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들길이나 산새들과 대화할 수 있는 둘레길을 걷고 싶은 계절이다. 그런데 김해에는 아직 제주 올레길 같은 멋진 도보여행길이 없다. 아니 여기저기 좋은 길이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지 모른다.
 
제주 올레길이 세계적 관광상품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하여 집 주변과 집 앞 대문에서 큰 길로 나가는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돌담을 쌓았다. 이 좁은 골목길을 제주방언으로 올레라 불렀는데, 그 길에 이름을 붙여 연결하고 전설과 이야기를 불어넣은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지금의 올레길이 된 것이다.
 
김해에도 여기저기 멋진 둘레길 코스를 만들 수 있다. 가야 유적들을 연결하는 길이나 도심 주변의 분성산 또는 신어산을 활용하면 된다. 봉황동 유적으로부터 구지봉에 이르는 '문화의 거리'를 연장하여 천문대를 거쳐 분성산성에 오르고, 동상동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김수로 왕릉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야의 역사 탐방길과 건강을 위하고 풍물을 접할 수 있는 도보길로서 아주 매력적이다.
 
가야대학교 뒷산 자락은 숲이 우거져 있고 완만하여 숲속 오솔길 코스로 적격이며 신어산 등산로를 활용한 신어산 코스는 다소 난이도가 있으나 운동을 위주로 할 수 있다. 또한 봉황동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임호산을 거쳐 경운산을 오르고 수인사 쪽으로 내려와 연지공원을 가로 질러 봉황동 유적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서부 일주형 코스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길들을 하나로 상징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주면 김해를 대표하는 둘레길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김해를 상징하고 누구나 들으면 쉽게 기억할 수 있고 한 번쯤 가서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이름을 가진 길. 김해를 상징하는 다른 이름도 많이 있겠지만 '수로왕길'로 부르면 어떨까? 수로왕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을 비롯한 가락국의 모든 왕을 통칭하고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로서 '수로왕길'은 수로왕이 행차한 길이라는 뜻도 포함하게 된다. 무엇이든지 이름이 좋으면 이름값을 한다.
 
김해의 둘레길에 '수로왕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어 널리 홍보하면 또 하나의 도보여행의 명소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수로왕길'을 만드는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봉황동 유적지에서 구지봉까지의 문화의 거리 구간은 최대한 그대로 활용하고, 허왕후릉에서 천문대까지의 구간은 새로 개설하고 동상동 재래시장을 통과하는 도심 코스는 골목길을 아름답게 정비하면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신어산 코스나 서부 일주형 코스, 가야대학교 뒷산 코스 등 숲길은 기존의 등산로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
 
다만 아스팔트나 시멘트보다는 친환경적인 재료를 활용하여 보행하는 데 편리하도록 만들면 좋을 것이다. 길 주변에는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나무를 심고 운동시설과 조각작품 등을 설치하거나 자갈 또는 몽돌을 깔아 때로는 맨발로도 걸을 수 있도록 한다.
 
김해는 곳곳에 가야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고 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천문대 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역사문화 인프라가 풍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자산을 잘 가꾸고 포장하여 최고의 상품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김해를 찾는 사람들이 천천히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아름다운 맛집에서 식사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중적이면서 저렴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손님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먹거리를 발굴하여 밥상에 올려야 한다.
 
김해의 둘레길을 '수로왕길'로 불러주는 것은 아주 작은 걸음이지만 가야 역사와 문화 그리고 김해를 홍보하는 큰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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