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은 우리나라 고유의 맨손무예이다. 여러 문헌에는 택견이 수박(手搏)·수박희(手搏戱) 등의 한자로 표기돼 있다. 오늘날의 택견은 삼국시대 이전부터의 경기 또는 놀이형태가 전승,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격렬한 싸움 기술이면서도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지 않는 경기방법도 있고, 가공할 무술적 기법도 함께 전해져 온다.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1990년대 들어 생활체육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2011년 11월 28일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김해의 택견인 이춘삼(42) 씨의 수련도장 '이춘삼 택견연구소'를 찾아가보았다.

▲ "아이들이 택견을 익히면서 단단하고 큰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함께 수련합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무예 동작을 보여주고 있는 이춘삼. 김병찬 기자 kbc@

택견인 이춘삼(42)을 찾아가기로 한 것은 그의 무대공연이 인상적이어서였다. 그는 2001년 '민족무예단 삼족오'를 설립하고, 2002년부터 매년 정기공연을 개최해 왔다. 지난해 연말에는 우리소리예술단과 가야가락예술단을 위한 찬조공연에서 '민족무예단 삼족오'의 공연은 관객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았다. '이춘삼 택견연구소'는 장유동 삼문리 584 아쿠아트윈 B동 404호에 있다.

이춘삼(42)은 경남 남해 남면에서 태어났다. "이름이 본명이에요?"라고 불쑥 물었다. 그의 이름은 본명이다. 꽃피는 춘삼월에 태어났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상덕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거지왕 김춘삼' 이야기를 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준 뒤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왕'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단거리 대표선수였다. "운동을 하고 나서 라면 먹는 재미에 육상부에 들어갔지요. 탁구선수로도 대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반장을 도맡아하면서 신나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선생님들이 많이 귀여워해주셨고 이것저것 많이 시켰는데, 대회에서 상 받은 건 판화와 서예였어요. 4학년 때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서예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아이처럼 맑은 미소가 번졌다.
 
"한 번은 서예 학교대표로 뽑혀 교장선생님을 따라 읍내 학교로 갔어요. 대회가 끝난 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그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초등학생 수련생들을 데리고 한 달에 한번은 짜장면을 먹으러 갑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끝났다. "시골 동네 초등학교를 벗어나 좀 더 큰 지역의 중학교에 갔더니, 여러 동네에서 온 낯선 아이들이 많더라구요.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가 다닌 해성중학교에서는 대부분 해성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진주나 남해로 나갔다. 그는 남해종합고등학교로 진학했다.
 
▲ 이춘삼의 구령에 맞추어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는 수련생들.

단전호흡과 명상수련에 치중하다가
군 복무 때 택견사범 만나 무예인의 길
택견·검술로 지리산 삼성궁 방계수자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택견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해졌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무예인의 기질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었다. "택견보다 단학수련을 먼저 했지요. 형님이 동아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단학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형이 보던 단학 관련 책을 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죠. 제가 청소년기에 몸도 약하고 허리도 좀 아팠거든요. 그래서 단전호흡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몸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체육시간에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이었어요."
 
이건 정말 의외였다. 무예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다니. "고교 동창들은 택견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 깜짝 놀랍니다. 택견 관련 TV프로나, 제가 지리산 삼성궁에 있을 때 TV에 나온걸 보고 놀라서 연락을 해온 친구도 있었죠. 소문만 전해들은 친구들은 안 믿을 정도예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재수를 했는데, 이때 단학선원과 인연을 맺었다. 재수학원인 한샘학원에 등록을 하면서 학원 옆에 있던 단학선원에도 등록했다. 형의 책을 보며 단학의 기본은 어느 정도 익히고 있던 그였다. 마침 단학선원의 사범이 형이 활동했던 동아리의 선배였다. "사범님이 후배의 동생이라고 많이 챙겨주셨죠. 학원을 마치면 곧장 단학선원으로 가 수련을 했는데,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아픈 곳도 없어졌구요. 그후론 재수학원을 그만두고 오로지 단학선원에서 단전호흡에만 열중했어요."
 
