 유적을 전문적으로 전시한다.
#1
따뜻하고 부드러운 2월의 햇살이 박물관 잔디밭에 물씬 내리고 있다. 벌써 겨울이 저만치 물러났는지 청명한 하늘에서 투명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 나는 그 햇살을 받으며 쌍어문 양식을 지나 박물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설이 바투 다가온 탓에 박물관 앞마당에서는 민속놀이가 한창이다. 야외에 마련된 민속마당에서 어린이들이 굴렁쇠를 굴린다, 널뛰기를 한다, 제기차기를 한다 하면서 즐거운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그 해맑은 웃음이 보기 좋아 나도 덩달아 웃어본다. 문화의 향기란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멀리 검은 색 벽돌로 둥그렇게 만든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고로를 연상시키는 건물은 온통 흑색의 향연이다. 철의 나라인 금관가야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자 국립김해박물관의 메인 전시관이다.
 
나는 전시관 앞에 설치된 고인돌을 지나 퇴락한 낙엽이 붙어 있는 벤치로 다가간다. 벤치 위에도 여전히 따뜻한 햇살이 내리고 있다. 나는 그 위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 췌장암으로 죽은 옛 학예사 동료 민식과 지도교수님, 그리고 가야의 여성 전사인 채현과 가야 무사인 미유가 생각난다.
 
나는 눈을 떠서 박물관의 본관을 쳐다본다. 철광석과 숯을 상징하는 검은 색 벽돌은 무채색의 향기를 풍기며 무연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 향기에 젖어든다. 제4의 제국, 가야. 그 가야에 스민 무수한 신비와 환상. 어쩌면 나는 오십 평생 동안 그 신비와 환상에 젖어 살았는지도 모른다. 모종삽과 붓을 들고 새벽이슬을 받으며 온 산야를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죽은 민식과 함께 가야의 여성 전사를 놓고 벌였던 격론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파형동기의 발견. '1도 1박물관'의 원칙을 깨고 김해에 만들어진 국립김해박물관. 이 모든 것들이 지난 20년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은 구름이 약간 몰려온 탓인지 하늘이 약간 회색빛이다. 벤치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굴렁쇠가 또르르 달려와 내 구두코를 툭 친다. 열 살 정도 보이는 어린애가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슬쩍 웃으며 굴렁쇠를 아이에게 힘껏 굴려준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발걸음을 본관 안으로 돌린다. 그리고 파형동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휩싸인다. 수백 번도 더 보았던 그 유물에 왜 나는 이다지도 집착하는 걸까?
 

#2
"반갑습니다."
"예. 어서 오십시오. 에가미 교수님."

에가미 나미오 교수와 나의 만남은 순전히 파형동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1990년이었고 장소는 대성동 고분군 발굴 현장이었다. 당시 고분군 발굴 현장은 전국에서 몰려든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 언론사들도 대거 나타났는데, 그 모든 이유가 파형동기 때문이었다.
 
"아, 정말 놀랍습니다. 이렇게 원형보존이 잘 되어 있다니!"

   
▲ 김해박물관 상설전시실은 수리 때문에 휴관 중이다. 어린이박물관에 잠시 옮겨진 유물 전시실.
에가미 교수는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흙속에서 반쯤 몸을 드러낸 파형동기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때론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착잡한 표정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민식과 나는 옆에서 그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며 남모르게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전매특허인 북방기마민족설이 사실로 입증됨과 동시에 고대일본이 조선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이 너무 통쾌했던 것이다.
 
고대 일본 왕족의 무덤에서만 발견되었던 파형동기가 가야의 지배자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건 에가미 교수가 주장하는 고대일본 민족의 원형이 북방 기마민족이며, 이 민족이 가야를 거쳐 일본으로 남하했다는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즉, 고대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고대일본을 통치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입증된 것이었다.
 
"주환아. 아까 그 에가미의 표정 봤냐?"
"그래 봤다. 속이 다 후련하더라."
"하하. 내 말이 그 말이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꼴이라니."
"글쎄 말이다. 자신이 주장한 임나일본부설이 엉터리임이 증명되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껄껄. 그래."

그때 민식과 나는 서로의 소줏잔을 부딪치며 오랫동안 낄낄거렸다. 일본인들이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가야는 일본의 아버지 나라임이 분명했다. 가야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바로 일본민족의 원형이었던 것이다.
 
#3
   
▲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나온 가야시대의 금동관.
벌써 수 십 년도 더 된 옛일을 회상하던 중에, 내 발걸음은 어느새 1전시실 안으로 옮아갔다. 널찍한 실내전시실에서는 작은 향훈이 번져왔다. 유리 전시관 안에 있는 옛 시절의 유물들이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그건 아스라이 번져오는 추억이었고, 먼 하늘가를 맴도는 선인들의 유려한 몸짓이기도 했다.
 
천천히 유물을 둘러보던 나는 유난히 입이 튀어나온 오리모양 토기 앞에 멈춰 섰다. 튀어나온 주둥이와 긴 목이 인상적이었고, 목 뒤로는 벼슬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오리는 사람의 영혼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가는 신성한 존재였다. 그래서 옛 가야인들은 오리모양의 토기를 장례식에 사용하곤 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지점을 날아다니는 존재, 그게 바로 오리였던 것이다.
 
