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로왕릉 앞 왕릉광장. 구지봉과 봉황대, 허왕후릉과 분성산성 등이 왕릉을 향해 경배하고 있는 형국으로서 김해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부이지만 그에 걸맞은 정비가 미흡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구지봉·봉황대·허왕후릉·분성산성 등
수로왕릉 향해 경배하고 있는 형국
김해의 정신과 정체성 모은 혈의 자리

탄강·신행길·황새바위 등 설화 바탕
연극·무용·뮤지컬 상설공연장 만들고
토산품·민예품·유물 전시장화 해야


얼마 전 일본을 다녀왔다. 규슈지역의 여러 곳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를 했다. 여행 말미에는 여독도 풀 겸해서 일본 전통온천마을인 유후인에서 하루를 묵었다. 폭설이 내리는 료칸의 노천탕에서, 겨울온천의 백미 유키미자케(雪見酒)를 맛보는 넉넉한 호사도 누렸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마시던 사케의 맛이란~!
 
다음 날. 긴린코 호수 주변을 산책했는데, 수백 미터의 산책로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토산품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각양각색의 토산품점들이 제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유후인의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었다.
 
유후인은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그린투어리즘(Green Tourism·생태환경관광) 마을. 때문에 대형자본과 산업시설에 의한, 무분별한 온천개발이 없는 천혜의 온천마을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온천관광과 지역토산품, 캐릭터판매가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이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든 수공예 민예품을 비롯하여, 장인정신이 깃든 도예품과 목공예품, 젊은이들이 좋아할 기발한 아이디어 소품들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정서가 담뿍 묻은 민예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물 좋은 지역답게 유명한 장류(醬類)를 다양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유휴인 자체의 술도가에서 만든 사케와 사이다 등도 유후인 대표브랜드로 상품화했다. 곳곳의 카페에서는 온천물을 이용해 만든 꿀벌 아이스크림과 만쥬, 드립커피 등을 내놓고, 옛날 방식으로 장만한 수타 소바와 라멘도 먹을 만했다.
 
이렇듯 유후인은 가장 유후인다운 것을 콘텐츠화해 제품화시키고, 이를 유후인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긴린코 호수 근처 골목에 집단화하여 판매함으로써, 일본은 물론이고 다양한 이국여행객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자, 그럼 김해는 어떠한가? 김해는 찬란한 가야문화의 발상지이자, 고대국가 '금관가야'의 도읍지이다. 전국에 두 곳도 없는 '가락국 역사문화 브랜드'를 고스란히 독점하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문화의 원석'을 얼마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가공, 활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속이 답답할 지경이다. 김해는 이 엄청난 '역사문화자원'을 문화산업에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자그마한 온천도시에서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문화콘텐츠화해 세계적 관광지로 만드는데 말이다.
 

▲ 중앙상가에서 왕릉길로 이어지는 구제골목.
특히 '김해의 시작'이자 '김해의 모든 것'인 수로왕릉 주변을 생각해보자. 옛 가락국의 땅 김해는 가락국을 개국한 수로왕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만들어진 곳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수로왕릉은 김해 구도심 중심에 위치하여 동서남북으로 보위 받고 사방팔방을 살펴보는 위치에 있다.
 
구지봉과 봉황대, 허왕후릉과 분성산성 등이 모두 수로왕릉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수로왕릉의 위치가 김해를 대표하는 자리이기도 하거니와, '김해의 정신'과 '김해사람들의 정체성'을 굽어 살피는 '혈(穴)의 자리'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의 수로왕릉 주변은 어떤가?
 
김해의 중심, 수로왕릉 주변을 걷는다. 중앙상가에서 왕릉길로 접어든다. 골목 초입에 통일된 간판을 가진 건물들이 길을 잇고 있다. 구제골목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모이는 중앙상가와 이어지는 골목이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모양이다.
 
다문화 국가를 개국한 왕의 무덤 주위로 이주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구제골목이 들어선 것을 보면 새삼스럽기도 하다. 구제옷집과 더불어 옷수선집, 세탁소 등이 들어서 있는데, 바야흐로 전문골목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 수로왕릉 정문 주위로 공방과 문화단체, 커피전문점 등이 들어서 있다.
곧이어 수로왕릉 정문. 주위로는 공방, 문화단체, 가락종친회, 커피전문점 등이 보인다. '가락종친회관' 건물에는 이 거리에서 유일한 갤러리와 전통찻집이, 왕릉광장 맞은편 건물에는 공연단체 '가야의 혼'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 사이 주택가 골목에는 점집 몇 개 대나무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
 
김해 정신문화의 중심부라기엔 너무나 초라하고 조악하다. '수릉원'과 '김해한옥체험관' 주변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마치 김해문화의 현주소를 읽는 것 같다. 텅 빈 왕릉광장에는 꽃샘바람만 외로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김해의 역사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당연히 수로왕릉 주변이 역사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야만 문화융성의 의미도 더욱 깊고 넓을 터이다. 해서 수로왕릉 주변을 다양한 스토리와 문화콘텐츠로 무장한, '김해역사문화의 거리'로 가꾸어나가면 어떨까?
 
먼저 왕릉 앞을 '가락국의 역사'를 알리는 거리로 조성하고, 소극장 수준의 상설공연장을 개관, 사시사철 수로왕과 가락국의 역사와 설화를 주제로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수로왕 탄강설화부터 허왕후의 신행길 이야기, 황새바위와 유민공주 설화 등을 연극, 무용, 뮤지컬 등으로 제작하여 관광객들에게 상설공연 하는 것이다.
 
▲ 왕릉광장에서 돌담길을 끼고 뻗은 골목길.
뿐만 아니라 각종 소규모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갤러리를 겸한 문화카페를 집단화하여 김해의 역사와 문화, 사계절의 산하 등을 보여주는 사진전, 미술전, 시화전 등을 상설화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차 한 잔 마시며 부담없이 김해의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해의 토산품과 민예품들을 파는 기념품 판매점도 함께 자리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해 전역에서 출토된 고분유물과 토기 등 가락국 관련 기념품과, 김해의 문화가 그윽한 목공, 도기 등 김해공예품들을 전시판매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관이나 공방을 상설화 한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김해한옥체험관 주변으로는 김해 9미(김해뒷고기, 불암장어, 진영갈비, 한림 화포 메기국, 대동 오리탕, 진례 닭백숙, 서상동 닭발, 동상시장 칼국수, 내외동 먹자골목) 음식을 판매하는 '김해 9미 음식거리'를 지정해, 김해 전통의 맛과 멋을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서상동 시장과 인접한 도로에는 김해 9품(진영단감, 김해장군차, 분청도자기, 상동 산딸기, 칠산 참외, 대동 화훼, 김해수로막걸리, 봉하오리쌀, 포크밸리 돼지고기) 등을 전시판매하는 '김해 특산품 판매점'도 집단화해 서상시장과 연계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수로왕릉 주변이 활성화되면 김해문화 전체를 디자인하고 지원하는 '김해스토리텔링연구소'나 '가야문화콘텐츠연구소' 등을 이곳에 개설해 정제된 김해문화를 정립하고 이를 문화마케팅과 적극 연계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할 것이다.
 
김해 역사와 문화, 김해사람들의 정체성이 집대성된 혈의 자리, 수로왕릉 주변. 이곳은 김해의 중심으로 김해정신의 모든 '출발'을 '선언하는 자리'이다. 때문에 수로왕릉 주변이 '김해문화융성의 중심지역'이 될 때 김해는 찬란한 옛 가락국의 도시로 다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최원준 시인 /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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