그는 1년 정도 수련을 마친 뒤 서울의 중앙본원에서 체계적인 사범 양성훈련을 받았고, 서울과 부산의 단학선원에서 사범으로 활동했다. "몸이 좋아지고 나니, 좀 움직이고 싶더군요. 몸을 강하게 단련시키고, 격렬하게 움직여보고 싶기도 했구요. 창원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했을 때 홍은표 택견사범을 만나면서 택견을 알게 됐습니다. 이 분은 지리산 삼성궁의 수자이기도 하셨죠."
 
그는 택견을 배우는 한편 3년간 삼성궁을 다니며 검술도 배웠다. 그는 삼성궁의 방계수자이다. 택견과 검술을 통해 그는 드디어 몸을 움직이는 무예와 정식으로 만났다. "단전호흡과 명상수련을 통해 제 몸은 아주 부드럽고 유연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근력, 힘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했습니다. 단전호흡을 하면서 내공을 쌓은 뒤 외공인 택견과 검술을 만나게 된 거지요."
 
그는 "택견이 내 몸에 딱 맞았다"고 말했다. "처음 배웠을 때 부드럽고 낭창거리는 움직임이 좋았습니다. 내 성격에, 내 몸에 딱 맞았지요. '택견을 예쁘게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1993년, 1994년 그 당시에는 다른 무예를 하던 이들이 택견으로 많이 옮겨오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한번 몸에 익힌 무술동작, 이걸 '습'이라고 하는데, '습'은 쉽게 고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다른 무예를 배워본 적이 없었으니, 택견을 익히기가 훨씬 수월했죠."
 
▲ ≫이춘삼 이춘삼 택견연구소 운영, 민족무예단 '삼족오' 대표,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 전수자

3문파 모두 찾아가 수련·자격증 획득
수련생들 데리고 무대공연만 13년째
자연과 인간·삶의 의미 무예로 전달 꿈


그는 택견 인간문화재인 전경화를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택견은 크게 3문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3문파를 모두 찾아가 수련했고 자격증을 다 땄습니다. 3문파 중에서도 전경화 사범님은 택견의 정통성을 지켜가고 있는 분이라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2006년 전수자로 선정됐습니다."
 
그가 '이크' '에크' 하는 기합과 함께 유연한 몸놀림으로 택견 시범을 보였을 때, 무예라기보다 춤동작 같다고 했더니 그는 동작 하나 하나를 찬찬히 보여주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운 움직임이지만, 손이나 발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한 손 긁기'를 보세요. 이렇게 부드럽게 손을 펴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손가락에 힘을 주어 갈고리 모양으로 긁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춘삼의 말에 따르면 택견은 외유내강의 무술이다. 부드러움 속에 강한 움직임이 있다. 강한 움직임만으로 대련을 하면 온 몸이 무기가 되는 것이다. "택견은 씨름, 국궁과 함께 훼손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3대 무술 중 하나입니다. 일제시대 때 독립투사들은 대부분 택견 고수였다고 합니다. 일본경찰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고, 동포들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우리 민족이 생겨났을 때부터 택견은 시작됐고,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된 것입니다."
 
그가 수련생들을 데리고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한 것은 2002년부터이다. "몸짓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단전호흡을 하면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고, 몸으로 그것을 나타내는 거지요. 크게는 자연과 인간, 작게는 나의 삶을 전달하는 겁니다. 우리의 모든 몸짓은 생명의 몸짓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언어를 무예동작으로 만들어 역동적으로 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어 공연을 합니다."
 
이춘삼이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맨발의 아이들이 가뿐가뿐 몸도 가볍게 발차기를 했다. 맨발이라 발이 시리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아이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땀나는데요"라며 다음 동작을 준비했다.
 
다시, 이춘삼이 아이들 앞에 섰다. "몸만큼 정직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택견을 익히면서 단단하고 큰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함께 수련합니다. 우리 전통무예 택견을 잘 지켜나갈 아이들과 함께 수련할 수 있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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