토기의 방을 지난 나는 비로소 파형동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목재 방패의 앞머리를 장식했던 파형동기. 네 개의 회오리 문양이 큰 무늬를 이루며 일정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기하학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 파형동기는 어떻게 해서 고대 가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대성동 고분군에서 만났던 여성전사 채현은 이렇게 말했다.
 
"이 파형동기를 하늘로 세 번 던져주면 됩니다. 가락국에서는 남녀의 혼인식 때 귀한 제물을 하늘로 던지는 습속이 있었죠. 세 번은 삼성을…."
 
귀한 제물을 하늘로 던지는 습속. 그녀가 죽은 포상팔국의 전쟁은 3세기께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변변한 국가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었다. 결국 그녀의 입을 통해서도 파형동기는 가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유물임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 점 때문에 파형동기를 보면 가슴이 뛰는 것이다. 김해라는 지방에 살았던 고대 가야인들은 바다 건너 미지의 땅인 왜를 발견하였고, 그 땅에 가야의 문물과 문화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에 틀림이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에가미 교수가 주장하는 북방기마민족설의 결정적 증거인 '오르도스 청동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양쪽에 손잡이 역할을 하는 귀가 달려 있고, 아래가 뾰족한 청동솥은 전형적인 이동형 솥이었다. 이 솥 역시 고대 일본 지배자들의 무덤에서 심심찮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가야의 옛 무덤에서, 그리고 저 멀리 부여족의 무덤에서도 발견된 솥이었다.
 
나는 이 솥을 볼 때마다 파형동기 못지 않은 감탄과 희열을 느꼈다. '고대 가야는 북방 유목민이 남하해 만든 연합체였다'라고 말씀하신 지도 교수님의 견해를 나 역시 따르는 입장이었다. 하늘에서 내려 온 천손인 김수로왕은 실상 북방 유목민의 한 분파였음이 분명한 것이다.
 

#4
파형동기와 오르도스 청동솥을 지난 나는, 가야의 이형토기를 전시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이형토기는 실생활에 쓰이지는 않고 의례나 장식에 쓰는 토기들을 말한다. 이형토기들은 여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오리 모양의 토기나 쇠뿔잔을 닮은 토기도 있었고, 병사가 말 탄 모습을 형상화한 토기도 있었다.
 
그런데 다양한 모습의 이형토기 중에 유독 내 눈길을 끄는 토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배 모양의 토기였다. 널찍한 보트처럼 생긴 배 모양의 토기는 무척 신려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기분을 자아내는 토기구나. 고대 가야인들은 배를 타고 이승과 저승의 강을 건넌다고 생각했을까?'
 
   
▲ 창녕에서 발굴된 신라시대의 허리띠 장식.
나는 배 모양의 토기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다보던 나는 선수 쪽에 서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사람의 형상을 발견하였다. 아,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선수 갑판에 거의 닿을 듯이 앉아 있는 작은 사람. 듬성듬성 난 턱수염과 갈색의 옷을 입은 내 나이 또래의 사내였다. 그리고 그 사람의 주변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떤 이는 손에 방울 비슷한 것을 들고 있기도 했다.
 
너무 놀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떠보았다. 아, 이번에는 아무도 없다. 그 사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야외 전시장 한쪽의 조용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멀리서 보니 한 떼의 아이들이 여전히 민속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걸음을 옮겨 내가 앉았던 퇴락한 벤치로 걸어갔다. 그런데 멀리 그 벤치 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의 턱에는 턱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옷은 진한 갈색이었다. 이럴 수가! 아까 배 모양의 토기에서 내가 보았던 가야인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벤치로 다가갔고, 그 가야인은 나를 보더니 빙긋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루 행수라고 합니다. 그대께서 저를 깨어나게 했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허허. 인연이 있는 사람과는 전생과 중생, 후생에 걸쳐 한번은 만난다고 합니다. 아마 저와 귀인이 그런 인연인가 봅니다."

너무나 놀란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삼생에 걸쳐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여태까지 귀인께서 보신 유물들은 나지막하게 외칠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너희들의 행위도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자 역사가 되는 것이죠."
"귀인께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배 모양의 토기를 바다에 띄워주세요. 내 그 배를 타고 야마타이국으로 한번 더 가고 싶소이다. 우리 가야의 배를 잘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야마타이국은 우리 가야를 참조해서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리 하겠습니까?"

그는 이 말을 끝으로 내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눈 분명 꿈이려니 생각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두 손가락 튀기는 찰나인 것을, 그 찬란했던 가야의 문화와 문물도 한 순간의 찰나인 것을.

"예. 행수님. 제가 꼭 그리 할 터이니 그 배를 타고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고맙소이다. 귀인. 내 반드시 이 은혜를 갚으리다."

이 말을 끝으로 이루 행수는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었다. 다시 멍한 표정으로 나는 허공을 응시했다. 곧 이어 검은 눈동자 안에 어떤 모습이 서서히 떠올랐다. 채현과 미유, 그리고 이루 행수였다. 너무나 가야를 사랑한 사람들. 제 목숨보다 더 가야를 사랑했던 사람들.

나에게는 과연 그런 사랑이 있는지 무척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김해에 살고 있는 나는 벌써 넉넉한 가야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흡족한 표정으로 박물관 정문을 나서니, 청동으로 만든 두 마리 물고기가 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쌍어 양식이었다. 고대 인도에서 건너온 양식. 나는 그 쌍어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우리 가야는 한반도에서 제4의 제국이자 제4의 문화였다고. 그리고 일본은 가야의 아들 나라였다고.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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