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문자해독 프로그램 참여 하수연 씨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학교생활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어요."
 

김해내동초등학교 문해반 맨 뒷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수연(56·외동) 씨의 얼굴에는 수업 시간 내내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연필을 꽉 쥔 뒤 힘을 주어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가 학교에 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 씨는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황산리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태어난 뒤 갓 돌을 지냈을 무렵 사고로 허리를 다쳐 두 다리를 못 쓰게 됐다. "농사꾼이었던 부모는 논을 팔아 다리를 고쳐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워낙 시골동네라 변변한 병원 한 곳 없었죠. 요즘은 소아마비 수술도 가능한 세상이지만…."
 
지금은 특수학교 등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학교시설이 많이 마련돼 있지만, 하 씨가 어릴 때만 해도 특수학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고향은 시골인지라 더욱 교육의 혜택을 꿈꿀 수 없었다. 항상 집에만 있던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집의 돌담 위에 올라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아버지, 어머니는 농사일을 나갔어요. 그럴 때면 기어서 집 돌담 위로 올라갔어요. 돌담 위에 올랐을 때가 유일하게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하 씨는 17세가 됐을 때 더이상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결심했다. 전남 여수 애양재활병원에서 운영하는 양재학원에 등록했다.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처지여서 옷을 재단하는 일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은 1년이면 끝낼 수 있었던 양재학원 교육과정을 6개월이나 늦게 마쳤다. "재단을 하려면 덧셈과 뺄셈을 해야 합니다. 언제 그런 걸 배운 적이나 있었겠어요. 수업이 끝난 뒤 매일 남아서 남보다 배 이상 공부를 해야 했죠."
 
양재점에 취업한 하 씨는 25세 때 대동면으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던 그는 불암동에 옷수선 가게를 내 생활비를 벌었다. "배운 기술이라도 써서 아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옷수선을 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죠. 20년 동안 재봉틀 앞에서 옷을 만지다보니 지금은 한쪽 팔꿈치 연골이 닳아 팔을 제대로 펼 수가 없어요."
 
하 씨는 좀 더 전문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홈패션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내년 봄에는 다시 옷수선가게를 열 계획이다. 문해반과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동시에 듣다보니 그의 하루는 바쁘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글을 모르니, 글자만 보면 기가 팍 죽어버리기 일쑤였죠. 지금 이렇게 배울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가요. 나이가 있다 보니 뒤돌아서면 배운 내용을 잊어버려요. 자꾸 공부하다 보면 늘겠죠."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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