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포천습지생태공원 곽승국 관장이 숯불애(愛)돌솥최가국밥에서 돼지국밥을 떠먹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돈육·순대·야채 함께 대여섯 시간 끓여
돼지고기 특유의 잡냄새 없이 깔끔한 맛
간장양념·마늘향 가득 품은 석쇠구이
새우젓·깍두기·무생채 밑반찬 곁들여
추위도 이길 수 있는 든든한 한 끼 거뜬


김해 생림 도요마을에서 시를 쓰는 최영철 시인은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야성을 연마한다. 시인에 따르면 지금의 야성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야성을 연마하려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새우젓이 있다/ 푸른 물 뚝뚝 흐르는 도장을 찍으러 간다/ 히죽이 웃고 있는 돼지 대가리를 만나러 간다/ 돼지국밥에는 쉰내 나는 야성이 있다/(줄임)"(<야성은 빛나다>부분)
 
한 미국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친숙한 요리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음식을 먹을 때면 몸의 온도가 평소보다 높아진다고 한다. 돼지국밥이 바로 그런 음식이다. 주머니가 가벼울 때, 찬바람에 마음까지 움츠러들 때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추위는 금세 잊혀졌다. 야성은 둘째 치고, 동그랗게 말린 소면을 국밥에 넣고, 양념 부추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뒤 도톰한 돼지고기 한 점과 밥을 한 숟갈 함께 떠먹으면 그보다 기분 좋을 때가 없었다.
 
화포천생태습지공원 곽승국(42) 관장은 "오래 전부터 가는 곳이 있다"며 자신만의 추억의 음식을 소개했다. 그와 함께 간 곳은 '숯불애(愛)돌솥최가국밥.' 주인은 손영호(50) 씨다. 그의 장모인 기옥자(75) 씨는 30년 전 부산에서 국밥집을 차렸다. 손 씨는 19년 전 김해에 가게를 냈다. '최가'는 처가의 성 씨를 따온 것이다. 인제대학교 학생들이 주 고객층인 이곳은 3월이 되면 손님들로 가득 찬다. 지금은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인지 점심시간이었지만 한산했다.
 
국밥만 팔던 이곳은 최근 학생들의 입맛이 바뀜에 따라 석쇠구이를 메뉴에 추가했다. 손 씨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동안 대구, 서울 등을 오가며 개발한 메뉴라고 한다. 곽 관장은 "섞어국밥이 맛있다"며 돼지고기와 순대가 함께 들어간 섞어국밥과 새 메뉴인 석쇠구이 한 접시를 주문했다.
 

▲ 숯불애(愛)돌솥최가국밥의 손영호 사장이 서울, 부산 등을 오가며 6개월 연구 끝에 개발한 석쇠구이.
곽 관장은 인제대 생물학과 출신이다. 환경생태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2007년부터는 인제대 생물공학부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현재는 화포천습지생태공원 관장과 생태교육 전문업체인 '자연과 사람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력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곽 관장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의 고향은 남해. 곽 관장은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여름방학이 되면 남해의 할아버지 댁에 놀러갔어요. 동네 친구 10명을 모아 아침에는 갯벌, 낮에는 하천, 오후에는 뒷산을 뛰어다니며 놀았죠. 뒷산 예비군훈련장엔 푸른 잔디가 깔려있었어요. 그보다 더 좋은 놀이터는 없었답니다." '자연과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반영된 국내 유일의 생태 교육 전문업체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해양수산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독일 유학을 준비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환경 생태교육이 유행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어린이들에게 자연 체험을 선사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생태교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유학을 포기하고 생태학, 생물학 등을 공부하던 지인 5명에게 생태교육을 함께 해보자고 제의했다. 그것이 '자연과 사람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였다.
 
▲ 맑은 국물이 특색인 '숯불애'의 돼지국밥.
'자연과 사람들'은 2000년 8월에 설립됐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생태교육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곽 관장은 "처음 3~4년 동안에는 연구원들이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일만 했다"고 전했다.
 
그의 이력을 살피고 있는 사이 석쇠구이와 함께 새우젓, 깍두기, 무생채 등 밑반찬이 차려졌다. 석쇠구이는 짭조름한 간장 양념과 마늘향이 특이했다. 이 둘은 돼지고기의 잡내를 잡아줬다.
 
석쇠구이로 입맛을 돋운 뒤 돼지국밥 국물 한 숟갈을 떠먹었다. 흔히들 돼지국밥이라고 하면 우윳빛처럼 뽀얗고 하얀 국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집의 돼지국밥 국물은 투명할 정도로 맑았다. 다른 집에서는 통상 오랜 시간 돼지뼈를 끓여 만든 육수를 내지만 이곳에서는 돼지고기와 순대, 야채를 5~6시간 동안 팔팔 끓여 육수를 낸다. 뽀얀 국물에 익숙한 사람들은 낯설어할 수도 있겠지만 돼지고기 잡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맛에는 딱 맞을 듯했다.
 
곽 관장은 "돈 없고 힘이 들 때 돼지국밥 한 그릇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요즘은 가족과 한 달에 한 두번은 들른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나니 외투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이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을 접할 시간이 없어요. 자연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고 큰 아이들이 과연 자연의 소중함을 알까요?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그래서 선진국일 수록 자연에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자연과 환경에 대한 김해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어요."


▶숯불애(愛)돌솥최가국밥/삼방동 160-1. 인제대 맞은 편 먹자골목거리에서 100m 안쪽. 따로돼지국밥·순대국밥 1인분 4천500원, 따로내장국밥 5천 원. 돌솥비빔밥·석쇠구이·된장찌개 세트 1인분 6천 원. 055-326-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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