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김해의 화훼농업

연료·농약·인건비 껑충 뛰어올랐어도
정부·시·수출업체는 농민에게 등돌려
농가만 발버둥친다고 해결될 상황 지나


대동면 예안리에서 '보라매농원'을 운영하며 30여 년간 장미를 키워온 안영달(72) 씨는 2011년 화훼농가에 불어 닥친 칼바람을 잊을 수 없다. 1997년부터 장미를 수출하기 시작해 2002년에는 손수 개발한 국산 품종 장미를 일본 시장에 선보이기도 한 그는 지금 수출용 장미 농사를 접었다.
 

▲ 안영달 씨의 장미농원에서 지난해 여름 촬영한 장미. 올해는 이 장미가 다시 피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본 동북해안 지역의 쓰나미 대지진이 김해의 화훼 농가에 큰 타격을 입혔죠. 이후 수출길이 막혀 대동의 화훼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너무 속이 상해 수출용 장미가 사육되고 있던 밭을 갈아 엎었답니다. 지금은 수출을 하는 대동의 화훼농가가 10곳이 채 안 될 겁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대동농협 화훼 작목회에 따르면 2005년 대동의 화훼 수출 농가는 총 25곳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5곳에 불과하다. 안 씨도 현재 내수용 장미와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일본 경기가 회복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수출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10년 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못합니다. 그런데 연료·농약·인건비 등은 2~3배 올랐으니 수출용 장미를 생산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죠."
 
안 씨는 장미를 수출해 2001년 경남 농수산물 수출탑 시상식에서 '10만 불 수출탑'을, 2008년에는 '50만 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선진농업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도 받았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 모든 것이 "부질 없다"고 말했다. "더욱 열심히 하라고 주는 것이 상입니다. 하지만 정부·시·수출업체는 농민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고, 해마다 물가가 크게 올라 화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늙은 농부 혼자 발버둥 친다고 상황이 뭐 달라지겠습니까. 장미에 대한 열정은 아직 가슴 속에 가득하지만 내수용 장미 농사조차도 이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안 씨가 1999년부터 국산 장미 20여 종을 연구·개발하면서 모은 기록과 경험도 이제는 쓸모 없게 될 위기에 처했다. 어릴 때부터 장미를 향한 아버지의 열정을 이어가던 안 씨의 큰 아들도 3년 전부터 화훼 농사를 접고 딸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대동 넓은 땅이 향기 나는 꽃밭으로 가득하길 꿈꿨어요. 흙 속에 심어둔 농부의 꿈은 활짝 피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나 봅니다." 안 씨의 안타까운 한숨이 대동 들판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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