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마을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동면의 면사무소 소재지에 있다. 상동로에 있는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우체국, 파출소, 보건지소, 농협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대포천작은도서관도 있어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마을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목욕탕과 중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상동면 전체 인구가 적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 상동면 면사무소가 있는 대감마을의 중심 도로인 상동로.

일제강점기 창고·철도 세워 곡식 수탈
조선시대까지 철 제련업 활발했던 듯
마을 이름도 담금질 '감물'에서 유래
경상도지리지에 도요지 기록도 전해
주변 교통여건 좋아져 사통팔달 변신중


대감마을은 자연 환경이 좋다. 신어산 북쪽과 남쪽 기슭이 맞닿을 듯 마주 본다. 그 사이로 대포천과 상동로가 길게 놓였다. 신어산에서 시작한 계곡물은 장척계곡으로 내려와 면사무소 옆을 지나 대포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포천 남쪽 유역의 평지가 대감마을이다. 면 사무소 소재지 양쪽은 주택과 공장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
 
마을 동북쪽 상동 나들목과 부산시멘트 김해지사 주변에는 원래 대밭이 있었다. 황새가 대밭에 앉기도 했다. 새가 너무 많아서 나무가 꺾일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 앞을 흐르는 대포천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3∼4급수로 전락했지만, 이봉수(57) 개발위원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수질개선 운동을 벌여 1998년 이후 1급수로 되살아났다.
 
▲ 대감마을 주민들이 마을 어귀에 나와 햇볕을 쬐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대감마을은 예부터 살기에 좋은 곳이었다. 김호근(61) 이장은 "일제강점기에는 곡식을 수탈하는 창고와 철도가 세워졌다. 농업 생산력이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밤과 단감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남성정밀 뒤쪽 산인 어부골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2군 상동구장 위쪽 분통골 주변의 야산에 특히 밤, 단감이 많았다. 덕분에 헐벗던 시절에도 상동의 어린이들은 소풍 때 밤을 삶아갔다고 한다. 주민들은 최근에는 산딸기를 많이 키워 소득을 높이고 있다.
 
▲ 대감마을을 가로지르는 상동로 옆에 있는 정자.
대감마을은 공인(工人)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마을 주변 언덕을 돌아보면 도자기 조각을 자주 볼 수 있다. 조선 예종 때 나온 <경상도지리지>에는 이곳에 도요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은 '상동요'를 운영하는 김영성 작가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감마을은 철을 제련하는 곳이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고려 때 철을 생산하는 감물야향(甘勿也鄕)이 대감마을 중심지 동쪽 20리 밖에 있었다고 전한다. 대감이라는 마을 이름도 담금질을 하는 '감물'에서 나왔다. 조선 때까지 대감마을에서는 철 제련업이 활발했다고 추정된다.
 
227가구에 700명 정도가 사는 대감마을에서는 조금씩 늘어나는 공장에 맞서 마을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다른 자연마을과 달리 이곳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지만 주민들 간의 유대감은 오히려 약해졌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중년 부부들이어서 한 때 600명이 넘던 금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은 70명 이하로 줄었다. 롯데 자이언츠 상동구장 건설을 계기로 한 때 금동초등 야구팀이 창단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선수가 없어 운영이 어려운 처지다.
 
김호근 이장과 마을 주민들은 마을 홈페이지를 만들고 객지에 나간 사람들의 주소록을 만들고 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감마을에서 자라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애향심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김 이장은 "대감마을의 최고 장점은 자연이다. 마을을 지나는 내동천은 다슬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 아이들이 마음 놓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기존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 부산외곽순환도로까지 나면 사통팔달로 열린 곳이 되므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자랑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