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양파라는 가수가 부른 가요 중에 '애이불비'라는 곡이 있었다. 애이불비는 실상은 사자성어로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확히는 '낙이불류 애이불비 가위정야(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가 원래의 문장이다. <삼국사기> '잡지(雜誌) 악(樂)'에 인용되어 있는 가야 출신 음악인 우륵의 말이다. '낙이불류'는 기쁘면서도 지나치게 들뜨고 휩쓸리지 말라고 하는 뜻이다. 한의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낙이불류'와 '애이불비'라는 음악서의 내용을 조금은 다르게 해석한다. 애이불비는 내외(內外)의 관점에서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석되지만, 정확한 문구의 이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즉 지금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이 되고 지금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의 싹이 되듯이 감정도 무상한 것이어서 슬픔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무뎌지고 또 기쁨이라는 감정의 바탕이 된다. 지금의 기쁨이라는 감정 상태도 시간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슬프기 쉬운 환경으로 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요약하자면, '제행무상(諸行無常)'한 시간의 변화와 흐름을 인식하고 있다면, 너무 들뜨며 기뻐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침잠하여 슬퍼할 필요도 없음을 지적한 선조의 지혜가 녹아있는 구절이 '낙이불류' '애이불비'라 할 수 있다.
 
흔히 한의학의 진단을 '변증시치(辨證施治)'라 한다. 그렇다면 증(證)은 무엇일까? 증이란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뜻도 있지만, 또 한편 '지금 시점에서 환자의 생리·병리적 상태'라 보기도 한다. 지금은 '간기울결'이라고 변증을 했지만 간의 기운이 뭉친 것을 풀어주면 이내 증이 변화하여 '비기허(脾氣虛)'로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증을 비기허로 변별하여 치료해야 할 것이며, '변증'이라는 말 속에 '변화'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하고 싶다.
 
최근 내원한 환자 중에 머리에서만 유독 땀이 많이 나는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는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고 난 후 쉽게 화가 난다고 하였다. 또한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자식과의 사별 후 조금만 매운 음식을 먹어도 머리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는 것이었다. <황제내경>을 보면 '폭희상양(暴喜傷陽), 폭노상음(暴怒傷陰)'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나치게 기뻐하면 양기를 상하기 쉽고, 지나치게 화를 내면 음기를 상하기 쉽다는 뜻이다. 이 환자의 경우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유없이 사별하게 한 사회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화를 내어 음기가 상한 환자였던 셈이다. 사상체질적으로 보면 소양인은 특히 노기(怒氣)를 잘 다스려야 한다. 소양인이 노기를 통제하지 못하면 열이 가슴에 쌓여서 흉격열증(胸膈熱症)이 된다. 가슴에 불덩어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럴 때 양격산화탕이란 처방을 쓰면 탁효를 거둘수 있고, 실제로 이 환자도 땀의 조절에 이 탕약이 좋은 효험을 보였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남긴 유언이 '윤궐집중(允厥執中)'이다. '오로지 중용을 잡으라'는 뜻이다. 감정도, 일과 휴식도, 대인관계도 중용이 참 중요함을 느낀다. 특히 감정의 중화적 통제에 실패하면 쉽게 질병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만이 진리이다. 변화를 항상 염두에 둔다면 집착하고 지나치게 들뜨고 지나치게 슬퍼하며 지나치게 분노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윤궐집중. 씹을수록 깊은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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