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릉. 김해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이자, 김해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장소이다.
이 수로왕릉 앞에 가면 우리 전통춤을 연구하고 공연하는 전문예술단체가 있다.
무용가 최경옥(49)이 이끌어가는 '가야의 혼'이다. 수로왕릉 정문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에 예술단인 '가야의 혼'이 있고, 왼쪽에는 '가야의 혼'이 연습을 하는 한편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무경전통춤연구소가 있다. 최경옥은 10년 여 동안 수로왕릉 앞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거리공연을 펼쳐왔다.
수로왕릉 앞에서 전통춤의 세계를 열어가는 무용가 최경옥을 만났다.

사람들은 수로왕릉 앞을 지날 때마다 무경전통춤연구소란 간판을 보면서, 유리문 안으로 엿보이는 전통악기들을 보면서 "이곳이 뭐하는 곳이지?" 하는 궁금증을 갖고 문을 열어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기자도 그런 마음으로 연구소에 들어섰다. 무경전통춤연구소는 가락로 93번길 19-2 1층에, '가야의 혼'은 가락로 93번길 31 2층에 있다. 연구소 안에는 북, 장구 등 전통악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 앉아서 수로왕릉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또 수로왕릉을 지켜보았지요." 10년 세월 동안 내처 앉아 있었다는 바로 그 자리에 최경옥은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에서는 수로왕릉 앞 광장이 잘 보였다.
 

▲ 북·장구 등 우리 악기로 가득 찬 무경전통춤연구소. 북 앞에 앉아 있는 최경옥 씨는 공연복을 입지 않아도 연구소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는 이 곳에서 10여 년간 '가야의 혼'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 김병찬 기자 kbc@

2003년 무경전통춤연구소 열어
매달 한 번씩 왕릉 앞에서 야외공연
교방전통김해예술단 꾸려 전문가 육성
2009년부터 '가야의 혼'으로 거듭
전통춤·악기 전공 학생·일반인 집합소
공연·교육·체험 아우르는 예술조합 꿈

최경옥은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저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런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무용가가 됐는지 궁금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혼자 있을 때는 좀 달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죠. 다섯 살 즈음부터 들판을 달리면서 팔을 벌리고 빙빙 돌며 춤을 추었어요.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그렇게 춤을 추면서 들판을 내달렸어요. 그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그때 제 마음에 든 생각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혼자 춤을 추다가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고, 저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설레었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게 가슴 가득 차 올랐지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그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 정도만 해도 들을 이야기는 다 들어버린 기분이었다. 두 팔을 한껏 펼치고, 빙빙 돌며 춤을 추던 어린 소녀가 무용가의 길을 걷고 있다니,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인터뷰 초반에 나온 것이다.
 
1남 5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난 그는 "형제들 중 내가 어머니의 '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교사였는데 장구를 잘 쳤다. 그는 경로잔치나 친인척의 회갑연 때 장구를 치는 어머니를 보면서 감탄했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눈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진해여고 시절 MRA(Moral Re-Armament)동아리에서 활동했다. MRA는 노래공연으로 봉사를 했는데, 스승의 날 MRA 공연 때 그는 전교생을 대표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3학년 선배들이 1,2학년 후배들 중에서 단 한 명의 대표를 뽑았는데,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큰언니가 다니던 마산수출자유지역 관리소의 사무직 직원으로 취직해 몇 년간 회사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마음속에서 들판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었던 어린 시절의 '끼'가 되살아났다. "더 이상 이대로 나이가 들어서는 안되겠다, 나만의 것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뭐라도 시작해보자 싶어서 서예학원에 등록을 하러 갔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등록을 못했어요. 돌아서 나오는데 에어로빅 학원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왕 뭔가를 하려면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운 걸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에어로빅을 시작했어요."
 
전통춤 무용가인 그에게서 에어로빅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의외였다.
 
"일곱 살 때였어요. 친한 친구가 무용학원을 다녔어요. 저는 부모님께 무용학원엘 보내달라고 조르지도 못했고, 친구를 따라 학원까지 가서 창문너머로 무용연습을 하는 친구를 지켜보았죠. 그러다 집에 돌아와 그대로 따라해 보곤 했어요. 에어로빅 학원에 덜컥 등록을 한 게 그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배워보니, 너무 쉽더라구요. 3일 만에 그 학원에서 가르치는 과정을 모두 익혀버렸죠. 학원 원장님이 에어로빅 강사를 해보라고 권하시더라구요."
 
