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생림 도요 마을에 정착하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요 마을 앞으로 흐르는 이 강을 따라 석탈해는 신라로 도주하지 않았을까.

김수로와 치열한 결투를 벌이다 패배한 석탈해가 신라로 넘어 갔다면 바로 이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그 이후 신라의 왕이 된 석탈해가 수 차례에 걸쳐 가야를 침공했다면 역시 이 강을 건너오지 않았을까. 마주 보이는 양산 원동역과 도요나루를 사이에 두고 신리와 금관가야가 격돌하지 않았을까.

이런 나의 몽상을 두고, 김해 출신인 주정이 화백은 말한다. " 그래, 지금부터라도 상상하고 창조해라. 그러면 그게 바로 김해의 새로운 신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언젠가 김해시가 광역시로 승격되기를 바라고, 그때는 금관가야 직할시로 명칭 변경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혹자는 무슨 복고적인 사고인가 웃을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천만의 말씀이다. 김해란 지역명은 금관가야가 사라지면서 정복 국가의 일개 지역 소도시로 전락한 명칭이다. 신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금관가야가 분명히 존재한 곳인데, 왜 그 광대무변한 상상의 도시국가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요즈음은 지역자치시대다. 없는 이야기라도 꾸며서 지역의 전통성을 내세우고 있다. 공룡 뼈다귀 하나 발견되지 않는 곳에서 바위에 찍힌 공룡 발바닥을 근거로 세계 공룡축제를 벌이지 않는가. 금관가야는 아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땅을 파면 어디서 무엇이 발굴될지 알 수 없는 신화의 도시다. 한국 고대사에서 가야 만큼 분명한 국가(國歌)를 보유한 지역이 있는가? 고구려 건국의 노래는? 신라는? 백제는? 없다. 그러나 가야는 분명한 건국의 노래가 있고, 드라마가 있다. 구체적인 등장 인물이 있고, 김수로와 허황옥이란 주연 남녀가 존재한다. 두 주역의 드라마는 가히 국제적인 사랑의 모험담이다. 여기에 갈등과 충돌을 담당하는 성격배우 석탈해가 있고, 한자로 자기 이름까지 갖춘 조연들까지 즐비하다. 21세기가 문화 콘텐츠의 시대라면 김해야 말로 지역 문화 콘텐츠의 보물창고다.

그러나 정작 내가 금관가야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지역의 문화 콘텐츠 차원 그 이상이다. 이 크지 않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서 지금도 연평도에서 서로 대포를 쏘아대는 분단 국가 상황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심심하면 중국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여야 하는 살벌한 처지를 극복하는 문화적 단서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금관가야는 그 자체 평화와 공존의 도시국가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풍속을 지닌 해인족과 기마족이 공존하였고, 한자 문화권의 농경족과 교류 하였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경계도 없었다. 남쪽 바다를 안 마당으로 삼고 계절풍 따라 오며 가며 함께 살았다. 놀랍게도 저 먼 인도 이슬람 상선이 들락거린 증거도 있다. 내가 상상하는 허황옥은 붉은 돛을 단 배를 소유한 선주의 이미지다. 그 배에는 인도의 항료와 중국의 비단이 실려 있었을 것이다. 가야에서 생산되는 철이 수출 주종 품목이었음이 틀림 없다. 김해는 이미 천 구백여년 전에 금관가야란 이름으로 다민족 다문화권을 이루면서 더불어 함께 살았던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다.

이제 21세기 다원화 국제사회에서 김해가 지역의 소도시 성격을 극복하고 예전의 황금시대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21세기 아시아의 관문 금관가야 직할시를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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