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는 공포와 의심의 절묘한 역학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공포는 신앙을 낳고, 의심은 철학을 낳는다.'
 
공포와 의심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 부분인 까닭에 공포는 신앙을 낳았고, 신앙을 탐구하기 위해 신학이 발전했으며, 의심은 철학의 오랜 사유동기였다. 학사모의 사각모 중 네 모서리는 신학·철학·법학·의학을 뜻하는데, 법학과 의학이 현실적인 필요성에 기반한 학문인 것에 비하여 신학과 철학은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학문이기에 그만큼 오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믿음과 의심을 한의학에서는 경락의 체계로 이해한다. 믿음을 주관하는 경락은 임맥(任脈)이라 하고, 의심을 주관하는 경락은 독맥(督脈)이라고 한다. 경락은 금오 김홍경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와 감정의 통로'인데, 임맥은 성기와 항문 사이의 회음혈에서 아랫입술의 승장혈까지 인체의 정중앙을 흐르는 경맥을 말한다. 독맥은 꼬리뼈 아래의 장강혈에서 윗입술의 인중을 거쳐 은교라는 혈에 이르는 척추의 정중앙을 흐르는 경맥이다. 임맥의 임자는 맡길 임(任)자를 쓰는데, 순종적이고 음적인 기운이 흐르는 경락이다. 독맥은 감독할 독(督)자가 보여주듯 감독하고 의심하는 감정이 발달된 통로로서 남성적이고 양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다. 요약하자면 음적인 임맥은 믿음과, 양적인 독맥은 의심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입술은 임맥과 독맥이 만나는 곳이다. 윗입술이 발달한 사람은 독맥이 발달하여 의심이 많고, 아랫입술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은 임맥이 발달하여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순응적인 경우가 많다. 임맥은 여성의 임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제내경> 소문(素問)의 '상고천진론'을 보면 여성은 '14세가 되면 천계가 이르러 임맥이 통하고 태충맥이 왕성해져 월경이 주기적으로 생겨서 자식을 가질 수 있고 (중략) 49세가 되면 임맥이 허해지고 태충맥이 쇠약해져 월경이 통하지 않으므로 자식을 가질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수태는 '순응'과 '받아들임'이 주된 기능이며 여성은 임맥이 발달해야 임신·출산에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헌데 여성에게 양기의 통로인 독맥이 발달하면 어떻게 될까?
 
윗입술이 지나치게 발달한 여성의 경우 독맥이 발달한 여성이다. 경락이 기와 감정의 통로라고 보면 믿음보다는 의심이 발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의심의 대상이 배우자가 되는 경우, 그리고 의심의 정도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경우를 '의부증(혹은 의처증)'이라 한다. 30~40대 여성이 앓는 마음의 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의부증은 정신의학적으로는 망상장애의 한 형태로, 배우자의 정조를 의심하는 구체적인 경우를 부정망상이라고 한다. 망상장애는 과거 '편집증'이라 불렸던 질환이다. 의부증 감소를 위해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사용한 약물치료가 주된 치료법이 되지만, 한방치료를 병행한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의부증의 경우 현대의학에서는 프로이드 심리학을 통해서 이해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임맥에 비해 독맥이 지나치게 발달해서라고 본다. 음기에 비해 양기가 지나치게 발달한 것이다. 때문에 넘치는 양화(陽火)를 내려주고, 부족한 음기를 보충하는 쪽으로 치료법을 구성하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흔히 자음강화(滋陰降火)라고 한다.
 
의부증의 또다른 이름은 '오셀로 증후군'이다. 오셀로는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서 자신의 부하 이야고와 아내 데스데모나의 성적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질투로 인해 죄없는 아내를 죽여버리게 된다. 극단적인 감정, 배우자에 대한 끝없는 상상과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겪게 되는 이러한 편집증은 음양의 균형이 깨어진 탓에 발생한다. 의심과 믿음의 균형을 통해서 제2의 오셀로가 자주 생겨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김해뉴스 /이현효 활천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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