그는 25세 때 부산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했다. 에어로빅 강사 활동이 그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 앞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지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부녀회 활동을 하면서 자원봉사도 하고, 행사에 참여도 하고…. 일이 점점 늘어났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일에 파묻히겠다 싶어 다 접었어요. 그리고 둘째언니가 사는 김해로 왔어요."
 
그가 김해로 온 지는 18년째. 어느새 20년이 다 돼 간다. 그는 김해에서 드디어 전통춤과 만났다. "2000년이었을 겁니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전통춤강좌가 열린다는 걸 알고 바로 신청했어요. 그곳에서 롯데호텔 엘그린무용단의 총감독 김원화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저의 전통춤 스승님을 드디어 만난거지요. 선생님은 서울에서 김해까지 수강생들을 가르치러 오셨는데, 하루는 저를 보시더니 '조교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선생님께 전통춤을 사사했습니다."
 
그는 김원화 선생이 김해, 양산, 부산 등 경남지역에 내려올 때마다 수행을 하며 열심히 춤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께서 연구소를 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하셨어요. 선생님은 부산에 연구소를 내라고 권하셨지만, 전 김해에 연구소를 내고 싶었어요." 연구소를 내기로 마음먹은 그는 수로왕릉 앞을 지나다가 현재의 무경전통춤연구소 자리를 보았다.
 
"가구점을 하던 곳이었죠. 2003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연구소 자리만 찾느라 깊이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연구소를 열고나니 이 자리가 보통 자리가 아닌 겁니다. 이곳에 앉아 수로왕릉 앞을 매일처럼 바라보는 동안 수로왕에 대해서, 가야에 대해서, 그리고 김해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됐고 그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습니다. 이 중요한 자리에서 춤을 추는데, 더 반듯하게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마음을 담아 한 달에 한 번, 수로왕릉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시민, 관광객, 광장 앞에 늘 나와 있는 노인, 노숙자들도 공연을 지켜보았다.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연구소에는 무용가와 기획자들이 찾아왔다. 기자들도 몇 번 취재를 왔다. "주로 기원무를 추었습니다. 가야의 혼을 부르고, 달래고, 액을 씻고. 제 온 마음을 담아 지난 10년간 계속 기원무를 만들고 추었습니다. 사실 수로왕릉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뭔가를 기원하거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오지 않습니까?"
 
그는 무경전통춤연구소를 운영하는 한편 전문무용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교방전통김해예술단'도 꾸렸다. 이 예술단은 2009년에 '가야의 혼'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무경전통춤연구소보다 '가야의 혼'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전통춤과 악기를 전공하려는 학생들과 전통예술에 관심이 있거나 해본 적이 있는 일반인들이 꾸준히 그를 찾아온다.
 
그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예술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통춤과 악기 공연, 교육, 체험, 악기 판매 등을 모두 아우르는 예술조합입니다. 전문예술인들에게도, 공연을 감상하는 시민들에게도 더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교육을 할 수 있는 조합을 꾸려갈 생각입니다."
 
최경옥은 수로왕릉 앞 광장을 조용히 내다보았다. "우리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온 가족의 건강과 무사안녕을 빌었잖아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서 가야의 혼을 부르며 큰 기원과 복을 비는 기원무를 추고 있습니다."

≫ 최경옥
전문예술단체 '가야의혼' 대표, 무경전통춤연구소 원장. 무경 김원화 선생에게 한영숙류 살풀이, 국수호 입춤, 향발무, 즉흥무 등 전수. 무형문화재 제3호 학산 김덕명 선생에게 호걸양반춤, 바라춤, 타령춤 등 전수. 중요무형문화재 이매방의 제자 양태순에게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전수. 그 외 삼고무, 입춤, 진쇠춤, 축원무 등 전수. 2013년 경상남도 전문예술단체 지정, 2013년 김해시 문화상 표창장 등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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