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가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말로 고통을 호소하더라고요. 그만큼 고통이 컸던 거지요."
"처음엔 단순 감기인 줄 알았어요. 감기약을 먹고 잤지만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검사를 받는 동안 이미 균이 몸으로 쫙 퍼졌어요. 결국 손과 다리에 괴사가 일어나…."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 홈페이지(www.meningitis.co.kr) 창을 열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생존자들의 질병 체험담이 동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어느날 갑자기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인구 10만 명당 1~2명은 보균자이며, 건강한 사람에게도 아무런 예고 없이 생길 수 있다. 또 감기 증상과 유사해 간과하기 쉽고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치명적 후유증까지 안겨주는 무서운 질병이다.
 

■ 원인 및 증상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세균성 뇌수막염의 한 종류이다. 뇌와 척수를 둘러싼 뇌척수막이 수막구균이라는 세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중증 혈액 감염인 패혈증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수막구균은 주로 코와 목 뒤에 서식한다. 보균자의 면역력이 약해질 경우 뇌척수막을 감염시켜 발병한다. 초기 증상은 두통이나 고열 등 감기 증상과 비슷해 의료진들도 진단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0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급성발열, 심한 두통, 구역질, 구토, 목 부분 경직 등의 증세가 생기는데, 분홍색 반점이 잘 나타난다. 급성인 경우 갑자기 허탈감에 빠지면서 출혈성 반점이 나타나고, 저혈압과 소변량의 현저한 감소 및 혼수 상태로 진행된다.
 

수막구균이 뇌척수막 침투해 발병
출혈성 반점 동반 후 패혈증까지 유발
첫 증상 후 24~48시간 내 급속 진행
뇌손상·피부괴사·사지절단 등 후유증
백신 접종하고 단체생활 개인위생 주의

첫 증상이 나타난 후 24~48시간 내에 질환 악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감염 환자 10명 중 1명 꼴로 사망한다.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하더라도 5명 중 1명은 뇌손상, 피부 괴사, 사지 절단, 청력 상실 등의 영구적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얻는다.
 
한정실소아청소년과의 한정실 원장은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침입에 의한 수막염은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다. 하지만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세균에 감염되는 형태의 질환이므로 심각성이 크다"며 "출혈성 반점과 함께 열이 동반된다면 일단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의심해보고 빨리 병원으로 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흔한 병은 아니기 때문에 초기 대응을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쉽다. 감기 증상과 비슷하다보니 쉽게 생각해 알아서 약을 복용하고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고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 어떻게 발병하나
수막구균은 대개 증상이 없는 보균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나오는 분비물이나 컵·식기의 공동 사용, 입맞춤 등의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때문에 단체생활을 할 경우 수막구균이 전파되기 쉽다. 이 균은 저항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간접접촉에 의한 감염의 예는 극히 드물다.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에 따르면, 국내 환자는 2007년 이후 군대에서 8명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4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신입 훈련병의 발생 빈도가 군인 전체 발생 빈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군에 입대할 때 수막구균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시킨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하지만, 특히 학교 등 집단활동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청소년이 고위험군에 속한다. 또 5세 이하의 영·유아 중에서 모체로부터 받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인 생후 3~7개월 무렵 영아의 발생 빈도도 높다.
 
실제 지난 1월 서울에서 1세 남아의 발병이 확인된 사례도 있다.

한 원장은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집단생활을 하는 그룹에서 많이 걸릴 수 있다. 증상도 치명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게 특징"이라며 "인체의 면역기능은 만 2세 이후가 돼야 차츰 성인의 70~80% 수준으로 완성된다. 그 이전 연령에 대해서는 아직 백신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2세 이하 영아의 경우 이 질환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치료와 예방

▲ 2012년부터 접종이 시작된 백신 '멘비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 의심되면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의료현장에서는 되도록이면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 정확한 감염 여부를 확인한 후 항생제를 투여하지만, 환자의 증세가 급박하게 진행될 경우에는 항생제를 먼저 투여하기도 한다.
 
백신인 '멘비오'는 2012년 5월 국내에 처음 출시됐다. 이 백신은 생후 24개월부터 55세까지를 접종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안전성 문제 때문에 애초에는 11~55세를 접종토록 했으나, 지난해에 생후 24개월부터 10세까지를 추가 승인 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생물제제과 이유경 연구관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공인한 백신이지만 인종에 따른 신체적 특성에 맞춰야 하는 안정성 문제가 있어 백신 예방 접종 연령대를 차츰 낮춰왔다"며 "현재 제약사 측의 요청에 따라 2~23개월도 추가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심사 중이다. 이르면 오는 6월께 그 결과가 나올 전망"이라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현재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제3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서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식 정도가 낮은데다 강제성이 없어 접종률이 높지 않은 편이다. 또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1회 접종에 15만 원 가량으로 비싼 게 흠이다. 김해지역 중·대형급 종합병원의 소아청소년과에서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곳이 많다. 따라서 일반 소아과의원을 통해 미리 예약 신청을 해야 한다.
 
한편 백신 제약사인 한국노바티스는 '세계뇌수막염의 날'(4월 24일)을 맞아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와 공동으로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예방 캠페인인 '디어 투모로우즈(Dear tomorrows)'를 실시한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환우들의 사진전을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에서 오는 5월 3~31일 개최한다.

김해뉴스 /김병찬 기자 k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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