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김해의 부엌'이라 자처했던 동상동 동상시장. 김해 원도심이 활발했던 시절, 동상시장은 김해의 모든 백화(百貨)와 만물(萬物)이 흘러 넘쳐났던 시장이었다. 김해평야에서 나는 알곡들과 낙동강의 강 것들이 싱싱하니 펄떡이며 제 주인들을 기다리던 시절. 지금은 김해전통시장으로 불리는 20여 년 전 동상시장의 모습이다.
 
필자도 한때 동상시장의 단골이었던 때가 있었다. 김해 소재의 신문사 기자 시절, 원고를 마감하거나 큰 건수의 취재가 성공할 양이면 동료기자들과 어울려 멍게 한 접시를 안주 삼아 소주 추렴을 하곤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동상시장만큼 모든 것을 받아주고 하염없이 나누어 주었던 대상은 없었다.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도 기사를 마감하고 나면 언제나 군말 없이 2차, 3차 술자리를 내어주던 시장이었다.
 
지역 토산물로 가득했던 옛 시장
도심 쇠퇴와 맞물려 단골들 줄어들고
정체성마저 사라져 잃어버린 명성


그렇게 푸근했던 동상시장이 지금은 세월의 무게에 힘이 부쳐 신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으로,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가게마다 둥근 돌출간판을 통일해 달아 놓았지만 별무소득인 것 같다.
 
▲ 부산 부평깡통야시장. 지난해부터 야시장을 운영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그 시절 복닥대던 김해사람들을 대신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이용자의 거의 반수 이상이 외국인 근로자와 이주민들이다. 그나마도 활기를 띠는 곳은 그들의 먹을거리를 파는 정육점, 과일가게, 야채가게가 들어선 메인골목 정도이다.
 
시장을 요모조모 둘러본다. 주로 향신료로 사용되는 야채들과 열대 과일, 양념류 등이 눈에 띈다. 그린파파야와 두리안도 보이고, 고수풀과 태국 고추도 보인다. 동남아 마늘도 이국적이다. 시장 야채가게의 반 이상이 외국 채소로 진열되어 있다. 외국잡화점도 몇 곳 있는데, 각종 소스와 포장된 양념류, 라면과 과자류, 주류 등이 진열돼 있다.
 
▲ 동상시장 뒷골목. 정취보다는 스산함이 가득하다.
그러나 시장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이용객들의 발길이 현저히 떨어지고 빈 점포도 줄을 잇는다. 점포세를 놓거나 아예 셔터를 내려놓은 곳도 부지기수다. 이미 김해전통시장은 김해시민들의 장바구니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
 
우선 구비돼 있어야 할 제품의 다양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다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김해를 대표하는 특산물이 태부족이다. 타지 사람들의 이용률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집토끼도 산토끼도 잡을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시장의 활성화는 오로지 이용객 증대와 이용률 제고가 성패를 좌우한다.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용객을 유치하고, 또 시장 판매 수익을 높일 수 있을까? 우선 부산의 몇몇 재래시장을 둘러보기로 하자.
 
야시장 성황 부산 부평동 깡통시장
토요문화야시장 운영 부전마켓타운
재래시장 활력 모색 타산지석 사례


부평깡통야시장. 부산시 부평동 깡통시장. 원래 부평시장 외국 수입제품 골목을 이르는 말이다. '외제골목' 혹은 '도떼기시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먹던 통조림 등 깡통음식을 음성적으로 반출해 난전에서 사고 팔았던 것이 바로 깡통시장의 시작이다.
 
이곳이 2013년부터 전국 최초로 밤에 여는 '야시장'을 개설해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밤의 볼거리,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부평깡통야시장. 기존 시장이 영업을 마치는 저녁녘, 야시장이 불을 밝힌다. 부산의 풍성한 향토 먹을거리와 다문화 음식, 패션 장신구 등 다양한 상품으로 부산의 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선 부산을 대표하는 유명한 주전부리가 눈에 띈다. 깡통시장의 명물 유부전골과 단팥죽, 부산어묵으로 만든 어묵탕, TV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이승기 호떡으로 유명한 남포동 씨앗호떡, 창선동 패션골목의 파전과 오징어무침…. 가위 부산의 맛이 한데 다 모였다.
 
또 시장 한쪽에서는 다문화가정의 부인들이 본토 음식을 직접 조리해 판매를 하는데, 그 종류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는다. 고기와 야채를 양념한 후 라이스페이퍼로 말아서 만든 베트남 튀김만두 짜조, 인도네시아의 볶음국수 미고랭과 향신료로 양념하여 만든 닭고기 꼬치구이 사떼아얌, 중국식 만두 딤섬, 필리핀의 고구마 맛탕꼬지 가모떼큐와 바나나 맛탕꼬지 바나나뀨 등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 김해에서 생산되는 백화와 만물이 넘쳐나 한때 '김해의 부엌'으로 불린 동상시장. 쇠퇴와 현대화사업의 기로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간절히 필요하다. 김병찬 기자 kbc@

이렇듯 부평깡통야시장은 먹을거리 야시장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 향토음식과 외국음식, 이 두 가지의 대별되는 먹을거리를 이용해 부평깡통야시장을 대표적인 먹을거리 전문 야시장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물론 관광객 증대와 시장매출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도 성공했다.
 
현대화사업으로 겉모습만 변하기보다
다문화 먹을거리 야시장 특화
프리마켓과 벼룩시장으로 발전시켜야


부전마켓타운 토요문화페스티벌과 프리마켓 부평 깡통야시장과 더불어 부산 부전동 부전마켓타운(옛 부전시장)은 2008년부터 토요문화야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전역과 시장을 잇는 거리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토요문화페스티벌이 열리고,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을 전시 판매하는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재래시장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가는 노력의 일환이다. 프리마켓에서는 직접 만든 각종 수공예품 등 예술소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반지, 목걸이, 팔찌 같은 액세서리 등과 가죽 공예품, 인형, 천연비누, 도자기 그릇, 엔틱 소품 등 다양한 소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하는데 형형색색 알록달록 앙증맞은 수공예 소품들의 매력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부전마켓타운은 재래시장을 문화적 명소로 만들기 위해 상인들이 먼저 앞장서는 등 그 의욕들이 대단하다.
 
이와 같이 부산의 두 시장은 독특한 콘셉트로 펄떡펄떡 살아있는 새로운 재래시장의 모델을 보여준다. 홍콩이나 태국의 대표적 관광 상품으로 각광받는 야시장. 그리고 재래시장과 함께 상설화돼 있는 유럽의 벼룩시장과 프리마켓.
 
이들처럼 재래시장의 관광문화 상품화는 이제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있으면서 남녀노소 즐겨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일이다. 쇼핑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원스톱 공간이 되는 것, 바로 현대 재래시장의 모델이다.
 
김해 원도심의 재래시장 중 하나인 김해전통시장. 이곳은 외국인 거리가 인접해 있는 다문화 지역이기에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재래시장 문화를 꽃피워낼 최적의 조건을 갖춘 시장이다.
 
시장 속의 시장인 다문화 먹을거리 야시장과 김해읍성 북문 길을 따라 다양한 외국물품과 수공예품을 전시판매하는 '프리마켓&벼룩시장'이 정착되면 여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 특색있는 재래시장을 김해에서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